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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1-16 16:21
ㆍIP: 58.xxx.42
인과연
인과 연

        권영심 ( 2022 , 1 , 16 )

아버지의 첫 제사를 지내면서 엄마는
굉장히 긴장하는 듯 하더니, 음복을 몇
잔이나 하면서 극도로 흥분했다.
나중엔 술에 취해서 울고 넋두리하고
소리쳐서, 우리들은 몹시 난감했다.
생의 인연에 너무나 무심했고, 어릴 만큼 젊었던 나이였기에 그랬을까?
엄마의 그 고통과 고통일 수 밖에 없는
질투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 했었다.
한 번도 엄마의 처지에서 이해해보려
하지 않았었다.
제사를 거듭하면서 엄마의 넋두리는 정
도가 누그러지기는 했으나 여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알았다.
엄마는 아버지를 그리도 사랑했음을.
그리하여 이미 생과 사가 갈리어 자취도
없건만, 엄마는 아버지의 옆에 자신이
없음을 그렇게 애통해 한 것이다.
이 생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 남편의 옆
에 딴 여인이 있을 거라고 단정지으며 엄마는 못 견뎌 한 것이었다.
- 좋것소, 아주 좋것지야? 인자 다시 만나서 알콩달콩 사시요? 을매나 좋소?
그 곳에는 남북한을 가로막는 철조망이
있것소? 삼팔선이 있것소? 훨훨 날아가
서 서로 껴안고 좋아 죽것지야?
그라믄 나는? 나는 어야요? 나는 죽어서
당신 옆에도 못 가고 구천을 떠돌것소?
그래서 안 죽을라요, 오래 오래 살아서
당신을 잊어 뿔라요, 이자 뿌리면 당신
옆에 안 가도... 못 가도... -

한 번도 끝내지 못한 넋두리는 울음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되풀이되고, 그것은
엄마의 절절한 사랑 고백이었음을 이제
는 안다.
이북에 첫 부인이 있다는 것을 혼인하고
알았고 그것은 엄마의 평생의 아픔이었
고 슬픔이었다.
통일의 이야기가 엄마에겐 두려움이었
고, 아버지의 망향의 슬픔이 첫 부인을
향한 그리움으로 보여졌을 엄마의 심정
을 어느 딸도 이해해주지 않았다.
엄마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은, 그 시대
여인들의 순정하고 결벽한 특징이지만
엄마는 더 특별했다.
배움이 없어 정려하게 표현을 못 했을
뿐, 엄마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했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음에도 그 사랑은
여전했다.
바람벽에 기대 살아도 살아만 있어주소
가 엄마의 애끓는 바람이었음을 이 딸은
너무나 늦게야 깨달았다.
병든 지아비였으나 자신의 의지였고 이
삶의 모든 것이었으며 숨만 붙어 있어도
살아만 있어 달라고 원했던 사랑.

어찌 알랴?  어이하랴...
삶은 언제나 그 때가 되어야만 알수있는
것이 있는 것을.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그 생이
다할 때까지 함께 있었음을 나는 안다.
술 한 잔을 마시고 언제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던 엄마의 사랑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다른 세상으로 갈 때 엄마의
나이 불과 47세, 그 당시는 엄마는 할머
니였고 남편을 잃은 과부였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당연히 아버지만 생각하고 나머지 인생 을 홀로 살아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47세가 되어 보니 너무나 젊었다.
너무 젊어서 이삼십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서야 엄마의 47세 나이가 가슴에
사무쳤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엄마는 아버지와
헤어졌구나... 다시는 만나보지 못할
그리움의 생이 시작되어 그 길을 홀로
걸어 갔구나, 너무나 사무쳐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사랑이란, 다시는 만날 수도 없고 볼 수
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이에 대한 사랑
이란 얼마나 기막힌 것일까?
자식들은 아무도 몰랐으나 너무나 젊은
나이에 남편은 떠나고 엄마는 홀로 보내
는 나날의 낮과 밤을 무엇으로 어떻게 살았을까?
사랑하던 아들은 몇 해 전에 떠났고 큰 딸은 매정하리만치 곁을 주지않았고,
둘 째와 막내 딸은 미혼으로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홀로의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는
여전해보였고 억센 시장아줌마로 잘 살
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내게 들키는 엄마의 마음, 그것 은 그리움이었고 사랑이었다.
나는 나이들어 가면서 엄마의 사랑을
가슴 아프도록 이해하고 그 바람을 알게
되었다.
죽어도 아버지의 옆에 못 가리라는 고통
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 생전에 단 한 번도 그 마음을 위로하지 못한 이 딸을 용서하세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아무리 미안하다고 수 천 번을 말해도
엄마에 대한 죄의식은 씻을 수가 없다.
알면서도 모른 체한 이 고약함의 죗값이
날로 무거워져서 때론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부모되고 자식 됨의 이 인과연을 어이
하랴?
이미 생사가 갈리었으나 내 부모였고,
추억은 날마다 생생해지며 못난 짓, 나쁜 짓은 더욱 더 생각나서 이토록이나 괴롭다.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진정으로 손
잡아주고 그 깊은 아픔을 들어주고 위로
해 주었더라면...
한 번이라도 그랬더라면, 내 가슴을 치 고 눈물 흘려도 이제 소용이 없다.
모든 인과연은 그렇게 흘러간다.
아무리 애절한 사이라도 그렇게 흘러가
서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
그리움으로 남아 이렇게 가슴치더라도
다시는 볼 수 없는 부모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늦게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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