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2-01-30 14:54

ㆍIP: 223.xxx.217

아까징끼만 바르면

아까징끼만 바르면

권영심 (2022 , 1 , 30 )

요즘 아이들을 보면 가장 놀라운 것이
있는데, 한결같이 청결하고 말끔하다는
것이다. 흙장난을 하는 아이들도 없지만 아장거리며 걷는 아기부터 청소년들까 지, 마치 깍아놓은 밤톨처럼 그렇게 예 쁘고 깨끗해서 엄마들의 수고를 짐작하 게 한다. 내가 어릴 때 국민학교 입학식 때의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시퍼렁 콧물이다 코에 매달려 흐르는 콧물의 색깔을 표현하기에, 시퍼렁이란 단어 외에 없을 듯 하다. 교복 앞 가슴에 전부 손수건을 다는 것이 의무였는데, 나는 거부하고 달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 보다 머리 하나 만큼 큰 데다가, 나는 콧물을 흘리지 않았다. 위생검사가 자주 있을 만큼,그 당시 아이들의 보건위생은 불량하고 누추했다. 손톱 밑의 때는 보 통이었고 목이며 손등의 때와, 머리에 비듬과 머릿니가 가득한 아이들도 많았
다. 옷 소매는 콧물로 반질거렸고 무엇 보다 얼굴이며 몸에 종기같은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지금 티비에 나오 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몸에 그런 흔적들 을 많이 보는데, 짚어보면 불결한 환경 이 그만큼 일상적이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참 많이 다쳤다.
장난감이 거의 없이, 그저 몸으로 놀던 아이들은 개구질수록 다치고 부러지고
피 흘리면서 다녔는데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아이들이란 으례
그랬으니까.손가락 끝만 피가나도 119 를 부르는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이 그 때로 타임슬립해서 간다면, 어떤 공포 영화보다 더 큰 공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부러지면 유도관이나 접골원에 가서 뼈를 맞추었고 그것도 안 되는 아 이들은 각목 하나 대고 묶어 주면 그만 이었다.그래도 도시여서 상처에 된장을 바르는 집은 못 보았고 피가 많이 흐르 면 갑오징어 뼛가루를 뿌리면 되었다.
머리가 터져 피가 쿨럭쿨럭 나오는데도
뼛가루를 뿌리고 ,수건으로 감싸 묶어
놓으면 그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했고 약은 몇 가지로 한정지어졌 다. 머리가 많이 아프면 무조건 뇌신을 먹었고 노란 고름이 나오는 종기엔 이명 래고약이 최고였다. 길거리 약장수에게 서 산 호랑이기름, 뱀기름은 만병통치약 의 비상약으로 통했다. 배가 너무 아프 면 약국에선 노란 가루약을 주었는데 거의 대부분 나았다.

그런 약을 잘 만들어주는 약국일수록 명
의가 있는 약방으로 통했는데, 그 때의 약사는 의사나 마찬가지였다. 제약회사
에서 나오는 약보다 직접 만든 약들이
많은 약방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그 때 는 그것이 다 통했다 .또 하나의 만병통 치 약이 있었는데 아까징끼라고 불리우 는 빨간 약이었다. 지금도 판매가 되는 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가난한 집이어도 아까징끼 한 병은 감추어 놓았다. 온갖
상처에도 발랐지만, 심지어 아이가 배앓
이를 해도 아까징끼를 발라주는 부모가
있었다. 배를 내보이며 아까징끼를 발랐
다고 자랑하던 아이도 있었을 정도였다.
요즘 말로 플라시보 효과였을까?
아까징끼의 위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어른들이 뭔가를 해서 다쳤어도 아까징
끼 한 번 바르면 낫는다고 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가정 상비약을 많이 준비했었는데 거의 한의원에서 만들어
온 것들이었다 .배가 아프면 진뜩한 갈
색의 환을 아주 조금 떼어내서, 어른 수 저에 뜨거운 물로 녹여 먹게 했다.
배가 어떻게 아픈가를 먼저 문진을 했는
데 ,과식이거나 급체엔 검은 수수같은
작은 환들을 몇 개씩이나 먹이면 놀랍게
도 속이 시원해졌다.남동생은 설사도 잦
았지만 변비가 심해서 애를 먹였는데,
며칠 볼 일을 못 보면 피마자기름을 강제로 먹였다 .

아버지가 사지를 붙들고 입을 벌리게 해서 목구멍 깊숙이 기름을 흘려 넣으면 동생은 죽어라 소리쳤으나, 토하지는
않았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게
하는 피마자기름의 위력은 나도 경험한
적이 있다.또 용호동의 한센병환자 마을
에서 흘러 나온 연고도 귀중한 상비약이
었다. 아무리 고약을 붙여도 낫지 않는
종기는 여름에 심해져서 정말 흉칙한 모
습이 되기도 했는데, 그 때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아 왔다. 아버지는 국제시장
의 지인을 통해서 구할 수 있었고 남동 생이 부스럼과 종기가 기승할 때가 있어
반드시 필요했다 .미국약이라고 불렀던
그 약을 엄마가 얼마나 애중했는지 모른
다 .원기소는 오직 남동생만이 먹을 수 있었는데 그 약을 먹이기 위해 엄마의 애간장이 다 녹았다. 나는 그 냄새에 질색해서 병도 만지기 싫어했다. 나무로
된 커다란 상자에 여러가지 약들이 있었
는데 아까징끼와 과산화수소와 솜도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까징끼를 발라
줄 때 반드시 솜에 과산화수소를 묻혀
닦아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별나다고
했으나 그것이 옳은 치료법이었다.
아까징끼는 우리집에서도 참 유용했다.

아까징끼만큼 필요하고 잘 썼던 것은
바세린이었다. 한국 제품이 없었는지 아
버지는 겨울이 다가오면 도깨비 시장에
서 몇 개나 사왔고, 내게는 한 통을 따로
주었다. 세수하고 난 뒤 콩알만큼씩 떼 어내서 얼굴에 바르도록 했다 잠들기 전에 얼굴과 손에 꼭 바르도록 했는데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겨울에 손등이 튼 적이 없었다. 지금도 바세린이 나오 지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가게에 나가면 일구의 연탄 난로에 녹인 바세린을 로션 바르듯이 두 손으로 발라주면서 쓰다듬
던 아버지의 따뜻하고 두툼한 손의 느낌
은 너무나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처럼 약이 세분화되어 넘치는 시대
에 비교하면 그 때의 약은 약이 아니었
는지도 모른다. 아까징끼를 발라서 어찌
배앓이가 낫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은
말짱하게 나았고, 피 터지게 놀다가 다쳐도 아까징끼 한 번 바르면 낫던 그 때...그 때를 이렇게 그리워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나이든 탓이라고 말할까?그 어린 날의 아까징끼를 가슴 에 바르면 이 에이는 듯한 그리움이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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