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07-04 23:12

ㆍIP:

내 꽃밭들(작은 꽃밭)

내가 어려서 살던 영등포의 신풍동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삽 십 몇 년 전에도
골목 골목을 시멘트 포장을 하여 흙을 밟지 못 했었다.
집안의 마당도 아버지가 시멘트로 땅의 호흡기를 꼭꼭 틀어 막아 버렸고,
그건 아마도 청소하기 용이 해서 그 당시 집집마다 그렇게 했으며,
그런 집안 구조상 나만의 꽃밭을 갖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절 나는 여드름투성이 고등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꽃을 심고 키우는 게 무척이나 좋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커다란 키에 어찌 계집애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기억이 어려운
그 해 3월인가?
나는 나무로 짠 사과 궤짝(그 시절 과일 박스는
무슨 과일을 담던 무조건 사과 궤짝이라고 불렀었음.)을
3개 구해 인근 밭에서 흙을 가득 퍼다 담았다.
그렇게 사과 궤짝 3개는 초라하지만
소중한 나의 작은 꽃밭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지금은 흔한 해산물을 포장 운반하는
가볍고 편리 한 스치로폼 박스나 프라스틱 박스가 없던 시대였었다.

사과 궤짝 꽃밭은,
그 시절 서울의 가난한 대부분의 가옥 구조상
대문에 연결하여 화장실과 창고를 짓고,
그 지붕을 역시 시멘트로 슬라브를 쳐 논 옥상을
장독대로 활용하던 곳, 빨래 줄이 TV안테나와 함께 있던
그곳에 올려 놓고 입주할 꽃 식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꽃밭은 마련 되었으니 꽃을 구해다 심어야 했다.
그 시절 아랫동네엔 얼마 전까지 논과 밭이 있었으며
그곳에 벽돌공장(적 벽돌)이 마치 걸리버가 소인국에 서 있는 듯이
우뚝하니 선 커다란 굴뚝을 거느리고 있었고,
곁에는 인공적으로 파 놓은 원투장이라고 부르던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를 파낸 흙으로 벽돌을 만들고 빗물로 담수 된 물을 활용하는
그런 인공 호수인 것인데,
매년 여름이면 개구쟁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더러는 한해 몇 명씩 익사 사고가 나곤 하였다.

몇 년 전쯤 호수가 메워지고 굴뚝이 무너진 채,
벽돌공장이 퇴각한 곳에 인근 사람들이
너도 나도 밭을 만들어서 해 마다 농사를 짓고 있었다.

꽃밭을 마련한 다음날,
나는 졸리 운 눈을 비벼서 토끼 눈같이 충혈된 채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새벽 길을 나섰다.
그날따라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어디 가냐고 물으셨으나
나는 대답도 안하고 어스름 새벽이 일어나는 동내를 돌아서
그 벽돌 공장이 있던 밭으로 나갔다.
어머니가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나던 내가
그날은 스스로 일어나서 새벽 길을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이슬비를 맞으며 그 밭을 몇 시간 헤 메이며 작은 꽃을 찾아서
준비해간 작은 바카스(동화 약품 제조 드링크제) 종이박스에 고이 담았다.
그때는 아직 농사를 시작하기 전의 계절인데
미리 나온 참비름이나 흔한 쇠비름 나물들과 잡초 사이로
채송화와 계관화라는 맨드라미가 솔 찬이 있었는데,
나는 더틴 곳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꽃들을 찾아서 담았고,
어찌 찾다 보니 운 좋게 봉선화와 분꽃도 두어 포기씩 얻었었다.
그 때는 정말 나라 경제가 어려워서 꽃집이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어려서 꽃씨를 살 용돈도 없어서
꽃집을 찾아 꽃씨를 살 엄두를 못 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남의 밭이나 들에서 꽃을 채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 꽃밭식구의 전부였다.

어렵게 채집된 꽃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 오는데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고,
한참 식욕이 왕성할 나이임에도 배 고픔도 잊은 채
어린 꽃들을 찾아 안고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비록 사과궤짝인 가난한 꽃밭이지만
나의 작은 꽃 밭에 정성 들여 채송화, 맨드라미 등을 심고
그득그득 물을 뿌려 주었다.
그들은 내가 주는 물을 온몸으로 받으며
잡초 속에서 벗어나 내 가난한 꽃밭으로 이주한 고마움을
반지르르 윤기 나는 연두 빛으로 나에게 말해 주는듯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등교를 하기 전에 나는
내 꽃밭 식구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그 후부터 아침에 일어나기를 게을리 하던 나는
엄마가 깨우기도 전에 스스로 일어나
빨간 프라스틱 바가지가 넘치도록 물을 담아서
내 꽃밭에 하나님의 은총인양 뿌려 주었다.
그러면 키 작은 내 꽃밭 식구들은 고개를 털며
장난기 어린 잎을 흔들어 기뻐해 주는 것 같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내 꽃밭의 흙들이 엉성한 궤짝 사이로 흘러내려
꽃들이 다리를 들어낼까 봐 우산을 들고 장독대에 올라서
근심 어린 눈으로 비닐을 덮어 주기도 했었다.

나는 아침이 항상 기다려 지고 참 행복했었다.
꿈에는 내 작은 꽃들이 모두 일어나 예쁜 꽃잎으로 깔깔대고 웃기도 했다.
내 가난한 꽃밭에서 나의 사랑을 먹고 꽃들은 잘도 커서
채송화는 이미 작은 키에서 예쁜 꽃을 피워내고 있었고,
맨드라미도 얼마 안 가서 닭 벼슬 같은 빨간 꽃으로 나를 맞으리라.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한달 인가를 지나서
나는 학교의 일박 행사로 꽃밭과 하루 밤을 헤어져야만 했었다.
나는 내 꽃밭이 너무도 불안해
동생들에게 아침에 물을 듬뿍 줄 것을 당부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그 행사 기간 내내 마음이 불안하고
채송화, 맨드라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 와서 가방을 든 채로
서둘러 나의 꽃밭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아!
이게 왠 일인가?
나는 옥상에 올라서 내 꽃밭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작은 꽃밭에 낮 설은 침입자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게 뭐야?’
‘그래 이건 호박이구나?’
나는 어이도 없고 화가 잔뜩 나서 동생들에게 소리쳤다.
“누가 내 꽃밭에 저런 불한당을 심었어!” 라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니
옆 방에서 나오신 아버지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내가 심었다!”
“거기에 뭐 하려고 꽃을 심냐? 쓸데없이”
나는 목청을 높여
“꽃이 얼마나 예쁘고 좋은데 그래요?”
하고 볼멘 소리로 항거하니
아버지는
“꽃이 밥 먹여 주냐?”
“호박을 심으면 여름에 호박을 따서 반찬이라도 해 먹지!”
“쓸데없이 그딴 걸 왜 심냐? 귀찮게 …”

나는 이 절대 권력자 아버지께 더 이상 항거를 할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배고픔에서 다 벗어나지를 않았을 때이니
아버지 마음을 지금은 이해를 하지만,
그때는 철없는 나이에 내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고 한없이 섭섭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서운한 감정을 추스르고 그 불한당들이 들어선 내 작은 꽃밭에
물 주는 일을 계속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내 사랑을 꽃들이 받아 먹어야 하는데
그 불한당들은 커다란 입으로 수분과 양분을 꿀꺽꿀꺽 마셔서
가엾은 내 꽃들은 계속 굶어야만 했고,
날이 갈수록 호박은 줄기와 잎을 거칠게 내미는데
내 가엾은 꽃들은 피들 피들 마르다 결국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꽃들은 어린 꽃잎을 피워 보지도 못 한 채 ….

꽃들의 시체를 거두는 날,
더욱 아버지의 횡포가 미웠고 가엾은 내 꽃들의 죽음으로
이불을 쓰고 누워서 눈물을 찔끔거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는 잘 자라고 있는 꽃들을 거두어
나만의 작은 꽃밭에 옮기기를 포기했다.
그나마 들에서 잘 살고 있던 가여운 생명을
내 욕심으로 거두어 생을 단축 시키는 과오를
또다시 범하지 않으려고 결심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내 작은 꽃밭 추억이었는데,
그 후 십 여 년 만에 나는 정말로 커다란 꽃밭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
작은 꽃밭에 그 불한당인 호박은 심지 마세요.
그 놈 욕심이 많아 혼자서 수분과 양분을 다 퍼 마십니다.

2007년 7월 4일 저녁에

평창 동계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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