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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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09-02-2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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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원이 생긴다면?

백만원이 생긴다면?
시인/수필가/ 김락호

요즘 우리서민들은 십년 전 그때의 악몽을 다시 되새김질 하고 있다. 금용대란, 경제위기, 신용불량자, 노숙자 같은 단어를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살았던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삶의 무거움을 이 시대에 다시 한 번 느끼고 살고 있다.

오늘날 각국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노력들을 하고 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시장 방임주의는 현재와 같은 경제 재앙을 막거나 대처하는 데 무능한 것으로 이미 판명 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민은 더욱 생활보호대상자로, 그나마 하루 벌어 세끼를 먹고 살던 이웃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있는 사람들은 기회의 시기로 더욱 많은 재산을 불려 상류층으로 진입 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꼭해야 할 일과 그저 흐르는 세월 속에 묻어버리는 일이 있듯 우리에게는 설 명절이라는 가슴 설레게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있다. 없는 자나 있는 자나 명절은 좋은 만남의 시간일 것이다. 흰 눈이 고향집 뒷산에 소나무를 하얗게 꽃피운 아름다운풍경이 그립고, 부모님 허리 굽혀 일하시던 논과 밭이 원망스럽기만 하던 시절들 이 모든 것이 바로 고향이며 자연의 순리이기에 우리는 그 먼 길을 싫다하지 않으며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

돈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요즘 경제이야기를 쓸데없이 하게 된다.
어릴 때에 들었던 전래동화나 설화에서 보면 맷돌을 돌리면 소금이 펑펑 쏟아지고, 도깨비 방망이는 돈 나와라 뚝딱하면 돈이 나오고 하는 이런 상상의 이야기를 우리는 접하면서 성장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그런 동화 같은 꿈을 꾸는 성인들이 많아지면서 또 생활이 어려워질수록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한 일이였다. 그때 나는 대전에서 음악 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팔십 년대 초에 유행하던 음악다방과 전통 음악 감상실이었다. 음악다방은 커피를 마시며 music box라 쓰인 곳에 앉아있는 DJ에게 음악을 신청하면 DJ는 사연과 함께 음악을 들려주었다. 반면 음악 감상실은 커피는 없고 그저 극장식으로 의자만 있어 전문 DJ가 들려주는 풍부한 팝 가수들의 프로필과 음악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함께 아름다운 음률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흔하게 오디오가 없던 시절 고급스런 음질과 음감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필히 들려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설 명절날까지 영업을 해야 하기에 하루 전날 직원들 월급도 주고 명절 떡값을 주기 위해 은행에 들렸다. 통장과 도장을 챙기고는 가까운 은행에 들어가 천원권 만 원권 등을 바꾸고 현금을 찾기 위해서 만 원권 2,000,000원하고 오천 원 권 200,000원 천 원 권 100,000원으로 주세요. 그러자 은행직원은 즐거운 명절 되시라고 상냥한 인사를 건네며 돈다발을 챙겨준다. 가져간 가방에 돈을 주워 담고는 기쁜 마음으로 은행 문을 나와 운영하고 있던 음악 감상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모를 도난사고에 대비해 이틀 후 영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돈을 지키느라 고생이었다.

명절 하루 전,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영업을 끝내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위해 나는 전자계산기를 앞에 두고 열심히 계산을 해서 일일이 봉투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돈을 세어서 봉투에 넣기 위해 돈을 세는데 한 장이 이상하다.
잉!!!
이게 뭐야?.....!!!
뭔 수표?
백만 원 권 수표?
어라? 왜 여기 있지?
다른 돈하고 섞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나는 은행에서 현금 백만 원만 찾아왔고 그 당시 백만 원 권 수표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더욱 놀랬다. 황급히 전체 돈을 세어 보았다. 내가 찾은 돈은 백만 원이였는데 그 백만 원이 백구십구만 원짜리 돈다발 이었던 것이다. 황당하기도 하고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고민에 잠겨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하여튼 얼른 계산을 해서 월급봉투를 만들고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지갑에 잘 모셔 두고는 해결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이 돈을 내가 그냥 꿀꺽 해버리면 은행직원이 변상해야겠지? 아니다 뭐~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쓰면 어때 그렇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마음으로 명절이 되어 집식구들과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으며 그 돈 이야기를 하자 너도나도 같이 쓰자고 난리들이다. 하나같이 그냥 써도 된다는 의견들이였다. 하여튼 난 그 일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하고 지갑속이 든든한 명절을 보낼 수 있었다.

명절이 끝나고 나는 은행으로 달려가 그 은행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가씨, 혹시 뭔 일 없어요?
무슨 일이요?
혹시 아가씨 돈이 비지 않았나요?
아니요 저희는 아무 문제없고요 계산 다 마치고 결산했는데요.
어, 이상하다 내가 명절 전에 돈 찾아간 거 기억하시죠?
네 그럼요.
그 돈속에 백만 원 권 수표가 들어있었어요.
이거거든요.
와~~ 좋으시겠다. 그럼 사장님 쓰세요.
네???
허참. 이상한일이다. 난 은행아가씨가 잘못하여 수표가 섞여 들어간 줄 알고 돈을 다시 가져왔는데 은행에서는 아무 문제없고 또한 조회를 해보니 도난이나 부도 수표도 아닌 정상적으로 쓸 수 있는 수표라는 것이다. 귀신에 홀린 기분도 들고 하여튼 어안이 벙벙해 하다 그럼 이 수표를 은행에서 보관하고 있다 혹시 주인 나오면 주세요. 하니까 은행에서는 그 수표를 맡을 수 없단다. 저축도 아니고 일반의 돈을 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수표를 들고 다시 나오면서 그럼 혹시 주인 나오면 연락 달라고 하곤 가게로 돌아왔다. 공돈이 백만 원이나 생겼으니 우리 오늘 회식하자며 직원들한테 이야기의 전모를 이야기하자 직원들은 본인 일 인양 모두 기뻐하는 모습에서 나 또한 행복감을 느꼈다.

그렇게 3일이 되는 날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그 돈 주인이 나타났어요.
네·~~에......?!
지금 은행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아네. 그러지요. 뭐…….

그 전화를 받고 왠지 모르는 허탈감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기쁘기도 하고. 하여튼 나는 도대체 주인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은행 문을 들어서자 은행직원이 저기, 저분이세요. 하며 인사를 시킨다. 그 여성은 이십대 초반의 아가씨였고,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회사원으로 보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돈을 저금하면서 그만 수표하고 섞어서 입금을 했었나 봐요. 그동안 저는 월급에서 그 돈을 배상하기로 하고 잊고 있었는데 제가 오늘 저 언니한테 돈을 잃어버려서 물어줘야 한다고 했더니 사장님 이야기를 하시는 거여요.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하며 연신 인사를 해댄다. 나는 지갑에서 그 수표를 꺼내어 건네주고는 마음속으로 뿌듯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하여튼 그 덕분에 나는 계획에도 없던 직원들한테 회식을 시켜 주었지만 나름 행복했다. 그 뒤로 그 아가씨는 자주 우리 음악 감상실에 놀러와 단골손님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이 되었다.

참으로 돈이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요상한 존재다. 돈 때문에 울기도 하고, 돈 때문에 양심을 팔고, 영혼마저도 팔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없어서도 안 되는 필요악의 존재. 다만 돈이라는 것은 삶을 조금 더 편하게 하는 도구여야 할 것이다.
아직도 그 잃어버린 돈을 찾고 해맑게 웃던 그 아가씨의 미소가 선연하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 정말 그렇게 눈 먼 돈이라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마다 그 해맑은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돈은 누구에게나 웃음을 줄 수 있는 행복한 물건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꿈이겠지.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자 또한 있기 마련이니, 하지만 난 꿈꾸어 본다. 모두에게 행복한 미소를 줄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요즘처럼 경기가 불황일 때면 가끔씩 그때의 백만 원이 그립기도 하다.

시간 속에 묻은 사랑/ 김락호

비 내리는 여름 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