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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2-01 15:21
ㆍIP: 58.xxx.42
떡방앗간이 있는 풍경
떡방앗간이 있는 풍경

           권영심 ( 2022 , 2 , 1 )

어렸을 때 가장 좋은 간식꺼리는 떡이었
지 싶다. 아버지는 떡을 정말 좋아해서
집에 떡이 없었던 때가 없었다. 나도 이십여년 전까지는 떡순이, 빵순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선물받는 떡을 한 두개 먹을 뿐, 사먹거나 해먹지는 않는다.
냉동실에서 묵히다가 버리는 경우도 있
어서 지금은 그저 나누어주는 것이 최선
이라고 본다 .그럴 때 마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대체 어릴
때 떡을 어디에 간수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신기하다. 그 더운 여름에도 떡을 먹었는데 벽장에서 꺼낸
마른 떡을 면포를 깔고 쪄서 먹었다.
장독에서도 떡을 꺼냈는데 마른 떡 표면
에 곰팡이가 있던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먹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솔로 떡 표면을 씻어서 두
터운 떡은 오래 오래 쪄서 먹었고, 얇은
떡은 기름에 튀겨 설탕을 뿌려 먹었다.
겨울에는 소쿠리에 떡을 쟁여 놓고 차거
워도 조금씩 떼어서 입 안에서 녹여 먹 었는데 그 감미가 참으로 달콤했었다.

오래된 떡에서 풍기는 냄새가 있었으나
그 당시는 그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
으니, 오늘날의 엄마들이 봤다면 기함하
고 넘어갔을 것이다. 시장 안엔 떡방앗 간이 여러 집이 있었고 방과 후 가게로 가는 길에 나를 부르는 일이 있었다.
- 마리야 떡 다 되싱께니 니 어매헌티 찾
아가라 하거라이 - 나는 네! 소리치며 가
게로 내달려서 떡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아버지나 엄마가 찾아 오는데
방금 만든 떡의 그 찰지고 달콤한 맛을 무엇에 비하랴?  아버지는 모두배기 떡을 가장 좋아해서 그 떡을 일 년에 여 러번 해먹었다. 모두배기 떡을 만들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 많아서 우리는 만들 기 전에 미리 알수 있었다. 호두, 건포도, 대추, 밤,각종 콩과 팥 등을 찹쌀과 함께 준비해서 방앗간에 갖다주면 우리는 오매불망 떡이 다 되기를 기다렸다. 떡을 찾아오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 는데 남동생이 특히 좋아해서 엄마는 평 소에도 여투어 두었다가 주곤 했다.

겨울엔 인절미와 가래떡을 많이 했는데
난로에 구워 먹는 맛이 각별했다. 그러 니 대목에 다른 음식은 나중에 마련하더 라도,떡은 반드시 제 때 준비해야 했다. 모두배기와  가래떡과 인절미, 세 가지 를 했는데 이게 또보통 일이 아니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릴 만큼 바쁜 대목 에, 많은 양의 떡을 할라치면 몇 번이고 방앗간을 들락거려야 했다. 그러나 예전 명절 대목의 떡방앗간은 말 그대로 문전 성시여서 쌀과 다른 곡식이 든 다라이를 든, 기나긴 행 렬의 줄서기였다. 떡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 하고 맡겨 놓아 야 했었는데,워낙 손님들이 많아서 코  앞에 갖다 놓고 뭐뭐 해 달라고, 마리야 네 것이라고,다짐을 받고 가야했다. 그것도 우리집이 평소에 떡을 많이 해먹 는 집이어서 가능했지,다른 사람들은 기 다렸다가 떡을 찾아가야 했다.
떡방앗간의 난장판을 대체 뭐라고 설명
해야 할까? 그런데도 니것, 내것 바뀌는
법 없이 각기 자기들 떡을 잘 찾아 갔다.
떡이 될 시간을 짐작해서 아버지나 엄마
가 찾으러 갔고, 방안에 떡다라이가 놓 일 때 마다 그렇게 마음이 그득했다.

지금은 전혀 먹지 않지만 금방 만들어온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는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엄마는 커다란 설탕 그릇을
내어놓고 가래떡에 가득 묻혀 식사를 대
신하곤 했다. 그 때에 온 손님들도 같이
먹곤 했는데 설탕을 이렇게나 많이 내놓
았다고 놀라던 목소리들이 선명하다.
설탕도 귀했던 시대였으니 지금 생각하
면 웬지 목이 메인다 . 설날 오후가 되면
가래떡은 썰기 좋을만큼 굳어서, 아버지
가 떡국떡을 썰었다. 닭고기나 쇠고기를
넣어 큰 솥에 가득 끓여, 우리도 먹고 밖
에 가져가서 먹기도 했었다. 나는 떡국
보다도 떡국떡을 난로에 구워 먹는 것이
훨씬 좋아서 많이 썰어 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다 .그때의 부엌칼은 지금과는 달리
크고 무거웠고 아버지는 절대 못 만지도
록 했기 때문이었다. 떡국떡을 얼개미에
얹어서 구워진 것을 하나씩 먹는 재미가
참 좋았다. 명절이 다 지나가도록 가장
오래 문을 닫는 집은 떡방앗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떡방앗간이 아니라
너무나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변한 떡집
에서 만들어지는 떡들은, 요사할 만큼
어여쁘고 앙증맞다. 떡 선물도 고급 케 이크 못지않고 한 달을 두어도 변하지도
상하지도 않으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굵고 실했던 가래떡과, 고소한
콩고물 냄새가 진동하던 인절미,  달큰
하고 감미롭던 팥고물떡과 쫀득한 모두
배기떡은 언제나 나를 미소짓게 한다.
명절이 되어도 떡 한 조각 입에 넣지않
고 보내면서 옛날의 떡방앗간 풍경이
수채화처럼 아련하다. 한 겨울인데도 런닝구만 입고 머리엔 수건을 동여 메고
소리치던 아저씨와 소란스럽게 웃고 떠
들던 아지메들은 다 어디 있을까?
시간의 야속함이여... 이런 추억이 남아
서 마음 한 구석 군불을 지핀 것 처럼
따뜻하다.설 명절의 시간도 바삐 흘러가
고 언젠가 모든 추억조차 사라지는 날들
이 올 것이다. 그 때가 되더라도 나는 기
억하고 또 기억하며 온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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