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08-22 19:04

ㆍIP:

눈 오던 그 겨울의 추억
요즘은 불볕 더위에 열대야가 추가로 사람 잡는다.
이렇게 더울 때는 차가운 계곡물로 등목을 하고
시원한 캔 맥주를 숨도 안 쉬고 한숨에 들이키면
잠시라도 더위는 잊을 텐데.

형편상 그럴 수는 없고 차라리 지난 겨울 추억이나 회상하며
더위를 덜어 내야 하겠다.

내가 군 생활을 얼마 안 남겨 놓은 마지막 겨울에는
자주 시내의 영화관을 찾아서
그 시대의 인기 영화들을 관람했었다.
요즘은 외화 ‘트랜스포머’나
심형래 감독의 방화 ‘디 워’가 인기 영화이지만
그때는 성인 남자들이 베스트로 보는 서부영화 시대에서
성룡과 이소룡의 쿵푸 영화가
이 나라 대중의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때였다.
한번 영화를 관람하고 숨 막히는 예고편을 보면
다음 영화가 몹시도 기다려 졌다가 상영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영화를 보러 가곤 하였었다.
‘Coming Soon!’
참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 문구인데
그때는 그저 ‘개봉박두’라는 표현으로 관객을 유혹했었다.
그때 봤던 성룡의 ‘사형 도수’, ‘취권’ 등이 기억에 남는데
방화로는 안성기 주연의 ‘깊고 푸른 밤’ 이 떠 오른다.
이미 30년 가까이 된 추억인데
그 시절 주연이었던 홍콩의 성룡이나 한국의 안성기는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두 사람 모두 대단한 배우들이다.

관람은 주로 주말 외출 외박 시간과 업무(그때는 내무반장 시절)로
외출 해서 시간을 쪼개어 영화관을 찾기도 했는데
여의치 않을 때는 가끔 업무시간 후의 지휘관인
당직 사관의 허락을 득해서
저녁에 비 공식 외출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다.
당시야 전역도 몇 개월 안 남고
성실한 본부중대 내무반장이었으니
당직 하사관(독립 대대라서 일직 사관은 부 사관들이 했었다.)이
내가 영화관을 갔다 온다고 하면 별로 반대를 안하고
잘 갔다 오라고 허락을 해 줬었다.

그때가 아마도 1월 달의 어느 토요일 인 것 같다.
그날은 당직 사관이 내가 근무하는 통신 정비실 정비 관 이었는데
통신학교에서부터 동기인 조병장과 같이 영화를 보고 오겠다고 하니
허락을 하면서 통신 정비실 서무병인 후배 심상병과 같이
나갔다 오라는 것이었다.
어는 부대, 어느 부서나 서무병은
그 장의 당번 병 노릇도 같이 하는 자식과 같은 존재 인데
정비 관은 모든 잡일을 서무병에게 시키고
때론 휴일 날 낚시를 가면 서무병인 심상병을 데리고 가서
식사나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였으니 아끼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끼워서 외출을 내보내는 것이었다.

나야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쾌히 심상병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외출은 비공식이라
중대의 담당 초소의 담을 넘어서 몰래 나갔다가
들어 올 때도 그 담을 넘어서 몰래 들어와야만 했다.
또한 귀대 시간은 밤 열 시 취침시간이며 꼭 지켜야 하는데
한번 안 지키면 밤새 기합은 물론이고
그 후로는 그런 비공식 외출이 허락되지 않는다.
비공식으로 사병을 내 보냈으니 약속 시간에 안 들어 오면
기다리는 당직사관도 크게 걱정이 되니 그건 불문율이었다.
우리 셋은 그날 행정과 서무병에게 부탁해
비공식 외출증을 발급 받아 어두운 겨울 밤에
담을 넘어서 버스를 타고 의정부 시내로 갔다.

그런데 저녁부터 꾸물거리던 하늘이
기어이 함박눈을 펑펑 뿌려댄다.
버스에서 내려 영화관으로 가는데 하얗게 내리는 눈발 사이로
누가 ‘최병장’을 부르는 소리가 난다.
네온사인을 먹어 치우듯 내리는 눈발 속에
‘누가 나를 부르지?’ 하고 뒤를 돌아다 보는 시야 속으로
뽀드득 거리는 군화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사람은
통신정비실 선임 하사인 윤중사였다.
그는 나와는 나이가 비슷하지만 국비로 공고를 졸업하고
의무로 5년을 복무하는 선임하사로
영외 거주(부대 밖에 방을 얻어 살며 출퇴근)하는 총각이었다.

“단결!”
“어쩐 일이세요? 선임 하사님?” 하니
“너희들은 이 시간에 시내에 어쩐 일이냐?” 하고 되 묻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윤중사는 껄껄 웃으며
“야! 영화는 무슨 영화냐?”
“영화는 다음에 보고 술이나 한잔 하자!” 한다.
마침 날씨도 그렇고 해서
혼자서 술 한잔 하러 가는 길인데 잘 됐다고 한다.
우리도 눈이 누에고치같이 실하게 펑펑 내리는 밤에
컴컴한 영화관에 쭈그리고 앉았다 오는 것 보다
그게 더 좋을 것 같아 웃으며 윤중사의 뒤를 따라갔다.
그 시절 의정부는 부대 찌게도 유명했지만
맛깔스런 빈대떡이 유명한 집도 있었는데
우리는 눈이 내리는 길가에 위치한 그 빈대떡집에서
호호 불어가며 빈대떡과 막걸리를 마셔댔다.
술값이야 어차피 선임 하사가 내는 것 인지라
맘껏 퍼 마시며 군 생활의 하루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려서인지 막걸리도 잘 들어 가고
녹두 빈대떡은 왜 그리도 맛이 있던지.
거리가 모두 한 폭의 겨울 풍경화로 다가와
우리는 괜히 기분이 한껏 들떴었다.

최대한의 시간을 보내고
선임하사와 작별해서 부대로 귀환 하는데
아차!
생각지 못한 복병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부대로 들어가는 시내 버스가 폭설에 지체 되어 영 안 오는 거였다.
약속한 10시는 다가 오는데 이거 참 큰일났다.
분명 귀대가 단 일분이라도 늦으면 밤새 기합은 물론이고
정비 관은 다시는 비공식 외출을 허락하지 않을 텐데.
발을 동동 구르다 늦게 사 오는 버스를 타고
뛰다시피 부대로 돌아 왔다.

그런데 나올 때 넘어온 초소의 담이 문제가 되었다.
부대 안에서 넘어 올 때야 경계를 위해 쌓아 놓은 흙 담이 있어
수월하게 넘어 왔는데 들어 갈 때는 할 수 없이
부대 옆의 나무를 타고 높은 담을 넘어 부대 안으로 들어 가야했다.
같이 있던 동기인 조병장도 잘 넘어 갔고
물론 심상병도 어렵지 않게 잘 넘어 갔는데
그날은 내가 문제였다.
평소에도 나무를 타는 일은 잼 병인 내가 막걸리에 취해서
담을 넘으려니 도무지 나무에 오르질 못하겠다.
셋이 다같이 들어 가야 하는데 시간은 자꾸 다가오고 참으로 큰일났다.
이리 해도 미 끌어 지고 저리 해도 미 끌어 지고
도무지 나무를 오를 수가 없었다.
기분을 들뜨게 했던 함박눈은
더 이상 무드 있는 눈이 아니고 염병할 눈발이 된지 오래였다.
먼저 날 다람쥐 같이 올라간 심상병이
초소에서 내려다 보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아이구! 최병장님! 빨리 들어 가야 하는데!”
“뭐 해요? 이 손 잡고 올라 오세요!”
그러나 내 몸무게가 만만치 않고 술까지 취해서 영 잘 안 된다.
술김에 나는 실실 웃으며 왜 그리 힘드냐고 푸념이나 해 대고.
보다 못한 심상병은 답답한지 두 손을 내 밀며
“최병장님! 안되겠어요! 두 손 다 잡고 올라 오세요!”
하면서 두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오우~케이! 앗싸!” 하고
심병장의 두 손을 잡고 힘껏 힘을 썼다.
그런데 우리 바램과는 달리 내 몸무게와 힘에 의해
‘슈~욱! 쿵!’하는 소리와 함께 담 위에 있던 심상병이
내 등 뒤로 날아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퍼뜩 술이 깨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니
심상병은 얼굴을 쳐 박고 그대로 미동도 않고 있는 것이었다.
다리는 하늘을 향한 채 나무 등거리에 기대서……
얼른 가서 흔들며
“심상병! 괜찮아?” 하니
“우~웅……! 최병장님 여기가 어디에요? 나 살았어요?”
하는 것이다.
“야! 야! 야! 심상병 얼른 일어나! 늦겠다! 빨리 들어 가자!”
하니
심상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후다닥 일어나
쪼르르 나무를 타고 다시 담을 넘는 것이었다.
심상병은 참 나무를 잘 탄다.
그는 입대 전에 ‘한전’에 근무하며 전봇대 타는 업무를 하다 왔으니
그깟 나무 타는 일은 만취 상태에서도 식은죽 먹기였었다.
그 사이 나도 술이 좀 깬 상태라
어찌하여 담을 넘고 다행히 시간 안에 내무반에 들어가
당직사관에게 귀대 보고를 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기상을 하고 아침 점호를 하는데
전날 거꾸로 떨어졌어도 상처 하나 없던 심상병이
밤새 얼굴이 퉁퉁 붓고 일어 나지를 못했다.
일조 점호야 내무반장인 내가 주도를 하니
심상병이 빠져도 상관없는데 점호가 끝나고
부대의 구석구석 내린 눈을 치우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심상병을 일어나지를 못하고
내무반에서 모포를 뒤집어 쓰고 누워있었다.
걱정스럽게 조병장과 내가 지켜 보는데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지난밤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부대에 피해가 없는지 궁금한 인사계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여 부대를 돌아 보다
내무반에 들리니 심병장이 얼굴이 퉁퉁 부어 끙끙대며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꼴을 보고 한마디 한다.
“내무반장! 심상병 얘가 왜 이렇게 됐나?”
“예! 인사계님!”
“아침에 연병장 눈 치우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그래요.”
하고 대답하니
“이~런! 못나고 칠칠 맞은 놈! 끌끌끌”
하고 못 마땅한 표정으로 나가신다.

그렇게 그 해 겨울의 의정부는 춥기도 하고 함박눈도 자주 왔었다.
이 더운 열대야에 그때의 함박눈을
조금이라도 갖다 뿌려 주었으면 이 밤 시원히 잠들 텐데…….
할 수 없이 이 밤도 열대야에 시달리며 잠을 청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절 그때의 전우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모두들 두루두루 잘 살고 있지요?”
특히
“심상병~~ 그때는 정말 미안 했었어~~”

2007년 8월 22일 열대야가 극성을 부리던 여름 밤에

임정수: 지금은 술을 끊었지만.....
현역 때 퇴근하여 시내에서 부대원을 만나면 언제나 나이트로 데리고 가서
맘껏 사주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는 술을 좋아하던 때라
맥주와 소주를 테이블 옆에다 박스째 쌓아놓고 마시질 않으면
소화가 안될 정도였었거든요.
ㅎㅎㅎㅎㅎ

잘 지내시는지요?
자주 안부 여쭙질 못해 죄송합니다.

매번 접속하여 댓글을 올릴 때마다 다운이 되고
튕겨져 나가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드리질 못했습니다.

열대야가 심한 밤입니다.
몸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또 다운이 될까봐 이쯤으로 줄이고
댓글이 제대로 올려지는지 확인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 -[08/25-23:28]-

주 환: 최평균 작가님, 군 시절이 물씬 풍겨오네요! 인사계라 하면 똥싸게라는 군대에서 쉽게 부르던....., 서정의 글 한편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이제 처서도 지났으니 곧 긴소매가 등장하겠지요! 조금만 견디자고요!ㅎㅎㅎ -[08/26-18:09]-

김영진: ㅎㅎㅎ 그 등치에 나무를 기다니 알만하네.......... -[09/03-11:24]-

김영진: 오랬만에 왔더니 제 멋 대로.....잘 지내시는가? -[09/03-11:26]-

임정수: 이젠 추석 명절을 지내기 위해 떠나는 귀성길 차량들로
바쁘고 힘든 여정을 맞이하는 일만 남았겠군요.

저는 어딜 다니러 가질 않고 저희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답니다.
ㅎㅎㅎㅎㅎ

아무쪼록 즐거운 귀성길 되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추석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서 뵈올 수 있겠군요.
편안한 밤 되시고요...
귀성길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 -[09/21-20:39]-

북성 포구

날아서 내게 온 세 개의 술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