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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2-06 19:46
ㆍIP: 58.xxx.42
그 때 우리는 무엇으로 놀았을까?
그 때 우리는 무엇으로 놀았을까?

        권영심 ( 2022 , 2 , 6 )

남동생은 그 때 딱지치기와 구슬치기에
목숨을 걸었다. 심한 표현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랬었다. 남동생은 미제 커피 깡통에 구슬을 모았는데, 이걸 누가 건
드렸다간 그 패악질을 아무도 감당 못
했다. 돈으로 사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
고 그저 동무들과 놀이를 해서 딴 구슬 만이 값어치가 있었다 .특히 아이노꾸라
고 하던 오색의 조금 큰 구슬이 있었는
데 아무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내가 보기에 머스매들의 구슬치기는 정
말 우습기 짝이 없는 놀이였는데, 남동 생을 비롯한 사내아이들은 맨 땅에서 기 를 쓰고 따먹기에 열중했다 .아이노꾸를 잃어버리고 온 날의 남동생의 통곡은 무엇으로도 달래지 못했다 .아버지가 큰 소리로 나무라면 울음을 꺽꺽 참다가, 결국 경기를 일으켜서 엄마의 속이 짓 물렀다.새 것을 여러 개 사서 주어도 소 용이 없었고 잃어버린 그것만이 제일이 었다.

나는 진심으로,그런 쓰잘데 없는  것에 열중하는 동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딱지였다. 이 딱지는
나와 부딪히는 일이 많아서 싸움이 잦았
다.  책이나 신문을 접어, 네모 반듯한
모양을 만들어서 서로 겨누는 건데 우리
세대의 남자들은 누구나 다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딱지치기도 요령과 힘이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딱지 자체가 힘이 있 어야,내리칠 때 상대방의 딱지를 뒤집어
이길 수가 있었다. 신문지로 접은 딱지 보다, 잡지나 화보 등으로 접은 딱지가 힘이 더 센 것은 당연했다. 남동생은 호시탐탐 내 책을 노렸고, 특히 미술 화 보집은 그 아이에겐 노다지였다. 그 당 시에 화보집은 많지도 않았고, 아버지는 나와 함께 미화당 백화점에 있었던 화구 상에 가서 한 권 씩 사주었다. 나는 화보 집의 그림들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림들을 보면서 알수없는 다른 세계를 상상했다. 그런 나의 귀한 책이 남동생 에겐 너무나 좋은 딱지의 재료였다.

멀쩡한 책이나 공책을 뜯어서 딱지를 만드는 것도 기함할 일이었는데,화보집 을 훔쳐가서 딱지를 만들어 버리는 것은 육탄전도 불사할 일이었다.
화보집들은 따로 큰 설합장에 넣어 자물
쇠까지 달아서 보관했는데, 남동생이 마
음먹으면 소용없었다. 딱지를 보관하는
사과상자에 딱지가 얼마 없으면 정말
조심해야할 때였는데, 뭘로 자물쇠를 열
고 화보집을 꺼내가는지 도무지 모를 일
이었다 .한 번은 너무 열 받은 나머지 남
동생의 딱지를 모두 물에 담가 버렸다.
놀다가 집에 들어온 남동생과 내가 부딪
혀 일으킨 소란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누부의 책
을 딱지로 만들면, 절대로 팽이를 안 만들어 주겠다는 협박으로 남동생의 항
복을 받아내었다.  구슬과 딱지보다, 남 동생이 더 아끼는 것이 아버지의 팽이였 다.팽이돌리기는 겨울에 많이 했지 싶은 데 남동생은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팽이 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았다.

아버지는 가게에 앉아서 팽이나 주사위 를 만들곤 했는데, 완성품이 너무 예뻐 서 탐내는 사람들이 많았다.시중의 기성 품과는 비교가 되지않게 잘 돌았고 시마 이를 하고 난 후, 가게 앞 빈터에서 아버 지와 아들이 팽이를 돌리기도 했다.
남동생은 으스대면서 아버지가 만든 팽 이를 동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으나,
보물상자 안엔 팽이가 그득했다. 아무리
망가져도 절대로 버리지 않고 모았는데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절이라 고 장난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칼
이며 총이라든지 인형도 있었고 자동차
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인형이나 다른
장난감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남동생도
그랬지 싶다. 왜냐하면 남동생이 원했으
면 엄마가 무엇이라도 다 사주었을 것이
다. 그 때 여자 아이들이 소꼽장을 많이
놀았는데 나는 사금파리 따위를 줏어다
가 노는 아이들 틈에 끼어본 적이 없다.
그 대신 종이 인형을 오려서 옷을 갈이
입히는 놀이는 혼자서 또는 둘이서 많이
했는데, 정교하게 만든 옷들을 오려서 입히는 것에 재미를 들렸었나 보았다.

밖에서 노는 놀이보다 집안에서 모여 앉
아 임금님놀이며 수수께끼놀이, 도둑잡
기 놀이,이름짓기놀이, 지도찾기놀이,
끝말이어가기놀이,신패때리기 라든지 그런 것들을 했었다.
명절 밤엔 귀신놀이, 숨바꼭질놀이가 아
이들에겐 오금저리게 재미진 놀이였다.
막다른 골목 끝엔 교실에서 쌔벼 온 분
필로 땅바닥에 천국과 지옥을 그려서 시
차기를 하고 어두워질 때 까지 놀았다.
온 동네 골목과 후미진 곳들이 전부 놀
이터였고 뒤엉켜 비명소리가 높아도 어
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으
례 그렇게 노는 것. 놀다가 코피가 터져
도, 상채기가 나도 그러려니 했었다.
이젠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비
명소리도 사라졌다. 사람들이 사라졌다.
박보장기를 두던 어른들도, 담벼락에 그
냥 기대고 서서 수다에 빠져서 웃던 아지매들도 다 사라졌다. 이제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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