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살려준 아이/ 김락호

겨울 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으슬으슬 다가오는 추위, 때로는 살갗을 여미는 듯한 고통의 추위, 하지만 겨울하면 눈부시도록 새하얀 눈이 추위보다 먼저 그리움으로 떠오를 것이다. 한여름에는 그렇게도 깊고, 가진 것이 많던 산속도 허연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관능적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다가오는 계절이 바로 겨울이다.

나의 어린 시절의 일이 생각이 난다.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추억의 아픈 기억이지만 또 평생 숨기고 싶은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 했던 이야기다. 너무 창피해서! 아니면 너무 겁이 나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런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나만의 비밀을 갖고 싶은 마음이랄까. 내 나이 지천명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는 것은 그만큼 나한테는 충격이 커서 일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다. 예나 지금이나 겨울만 되면 정말이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눈이 오는 곳 바로 강원도다. 이야기의 시작은 내가 초등하교 일학년 때일 것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날이다.

아버님은 하루도 술을 안마시면 못사셨는지 매일 소주1병 이상을 마시신다. 그 술심부름은 거의 내차지다. 위로 누이들이 둘이나 있지만 그래도 남자라고 나한테만 술심부름을 시키시는지 야속하기만 했다. 너 가서 술 한 병 사오너라 하시면서 돈을 건네주신다. 네~에 하고는 마을에 있는 당시 공회당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5분 거리이니 그 정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 한가운데 있는 가게로 향해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자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안녕하세요. 소주 한 병 주세요. 하니 아주머니가 어쩌니 오늘 술이 다 떨어졌는데!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집으로 달려와 아버님께 아버지 술이 없데요 다 떨어져서 오늘은 술이 없다는데요. 그래? 그럼 읍내에 가서 사오너라 하신다. 난 유난히도 큰 눈을 껌벅거리며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읍내까지는 집에서 약3시간이 더 걸리는 먼 거리다. 우리 집은 청룡리라는 곳이고 읍내라 하면 횡성 읍내를 말하는 것이니 어린 나한테는 그야말로 걸어서 서울을 갔다 오라는 말과도 같다. 난 한참동안을 멍하니 마당에 서서 어머니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제발 아버지를 말려 달라는 무언의 시위였다. 어머니께서 드디어 말씀을 꺼내셨다. 어린 아이가 그 먼 곳엘 이 밤중에 어떻게 갔다 오라는 거냐고 아버님께 만류하는 말을 건네 보았다. 하지만 아버님의 성격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타부터 하는 처지라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빨리 술사와. 하는 말 한마디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도 더 이상 어떤 말씀도 없으셨다.

나를 쳐다보시면서 꼭 사자가 먹잇감을 보고 포효하듯 소리를 냅다 지르신다. 빨리 안 갔다 올래? 하시면서 몽둥이를 찾으신다. 나는 겁에 질려 하는 수 없이 집을 나와 읍내로 길을 잡았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래 어차피 갔다 올 것이라면 빨리 뛰어서 갔다 오자 하면서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날렸다. 한 시간쯤 뛰어서 도착한 읍내, 문이 열린 가게를 찾아 술을 한 병 사서 다시 집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올 때는 그저 빨리 갔다 오자는 마음에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왔지만 가는 길은 왠지 겁도 나고 어떻게 가야 하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이 하얗게 뒤덮은 산뿐인데 누군가가 보는 것 같고 또 뭔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이다. 그러자 올 때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청룡고개를 넘어오다 도깨비한테 홀렸다는 이야기서부터 호랑이한테 잡혀 먹힐 뻔 했었다는 이야기들이 온 몸으로 전율처럼 다가온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그렇게 하얗고 아름답기만 하던 풍경 하나 하나가 다 어떠한 형상을 띄고는 나를 향해 달려 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저 고개만 넘으면 마을이 보이는데 그래 이를 악물고 가자 올 때도 아무 일 없었으니 갈 때도 별일이야 있겠냐 하는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 했다. 하지만 점점 더 밀려오는 두려움은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때였다. 저기 멀리서 허연 광채 두 개가 번쩍거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산속에 먼 불빛이........ 그러자 문득 저것이 바로 도깨비?!!! 그 생각과 함께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 아무생각도 나질 않는 것이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생각 끝에 고개를 살짝 들어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휴……. 살았다, 하면서 다시 발길을 집 쪽으로 향해 얼마쯤이나 걸었을까 아직 청룡고개는 넘질 못했고, 온 몸에는 식은땀이 흘러 몸에서는 늦가을 개울가에서나 피어오를 듯한 물안개 같은 것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잰걸음을 내딛다 보니 아까는 그렇게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로 흘렀는데 이제 서서히 추위가 몰려온다. 엄습해오는 추위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는 시린 손을 불어 가면서 열심히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내 앞에 휭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는 사라진다. 얼핏 보인 것은 짐승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호랑이일거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기절을 해버렸다.

한참이 지났을까 아니면 잠시였을까 아무튼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아리도록 시린 손을 불면서 꼭 들고 오던 술병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눈 속에 엎드려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호랑이가 날 잡아먹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의 숨결을 가다듬고는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가야 하나 이대로 날아 밝을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까 아니면 그래도 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기로 하고는 없어진 술병을 찾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술병이 보이질 않는다. 눈 속을 한참을 뒤적이다 포기를 하고 앞으로 몇 발작을 걷자 내가 가지도 않은 한참 앞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내가 놀래서 기절을 하면서 술병을 집어 던진 것 같다. 그렇게 술병을 찾아 들고 다시 걸으려 하는데 아랫도리가 이상하다. 썰렁한 것이 뭔가! 얼어 버린 것처럼 버걱거리는 게 아닌가. 잠시 살펴보니 너무 놀라서 그만 오줌을 싸버린 것이다. 얼마나 놀랬으면 오줌을 싼 것도 몰랐을까 바지는 다 얼어 버렸고, 온몸은 얼음덩어리처럼 서걱거린다.

사람이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질 않는다고 하질 안 턴가 내가 꼭 그 짝이었다. 너무 무서웠고 그 공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집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청룡고개를 넘어서자 눈앞에 동네가 보였다. 나는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호랑이가 날 잡아 먹지 않고 살려 줬다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추위는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고 왠지 모를 서러움과 이 밤중에 술을 사오라고 시킨 아버지가 밉다는 생각에 치를 떨었다.

그렇게 눈물 반 억울함 반 그리고 고통을 삼키면서 마을 입구를 들어서자 어머니와 누이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그동안 울지도 못했던 서러움에 어머니를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그저 아무 말도 못하시고는 나를 업고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집에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 흔적이 남아있다. 아마도 술을 늦게 사온다고 아버지가 어머님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신 것 같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가 이불을 덮어쓰고는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내가 오줌을 쌌던 이 애기도 호랑이가 날 살려 줬다는 이야기도 하질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삼일을 앓아눕고 말았다. 몸이 나았을 때는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고 나또한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때 결심을 했다. 난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도 절대로 술을 먹지 말아야겠다는 결심. 그리고 내 부인과 자식은 때리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아마도 들 고양이 아니면 삵이었을 것이다. 너무 겁에 질려있던 터에 찰나의 시간에 당한 일이라서 아마도 그때만 해도 호랑이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내 눈에는 호랑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동물의 눈은 밤에 보면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빛나는 것을 나중에 성인이 되서야 알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직 나의 결심을 실행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정상적인 가정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만약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면 그들에게 폭행을 휘둘렀을지, 그렇지 않았을지. 하지만 그때의 결심에 의해 지금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술로 인하여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성인이 된 지금도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술이란 기분 좋은 만남을 위한 매개체가 되었을 때는 활력소가 되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경우를 생각하면, 필요악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가끔 술을 마시지 못하기에 인생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경우도 있지만, 인생을 알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술로 인해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