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나의 스승이다. (수필글) /김락호

평소에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내게도 요즘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만큼이나 변덕을 부리는 것 같다.
어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려는 듯 멀쩡했던 하늘이 갑자기 시커먼 구름에 뒤덮이는가 싶더니 이내 굵은 빗줄기가 거센 바람과 함께 쏱아지기 시작했다. 단 몇 분이었지만 멀쩡한 하늘을 보며 우산을 들고 외출하지 않은 나를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빗속의 탕아로 만들어 버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 뉴스를 보니 내가 비를 맞고 있던 그 시간에 전국에서 터진 사건 사고들로 뉴스가 술렁대고 있었다. 낙뢰를 맞아 사망한 사람들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는 저 상황이 내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팔뚝에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살을 태울 것 같은 태양이 구름 한 점 동반하지 않은 채로 펄펄 끓는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고는 그래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점심으로 냉콩국수 한 대접을 넙죽 먹어치웠다.
시원한 음식을 무기 삼아 더위라는 적과의 전쟁을 이기려 노력 하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라는 이 만만치 않은 적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인정을 베풀지 않으려는 듯 한낮엔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에잇 그래, 오늘은 내가 졌다.’
이럴 때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몸을 피신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을 찾을 길 없다.
집에 들어와도 사실 별반 달라질건 없다.
단지 하나, 저 무지막지한 태양을 보지 않아도 될 지붕과 열기를 차단해주는 벽을 사이에 두고 그래도 숨어들어와 있는 열기를 먹어치워 줄 에어컨이 집안으로 피신한 불쌍한 탕아를 반겨주고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른 차이점일 것이다.
집에 들어오면 으래 신문과 TV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
그러나 신문을 보면 정치싸움이 지면에 반을 차지하고, 세상 속으로 합류하려 뉴스를 틀어도 똑같은 싸움의 반복만 보일 뿐, 이 더위를 날려줄 신선한 뉴스는 쉽게 그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나만의 뉴스 시청 방법을 마련했다.
‘뉴스를 시작하고 한 10분쯤 있다가 시청을 한다.’
이렇게 하면 자칭 자기들은 중요뉴스라며 했던 말 또 하기를 되풀이하는 보기 싫은 내용들은 대충 걸러지고 새로운 사건사고와 국민들이 알아야할 지식 같은 알짜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제는 신문들도 디지털뉴스 콘텐츠 전문 업체와 손잡고 티브이로 보는 신문(일명 아이페이퍼)이 등장했다. KT의 메가 티브이를 통해 서비스되는 티브이신문은 신문 지면을 피디에프(PDF) 파일로 변환해 통째로 보여줌으로써 온라인신문사와 함께 또 다른 정보화 시대를 만들어 더 많은 지식을 알려 주고자 하는 취지를 가지고 첫 출발을 했다고 한다.
요즘 TV 또한, 어린 시절 김일 선수의 박치기를 보기위해 또는 수사 반장을 보려 숙제를 일찍 끝내고 친구네 집 앞을 서성거리던 시절처럼 애뜻한 설레임은 없지만 그래도 현시대에 맞춘 다양하고 볼만한 프로가 많이 생겼다.
그러나 TV라고해서 모두에게 유익하고 신선한 방송으로만 비춰지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떠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보여 질 것이다.
좋은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식이라는 존재로 습득되도록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 허나 그 와중에 모르고 있던 나쁜 것들 역시 배우게 됨은 상대적으로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공공에 해가되지 않는 프로가 더 많은 것이 다행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틈나는 대로 나는 TV 프로를 많이 보는 편이다. 다른 한국의 중년남성들처럼 나 역시도 사극을 즐기고 예능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이다.
사실 중년의 나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학교에서의 지식은 지금처럼 복잡하고 변화시켜야하는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를 살아내야 함에 있어서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교과서적인 지식은 바른생활의 기초를 다지는 단지 초석에 불과한 것일 뿐이지 그것이 삶의 모든 전반적인 사항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새로운 지식은 현 시대의 보편성에 맞춰가며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공부할 때 비로소 성장을 하게 된다고 본다.
그 스승역할을 비록 TV라는 작은 상자 속이지만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뽑아가며 시청한다면 따로이 시대적 공부를 하지 않아도 뉴미디어 시대에 조금이나마 따라갈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지식은 습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방송프로그램 중에서 시청자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제보하면 출연자들이 나와서 함께 풀어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 역시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인지라 즐겨 보는 곳 중 하나다.
그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어찌 저런 것을 알았을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내용들이 속속 등장한다. 단순히 오락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생활한다면 전반적으로 도움이 될 그런 발견이 많이 있어 추천을 할 만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또 얼마 전부터 모 방송에서는 생활 속에서 많이 일어나는 사소한 법률지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내가 예전에 처했던 상황과 아주 똑같은 경우가 예시 문제로 나온 것을 봤다. 귀를 크게 열고 소파에서 일어나 긴장을 하며 TV속 출연자들과 한마음으로 진지하게 문제를 들었다.
나 자신이 변호사라도 된 듯 또는 판사가 된 듯이 TV속의 출연자와 함께 내 의견을 정리하다 보니 그간 혼자만 속앓이 해왔던 문제가 풀리며 왠지 모르게 속이다 시원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런 것이 상대적 지식 습득으로 인한 대리만족에서 오는 풍만감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기분까지 상쾌해지니 필시 건강에도 좋은 일일 것이다.
위의 프로그램들이 모두 유익한 방송이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청하는 프로그램은 자연다큐멘터리다.
각 방송사들이 만들어 내는 자연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이치와 그 오묘함이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이 세상이 펼쳐 보이는 경이로움이 마치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면서 도시속의 삶에 찌든 심신이 조금이나마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나레이터의 설명까지 덤으로 듣고 있으면 짐짓 모른 체 지나칠 수 있는 세세한 부분의 결말까지 알 수 있으니 가만히 앉아서 이보다 더 좋은 공부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배움의 길은 내가 살아있는 그날까지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의 여정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지식을 주는 이가 내 친한 지인이면 어떠하고 잡스러운 인간이면 또 어떤가. 또 바보상자면 어떠하고 휴지조각으로 변할 신문지이면 어떤가.
길가를 구르는 개똥에서도 지식은 있고 하늘을 나는 새에게서도 배움이 있다는 옛 선인들의 말씀이 괜히 생겨난 말은 아닐 것이다.
하여 나는 오늘도 더운 여름의 휴식을 핑계로 자칭 바보상자라 불리는 TV 앞에 앉아 열심히 공부를 한다.
남들이 뭐라 말하건 세상에서 가장 편한 마음으로 다양한 지식을 TV에게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