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락호
ㆍ작성일	2010-11-22 01:04

ㆍIP: 175.xxx.28

형님 집에 불이 났습니다.

형님 집에 불이 났습니다. / 김락호 시인

입추가 지나자 사무실 창밖으로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유독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자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난 뒤 한가롭게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어느덧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단잠을 깨우는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왜 또? 어느 분이 돌아가셨냐?”
나는 늘 그렇듯이 또 동네 어르신 중 한분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하는 전화일거라고 추측했다.
“아니요. 집에 불이 났습니다.”
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불이 났다니? 나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소식에 머리끝이 삐쭉삐쭉 서기 시작했다.
“형님이 사시던 집에 불이 났다는 말입니다.”
오래전에 우리 가족은 대전으로 모두 이사를 나왔다. 살던 집은 너무 낡아서 그냥 비워두고 있었는데, 그 집에 불이 났다고 사촌은 호들갑을 떨었다. 나 역시 너무 기가 막힌 소식이라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알았어, 지금 올라갈게”

사촌은 동네 어귀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닙니까?”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지붕이 내려앉고 마루와 기둥 그리고 부엌문까지 아주 까맣게 다 타버렸다. 집이 큰길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 놓았으니 누가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고 전기도 절단해 놓았으니 합선이 될 염려도 없는데 한 참 농사철이라 모두들 바쁜 시기에 도대체 누가 불을 냈단 말인가.

“형님, 그런데 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또 무슨 일?”
가뜩이나 집이 저렇게 돼서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터에 사촌은 또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말은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사촌의 말인 즉은 집이 외진 곳에 있어 아무도 불이 났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불길이 점점 커져 집 전체에 퍼지고 지붕까지 덮자 지나가던 동네 분 중 한분이 발견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손바닥만 한 그 동네에서 농사일을 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급히 119에 신고를 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소방차가 왔다는 것이다.

과자 한 봉지 사러 슈퍼를 가는데도 30분을 넘게 걸어가야 되는 그런 산골짜기 조그마한 동네에 119 소방차가 오기란 다소 시간이 걸리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침 옆 동네에서 산불이 나 그 불을 다 끄고 돌아가는 길에 접수를 받아 우리 동네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다 아는 동네에 빨간색 소방차가 들어오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와 불이 난 그 모습을 일제히 넋 놓고 바라보기 바빴다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오기 전에도 그렇게 까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그저 낡고 초라한 집에 불과 했는데, 동네 사람들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빅이벤트가 벌어졌다고 사촌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요. 형님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그렇지 않아도 까맣게 타버린 집 때문에 한편으로는 속이 상하고 놀래서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데 사촌은 이런 나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그저 이 일에 대해서 조잘 조잘 말하기 바빴다.
“형님, 조상님이 돌보셨는지 달랑 집만 탔어요. 거 참 재미있지 않아요?.”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요. 형님 잠깐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사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싱글벙글 뭐가 그렇게 재미나는지 연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집 옆에는 늘 아버지께서 돌보시던 꽤 큰 규모의 인삼밭이 있었다. 인삼밭 주인이 아버지한테 부탁하여 늘 밤낮으로 자식 돌보듯이 밭을 돌아보시며 아버지와 함께 늘 같이 하던 밭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불이나면서 밭은 하나도 타지 않고 집만 달랑 탔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을 했다. 정말 사촌 말대로 충분히 불이 다른 곳으로 번질 수도 있었을 터인데 다른 곳은 정말 이곳에서 불이 났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집 뒤로는 작은 산이 있고 그 옆으로는 인삼밭이 있는데 바람이 동쪽으로 불었으면 불이 번져 인삼밭과 산 까지 다 탈 뻔 했는데 다행히 서쪽으로 불어서 집만 탔다는 것이다. 천만다행이었다.

“형님, 군에서 보조금 까지 나온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시골에서는 빈 폐가가 늘어나 정부에서도 폐가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모양이었다. 불이 난데다가 어차피 집을 그대로 두면 보기 흉해서 깔끔하게 허물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서 군에 제출하면 폐가를 허무는 보조금 오십만 원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담당 공무원이 벌써 와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말 인지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사촌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저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사촌과 내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동네 어르신이 옆에서 한 말씀 하셨다.
“가게 자리나 집터에 불이 나면 좋은 일이 있다는 소리가 옛날부터 있지 않았었나.”
아닌 게 아니라 불이 났었던 터는 장사가 잘 되고 그 터는 다른 터 보다 비싼 값으로 잘 팔리는 게 부동산 시장이니 어떻게 생각하면 그 다지 애석해할 일도 아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이 이제야 진정이 되었다. 정말 인삼밭까지 불이 번졌다면 대전에 있는 집을 팔아서 물어줘도 모자랄 뻔 했는데 십년감수를 했으니 그건 다행이고, 보기 흉하게 빈 폐가로 있느니 이참에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깔끔하게 집을 허물고 땅만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니 오늘 벌어진 이 일이 어떻게 생각하면 그다지 속상해할 일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 추억이 서린 집은 이제 한줌의 재가 됐지만 사람이 과거만 회상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이번 일을 계기로 인해 화마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 “불”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올 한해가 불처럼 활활 일어나길 내심 기대하며 오늘 벌어진 이 기막힌 사건에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강사랑 2015-06-28 18:11	웃음이 나온 이유는 좋은 증조가 있을것 같은. . . 하시는 사업이 대박 나시겠지요. 조상의 덕을 갖고 계신가 봅니다.. 앞으로 넘어져서 금 덩이를 줍는 격으로 "형님 집에 불났어요.." 지나고 나니 이렇듯 웃음으로 글이 되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독자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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