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아닌 절도 / 김락호 시인.




 

남자라면 한번쯤은 해 봤을만한 낚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으며 요즘은 여성들도 자주 볼 수 있는 레저 스포츠로 오랜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다. 아니 즐기는 표현도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레저스포츠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다만 낚시의 경우는 가끔 친구들과 어울려 자리만 같이 할 뿐, 지루함에 흥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다. 하지만 내가 지금 낚시 이야기를 슬며시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모르는 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은 황당하기도 했던 이야기를 해 볼까 해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항상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 선배들이 느닷없이 낚시를 가자며 의기투합을 했다.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하는지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젊은 날엔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무엇을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에 나 또한 그들과 합류하여 대전에서 삽교호로 가기로 하고 국도를 따라 공주를 거쳐, 예산, 대천을 통과하여 삽교호 근처에 도착했다. 언젠가 한번 이곳에 와서 손맛을 봤다는 선배의 말에 현혹되어 기대에 찬 마음으로 낚시터를 찾아갔지만, 그곳은 낚시 할 자리가 없었다. 안내를 하던 선배도 난감해 했고, 기대에 찼던 우리들도 맥이 풀려 그 자리에 앉아 주위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가뭄이었던 것일까? 물도 많이 줄어 있었고, 그 큰 강물은 동네 실개천만큼의 물만 흐르며, 이곳이 강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신발을 벗고 강물 주변을 돌더니 뭔가 큰 것을 들고 우리에게 흔들어 보였다. 민물조개였다. 손바닥만 한 조개를 본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강물로 들어갔다. 물이 빠진 강가에 빼꼼이 혀를 내밀고 있는 조개를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잡을 수 있어 서로 내 것이 더 크다며 조개 잡는 것에 빠져 있었다. 준비해간 낚시도구는 차안에서 깊은 수면에 빠져 있었고, 우린 낚시를 하러 왔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리고 조개잡이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허탈함도 잊어버리고, 낚시를 왔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놀다가 보니, 뱃속에서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 좀 먹고 놀자!”


친구 하나가 잡던 조개를 바닥에 던지며 배를 슬슬 만지고 있었다. 그 때문 이었을까? 방금 전 까지만 해도 그냥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배가 고파 도저히 못 움직이겠다는 시늉을 해보이자 너도 나도 더 이상 기력 없다는 듯 주저앉았다.


“낚시를 했어야 매운탕을 끓이든가 하지.”


“라면에 조개 넣어서 해물라면 만들어 먹으면 되지 않을까?”


“형, 그거 진짜 기가 막힌 생각이다.”





 

끓는 물에 조개를 한 냄비 넣고 익혔다. 조금 있으니 조개는 좋아서 입을 벌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뜨겁다고 제 살을 드러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부끄럽지도 않은지 속살을 허옇게 드러낸다. 우리는 물을 끓여 라면을 넣고, 벌어진 조개의 속살만을 골라서 라면에 넣었다. 다들 배가 고파서인지 냄새에 침을 꼴깍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냄새 하나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되니 다들 기다리는 자체가 그야말로 지루함이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라면을 전담해서 끓이고 있던 선배의 외침이 들려왔다.


“먹자!!”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여러 명이 일제히 나무젓가락을 들고 냄비 앞으로 달려들었다. 넉넉하게 넣은 조개를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나무젓가락 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서로 웃으며 부드럽게 느껴지는 조갯살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야! 이거 뭐가 이렇게 질겨? 이빨도 안 들어간다.”


“그러게, 우리가 잘 못 끓인 건가?”


“너무 오래 끓인 거 아녀? 원래 조개는 살짝만 익혀서 먹잖아?”


그 친구의 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라면에서 조갯살을 다 골라내고 라면만 먹는 것으로 고픈 배를 채우며, 국물에 소주 한잔씩을 했다. 낚시 가서 라면국물에 소주 마시는 그 처량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 낚시 도구가 차안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얼큰해진 우리는 기왕에 낚시를 왔으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손맛은 보고 가야 할 것 아니냐며 자리를 정리했다. 난 일어서서 차가 주차되어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강뚝에 웬 밧줄 하나가 강으로 향해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그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았고, 서성거렸지만 지금까지 왜 못 봤는지 모르겠다. 난 호기심에 밧줄을 슬쩍 잡아 당겨 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단 발을 바닥에 박혀있는 큰 돌에 중심을 두고 힘껏 당겼다. 강 한 가운데로 이어져 있던 밧줄에 무엇인가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야! 이거 고기 잡는 그물 같은데?”


그때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친구와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는 힘을 합쳐 영차 영차, 두어 번 잡아당기니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벌떡이는 모습이 우리 시아에 다가왔다. 너나없이 모두 신이 났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손바닥만 한 붕어였다. 그리고 강준치, 가물치, 은어, 피라미 등 정말 내가 아는 종류의 물고기는 다 올라오는 듯 했다. 팔뚝만한 고기부터 손가락만 한 고기까지, 다양한 종류들의 고기를 보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고기를 그물에서 꺼내기에 바빴다. 친구 중 한 녀석은 벌써 어디선가 다 헤진 비닐포대를 하나 들고 왔다. 바로 뒤에서 그물을 잡아당기던 친구 녀석이 그물에서 손을 놓았다.


“이거 도둑질 아니냐? 누군가 생계를 위해 매일 새벽에 이곳에 그물을 쳐 놓는 거 아닐까?”


“맞다!”


그 순간 그물을 당기던 사람들도, 고기를 그물에서 빼내던 사람들도 손을 멈췄다. 그리고 서로 얼굴만 번갈아 보며 멍해져 있었다.


“도망가자. 주인오기 전에”


“그럼 고기는?”


“그물에다가 다시 껴 넣을 수 있으면 끼워 넣어라. 근데 되겠냐?”
“야 그물은 넣어놓고 가야지!”


낑낑 거리며 걷어 올리던 그물을 이제 다시 물에 넣기 위해 낑낑거렸다. 그물은 처음 모습은 아니었다. 뒤엉키는 부분도 있었고, 뒤집어진 부분도 있었고,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처음의 모습으로 던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두어 사람은 누군가가 오는지를 보면서 가슴조려 했다.


일단 자리에서 떠나야 했다. 이것은 서리가 아닌 도둑질이었다. 더군다나 값나가는 물고기들이 비닐포대에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어린 시절 서리처럼 생각을 했었지만, 포획한 물고기를 본 순간 이것은 절도행위라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서둘러 주변 정리를 하고, 범행현장을 빠져 나가는 것만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낚시고 뭐고 필요 없었다. 일단 범행 장소에서 떠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각자 차에 올라 급하게 자리를 떴다. 다들 술 한 잔씩을 했기에, 술을 마시지 않은 내가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남의 차였기 때문일까? 절도 행위 때문이었을까? 운전대를 잡은 손이 바르르 떨려왔다. 가끔 보는 백밀러와, 룸밀러를 수시로 바라보며, 혹시 누가 따라오지 않는지 확인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라고 했던가? 대전으로 돌아오는 동안 교통경찰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호대기 할 때 옆 차선 운전자와 시선만 부딪혀도 금방이라도 도둑놈이라고 소리칠 것 같았다. 어느 차량이 내 뒤를 5분만 따라와도, 우리를 잡으러 오는 사람인 것 같아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미리 계획을 세워놓고, 추수철이 되면 나이 드신 분들이 여름 내내 농사지어 놓은 고추며, 참깨, 벼들을 실어가 버리는 그 범죄자들의 간댕이는 얼마나 큰 것일까? 분명 일반인들 보다 더 클 것이라 짐작된다.





 

어찌되었든 정신없이 대전으로 온 우리들은 친구 집에 모여 고기와 조개들을 다듬으며 아는 사람들은 모두 초대했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잡았는지 알아? 라고 너스레를 떨고 싶었지만, 다들 양심이 찔리는 모양이다. 누구하나 고기를 어떻게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이쿠, 이렇게 큰 고기들을 어떻게 잡았데요? 낚시로 이런 것도 잡아요?”


“하하 뭐 그렇죠?”


누군가는 얼버무리고, 누군가는 시선을 피하고, 누군가는 회를 뜬다며 분주하게 움직일 뿐, 낚시에서 잡은 고기라면 큰 소리로 그 무용담을 이야기 할만도 한데, 누구하나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모였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회를 떠먹기도 하고, 몇 명은 집에 가서 매운탕 끓여 먹어야겠다며 몇 마리 가져가기도 했지만, 정작 함께 낚시를 갔던 우리들은 누구하나 고기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누군가 이렇게 큰 고기를 어떻게 잡았냐고 인사말을 하면 약간 과시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죄를 짓는 다는 것은 어지간히 마음 다잡지 않으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날이었다.






 

장마가 올려는 모양이다. 날이 후덥지근하면서 온몸이 끈적거린다. 친구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어항 들고 개울가 가서 고기나 잡아 오자며 너스레를 떤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좋다. 하지만 가끔은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범죄였을 때 그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이제는 안다.





 

지금은 시골에서 아이들의 장난이었던 서리라는 개념은 없다. 그렇게 장난을 칠만 한 아이들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추수철이 되면 들에 널어놓은 곡식들을 걷어가는 절도범들이 극성인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서리라는 단어에는 풋풋함이 있는 듯하다. 없어서 못 먹던 시절에 어른들의 넉넉한 인심을 안고 있었던 단어이기에 그 서리라는 단어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제는 서리가 아닌 절도가 되어 버린 세상을 인심이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법치국가에서의 당연한 권리라고 해야 되는 것일까. 다만 이제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서리 아닌 절도였던 그 아련한 추억마저 아찔하게 느껴지는 것이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