비 내리는 여름 갑사./김락호



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장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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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雨)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그리움을 주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쓸쓸함과 함께 고독을 주지만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 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생명수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그렇듯 과하면 독이 되고 적당하면 약이 되니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 않은가.

7월의 여름햇살이 구름 속을 들락거리며 술래잡기를 하던 날이다. 사무실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평소 자주 가던 계룡산으로 차를 몰았다.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며 여름 풍경에 나를 던지고 두 눈은 좋은 작품 사진 한 컷 찍을 만한 사물을 찾아 눈초리를 가늘게 뜨고 멋진 풍경을 쫓아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카메라를 들이 대고는 뷰파인더속의 풍경에서 또 다른 작은 세상을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봄과 가을 보다는 여름 풍경을 더 좋아 한다. 봄에는 너무 많은 꽃들이 피어 자기가 최고라고 잘난 척을 하고, 가을에는 금방 떨어져 버리는 낙엽이 싫어서다. 하지만 여름은 어디를 가나 녹색의 물결이며 아름다운 꽃들도 오래 피어있고, 비가 내리고 난 뒤에는 깨끗하고 더 선명한 푸른색을 만끽할 수 있으니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여서 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결국은 갑사까지 가게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손에 들고는 오늘은 어떤 풍경이 나를 반겨 줄까 하는 기대감으로 매표소를 향했다. 갑사 가는 길목에 일렬로 쭉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은 갑사를 유명하게 만드는 낙엽송들이다. 하늘을 보니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와 햇살을 가려버리고,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수 없어 입장권을 사고 갑사를 향해 몇 발짝을 걸었을까 시커먼 구름이 드디어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 많은 여인네가 서럽게 우는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심상치가 안아 챙겨 가지고 간 우산을 펴들고는 목적지를 향해 가기 시작했지만 비는 점점 더 거세게 오기 시작한다. 정말인지 참으로 오랜만에 맞아 보는 엄청난 양의 비다.

일주문을 지나자 비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이지 힘차게 내리 붓고 있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가 오늘은 싫지 않고 그동안 일과 사람들에 매여 있던 나의 가슴 속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마치 높은 산 정상에 올라와 “야호”라고 크게 소리를 지를 때처럼 시원하게 마음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점점 더 선명한 색을 띄어가는 나뭇잎들과 풀들은 갑사 가는 길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가다 보면 냇가가 나온다. 냇물 이라기보다는 많은 비에 어느새 큰 강을 이루고는 물살은 주변의 모든 것을 포유한 채 허연 포말은 또 다른 화각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 멋진 장면을 노치지 않으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댔다. 물위로는 신선이 지팡이를 들고 나올 것 같은 물안개가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풍경이란 좀처럼 점하기 힘든 구도였다. 지금도 생각 하면 누군가가 찍어 놓은 사진이나 솜씨 좋은 화가가 그려 놓은 듯했다. 그동안 비가 오면 사무실에서 창밖으로나 내다보고 언론에서 비 피해가 얼마라는 뉴스만 보다가 오늘은 마치 신선 나라에 온 듯 행운을 잡은 것 같아 마냥 기쁘기만 하다.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비로 인해 습한 공기 때문에 카메라 렌즈에는 자꾸 성에가 끼기 때문이다. 빗물이 들어가서 고장 나면 고치면 되지 하는 마음이지만 오늘 이 풍경은 잘 나오기를 기대 할 뿐 이였다. 한참을 들뜬 마음으로 마치 자연과 연애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한 장 한 장 사진기 속에 풍경을 담았다. 그래 조금 더 올라가다 보면 더 좋은 아니 내가 평생 보지 못할 그런 멋진 그림이 또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나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그곳은 사천왕을 모시는 사천왕문이 나를 엄숙하게 맞이한다. 그곳에는 먼저 온 무리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사천왕의 무서움을 뒤로 하고는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사천왕의 유래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약600년 전 부터 불교에서 시작한 불교 사상 중 하나로서 “동방” 동쪽에는 지국천(달래기), 서방 광목천(廣目天), 남방 증장천(한결같이), 북방 다문천(多聞天) 등 사천왕을 도상화한 것이다. 지국천왕이 비파, 광목천왕은 용·여의주, 증장천왕이 보검, 다문천왕은 보탑·창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의 사천왕상은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가 조금 더 확대되어, 부처나 불사리(佛舍利)·불 국토나 국가를 악으로부터 지켜주는 신 장상(神將像)으로 숭배되어지며 현재의 사찰 앞을 지키며 세상의 모든 악으로부터 국가와 개인의 안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사천왕(四天王)의 모습은 죄지은 게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무섭게 느껴진다. 툭 불거진 눈망울, 내 몸통보다 더 큰 다리로 죄인을 밟고 있고, 발밑에서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리는 악인들의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온 몸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움을 엄습하게 하여 얼른 그곳을 벗어나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찰을 들어가려면 꼭 거처야 하는 곳이지만 여성들이나 아이들은 무서워하는 곳이다. 천둥번개와 함께 시커먼 하늘에서 내리붓는 비와 사천왕의 험상궂은 인상은 잘 어울리는 한 팀으로 내 마음속으로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사찰의 관문 앞에서 예를 올리고 다시 본 찰을 향해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점점 많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산속의 바람과 함께 내 몸을 적시지만 결코 싫지 않았으며 사무실의 에어컨 바람에 의지하던 시원함하고는 너무도 다른 세상임을 느끼며 오른 곳은 갑사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무릉도원이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흘러내리는 빗줄기는 도심 속 공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계단 폭포처럼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한 컷 한 컷 사진을 찍으며 대웅전 앞마당에 도착 하자 신기하게도 일 년 내내 내릴 것만 같던 비가 어느새 그쳐가고 있었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자비로운 미소로 나를 반겨 주신다. 마치 힘들게 빗속을 걸어온 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시는 것 같아 대웅전 문턱을 넘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싶지만 비로 인해 온몸이 물투성이라 문밖에서 간단히 예를 올렸다. 사찰의 근엄함과 부처님의 미소는 마치 이승과 저승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느낌을 준다. 비 내리는 하늘에는 하얀 인등이 주렁주렁 공중에서 춤을 추고 마당 에는 스님들의 정성이 가득 담긴 연꽃 몇 그루가 그곳을 찾는 이로 하여금 불국 정토와 사바세계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비를 피해 숨어든 멧비둘기와 내 마음이 아마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나는 대적 전 쪽으로 길을 잡았다. 전통찻집 옆으로 흘러내리는 거센 계곡 물줄기는 또 다른 설렘을 안겨주며 오늘 이곳을 찾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잠시의 도시 탈출이 주는 여유와 휴식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얹어 가는 기쁨까지도 만끽할 수 있어 행복하기만 하다.

오락가락 하는 비를 맞으며 대적전을 들어서면 늘 반겨 주는 부도 탑과 앞마당 한쪽에 산 갈대밭, 마당 한가운데 서있는 목 백일홍이 꽃망울을 달고는 늘 그 자리에서 많은 중생들을 반겨주듯 나를 반겨 준다. 그냥 이대로 오늘 이 기분 이대로 대성암 쪽으로 해서 연천봉으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지만 항상 조금 부족한 것이 좋다는 옛 성인들의 말씀을 기억하며 나는 그만 내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거세던 빗줄기도 나한테 가라고 가랑비 가되어 내리는지, 있으라고 이슬비가 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일을 기약해야만 하는 내 삶을 한탄하며 하산하기로 결정을 했다.

갑사 하면 가을 갑사, 단풍이 너무 아름답고 계곡이 함께 만들어 내는 가을 풍경이 절경이라 하여 가을 갑사를 제일로 친다고 한다. 하지만 비오는 여름갑사는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과 깨달음 그리고 추억의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 될 것이다.

올라오면서 보지 못했던 풍경을 다시 한 번 살피며 내려와 매표소 옆에 예전에는 없던 연꽃 밭이 생겨났다. 계룡산 국립공원에서 하는 일 중 제일 맘에 드는 일인 것 같다, 향기는 없지만 고고한 자태, 수많은 설화를 간직한 꽃 연화다. 색색으로 피어 비를 흠뻑 맞은 연꽃은 한층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들떠있던 내 마음까지도 참선의 시간을 갖게 하고 지나던 잠자리도 연밥에 앉아 잠시 참선에 들어간 듯 날갯짓을 멈추고 조용하기만하다.

이모든 광경을 한 장의 사진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한 외출이라 자평하며 입가에 미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연꽃은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아름답게 핀다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오늘 갑사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가 일상에 찌들어 생활하는 나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었던 것처럼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 온갖 소음과 공해 그리고 사람들과의 마찰 속에서도 오늘 본 여름갑사의 연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한 송이 꽃이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