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08-18 14:22

ㆍIP:

날아서 내게 온 세 개의 술잔

요즈음은 글을 쓰기가 무척 주저된다.
쓸까 말까 마음속에서 갈등을 하다가 말기를 자주한다.

나는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한다.
따라서 타이핑도 그저 독수리 타법으로 긴 문장을 완성 하려니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다 쓰고 나면 읽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고
읽기 좋게 글을 적당히 토막 내어주고, 맞춤법을 살피고,
글의 문맥을 점검해서 수정을 하고 나면
반나절은 족히 소비가 되기 때문에
어떨 땐 엄두를 일부러 꺾어 버리곤 한다.

내가 군을 전역하고 입사한 회사의 우리 부서에는 과장 밑에
10여명의 직원들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 시절(80년대 초반) 우리들은 파견근무가 많아
전 부서원이 같이 얼굴을 보려면 회의 소집이 있거나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같이 만나게 되면 회식이 있었고,
회식자리에서 술이 한 순배쯤 돌고 나면
한 사람의 진행으로 돌아가며 노래를 불러 흥을 돋웠었는데
주로 내가 그 리더인 사회를 맡았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라 2차로 갈 곳도 별로 없었으니…..
그렇게 지내기를 한 2여 년쯤 되었던 어느 날.

직원들 중에도 친한 내 또래의 친구 같은 사원들과 술을 한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한 친구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용기가 없어 도무지 말을 걸기가 힘들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에 그 친구에게 거침없이 이야기 했다.
“병신 지랄하네! 그게 뭐 그리 힘드냐? 무조건 대시(DASH) 해!”
그런데 갑자기 내 앞으로 뭐가 날아와서 떨어지는 거였다.
그래서 보니 소주잔이었는데 내 옷까지 소주에 젖고 말았다.
화가 난 나는 소리를 높여 술잔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뭐야! 누구야!”

“아차!”
그리고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몇 자리 건너서 나를 차갑게 쏘아 보는 눈길……
그건 나하고 친한 친구인 L대리이었는데,
그는 나에게 차갑고 느리고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을 했다.
“그래 이 자식아! 나 병신인데 지랄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쳐서 수술을 했지만
완전 회복은 안 돼서 한쪽 다리가 불편한 후천적 장애자이었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일정 비율의 장애자를 고용하여야 했기에
우리 회사에 입사를 할 수 있었지만 통신 전공에 실력도 있었고
성격도 쾌활한 친구였는데 무심히 내가 말한 병신 소리에
마음이 무척 상했나 보다.
참 잘못했다.
내가 말한 건 이게 아닌데……
물론 곧바로 나는 그에게 사과를 했고
그 친구도 괜히 자격지심에 화를 냈다고 웃으며 악수를 하고
없던 일로 하였지만 사실 그 후로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 해 추석을 지나서
년 말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한 인력 관리 등에 대하여 회의를 하고
우리는 근처 단골식당으로 옮겨 회식을 하였다.
그날도 예외 없이 동료들 하고 환담을 하며
부족한 인력 가지고 어떻게 매출 목표를 달성 하는가에 대하여
토론을 하다가 한 친구가 어거지 아부 성 주장을 하는 바람에
나는 큰소리로 그 친구에게 반론을 했다.
“야! 박대리 그게 말이 되냐?”
“야!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주잔이 날라와서
내 앞에서 털썩 깨지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날라온 쪽을 가늠하고 소리쳤다.
“누구야? 누가 술잔을……”
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어깨를 움 추렸다.
그쪽에는 나보다 십 몇 년이 선배인 K 소장님이
날카로운 눈길로 씩씩대며 잡아 먹을 듯이 노려 보고 있는 것이었다.
입이 삐뚤어진 얼굴로……

“아차!”
그 선배는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통신의 전문 기술자이지만
어려서부터 입이 삐뚤어진 불운을 간직하고 사는 선배였다.
에구! 참 잘못했다.
내가 그런 마음을 의도한 게 아닌데……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술을 한잔 따라드리고
겨우 분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여흥 시간은 취소 되었다.

년 말이 다가와 송년회 회식 소집이 있어 본사에 모인 우리는
잠깐의 여담 후에 미리 예약된 식당으로 갔다.
한 해를 마감하는 자리 인지라 건배 선창에 따라 술이 몇 순배 돌고
부서의 막내 신입 사원의 소감에 이어 과, 부장님의 송년사(?)를 끝낸 후
과장님은 전과 같이 내게 명령을 한다.
“최대리! 음주 가무는 떨어질 수 없는 부부 같은 것이니 흥을 돋워야지?”
“흥겹게 음주 가무를 이끌어 나가봐! 하하하”
하시며 나보고 사회를 보라고 하는데
나야 뭐 의례히 하던 일이니 흥겹게 술 자리를 리드해 나갔다.
직원들에게 차례를 미리 귓속말로 예고를 해 주며
쳐지지 않고 흥겨운 곡을 선곡해 달라는 부탁도 빼 먹지 않고,
중간에 노래가 끊기는 일 없이 원활한 진행에 즐거운 자리를.
그러다 노래 순서가 R소장 차례가 되었다.
나는 신이 나서 커다란 소리로 맨트를 날렸다.
“다음은 이 시대의 한량이고 멋쟁이 R소장님 노래 하십니다.”
“노래 시~작! 하나, 둘, 셋, 넷!”
손뼉 박자에 맞추어 노래 시작을 종용 했는데,
어라?
R소장님은 웬일인지 평소와 다르게
술만 자꾸 들이킬 뿐 노래를 안 하시네?
“다시 한번 노래 시작! 하나, 둘, 셋, 넷!’
그래도 노래를 안 하시네?
그렇다면,
모든 직원들의 손뼉과 합창을 유도 하며
“병신 같은 게~ 노래도 못하고♬ 바보 같은 게~ 노래도 못해요♫”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짜작 꿍짝 ♫♬”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 정도면 노래가 나올 법도 한데,
사람 좋기로 소문난 R소장은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하더니
갑자기 마시던 소주잔을 내게 훽~ 던지며 일갈하는 것이다.
“그래 이 자식아 나는 바보고 병신이라 노래도 못한다!”

에구머니!
이게 웬 날벼락이람?
슬그머니 좌중을 둘러 보니
모두들 조금 전 입가에 머물던 웃음기는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눈만 술상으로 깔고 조용한 것이다.
술이 싹 깨는듯해서 과장님과 부장님을 건네다 보니
역시 두 분도 말없이 술잔만 들었다 놨다 하신다.
별수 없이 내 자리에 주저 않아 술만 거푸 마시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R선배에게 뭘 잘못했지?
특히 R소장에게 항거하지 못함은 그는 내 고등학교 직계 10년 선배이며
학창시절 육상과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모교에 몇 개의 트로피도 안겨준 나를 정말 아껴 주시던 선배였으니……
직원들 모두 아무 말없이 각자 술만 마시다 송년 회식을 끝냈다.
구두를 찾아 신고 밖으로 나오니
과장님이 기다리다 슬며시 내게 다가와 말하신다.
“최대리 미안해! R소장 올해 호봉 감봉이야.”
“예~에?”
아이구 어쩐지 ……
그러면 과장님은 내게 미리 귀띔을 해 주셨어야지.

우리 회사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렇지만 직위나 직급 승진도 있지만
일년에 두 호봉 올라가는 기준에서 3호봉 올라가는 호봉 승진과
1호봉밖에 안 올라가는 호봉 감봉제도가 있었는데,
부서의 구성원 20%는 승진을 하지만
반대로 10%는 감봉 시켜야만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래야 열심히 업무에 열성을 다한다는 취지로 만든 것인데
통상 승진은 축하 해 줄만한 것이나
감봉은 반대로 누구 한 사람 꼬집어 주기 어렵고
오해의 소지도 많아 심사 숙고하고 새해가 오기 전에
그러니까 감봉 통지를 받기 전에 부서장이 대상자를 특별 면담하여
위로 해주고 타당성을 이해 시키지만 감봉 당한 직원은
창피 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의기 소침해 지고
부서장은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공개하지 않고
‘쉬쉬’ 넘어가는 게 관례였는데, 그 해 대상이 R선배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눈치 없이 흥도 안 나는 선배에게 바보, 병신이라 했으니
나라도 술잔을 집어 던졌으리라.
정말 잘못했다.
하지만 분위기 파악이 안돼 그랬을 뿐 일부러 그리 한 건 아닌데……

다음날 출근한 나에게 R선배는 조용히 내게 다가와
커피 한잔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최대리 어제는 정말 미안했다.”
“내가 못나서 후배에게 도움도 못 주고 되려 가슴 아프게 했구나.”
“아니에요. 선배님. 제가 선배님이었어도 그렇게 화를 냈을 거예요.”
“선배님의 마음도 못 읽고 선배님 프라이버시 다치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리.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 것이니
어제 일은 깨끗이 잊고 우리 잘해보자.”
“녜! 선배님.”

그렇게 그 일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후부터 누가 나에게 명령이나 부탁을 해도
부서의 회식자리 진행을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2년여를 전담하던 우리 부서 사회(MC)를 그만둔 것이다.

얼마 전에 MBC방송의 저녁 뉴스 시간에 방송사고가 났었다.
그 프로의 앵커인 엄기영 아나운서가 자기 맨트를 끝내고
카메라가 미처 리포터에게 돌아 가기 전에
웬일인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장면이
전국 시청자에게 나가버린 것이다.
한참 자국민의 탈레반 억류 인질 문제로
전국이 안타까워하는 시기에 그 침통한 뉴스 중의 행동이라
시청자들의 비난이 엄청 쏟아졌다.
국민들은 슬퍼하는데 뭐가 그리 우습느냐는 것이다.
특히 그는 MBC 임원실 특임 이사이고, 간판 아나운서이며,
2007년도 서울대 언론인 대상을 받기도 한
반듯한 방송인이었기에 비난의 강도는 더 거세졌다.
그 뉴스 시간에 엄기영 앵커는 곧바로 사과 방송을 하였지만
네티즌들의 비난을 당분간 피하긴 어려웠었다.

엄기영 아나운서도 사람이니까 웃지 못할 일이 없다.
하지만 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생을 달리한 고인의 영정을 보며
슬퍼하는 유족들 앞에서 박장대소를 한 꼴이 되어 버렸다.

내게 날라온 세 개의 술잔이나 아나운서의 웃음이
시기가 안 좋았기에 질타를 받고 오해를 하였던 것이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종종 자기 의사와 다른 이해로
주위의 오해를 사는 일들이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입을 봉하고 살아야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아나운서나 나나 따지고 보면 그건 단지 실수 일 뿐이다.
의도적으로 남을 해 할 목적이 아니고 잠깐의 과실일 뿐이다.
엄기영 아나운서도 곧바로 사과를 하고 본업을 계속 해야지
그 하나의 실수로 뉴스 진행을 그만둘 필요는 없다.
나도 내가 잘못한 건 당당히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하던 일을 계속 해야지 위축되어서 입을 닫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지 또다시 그런 과오가 없도록 살피고 또 살펴서
신중히 말을 하여야 될 것이다.
때로는 살아 가는데 있어서 조금의 과오가 있어야
그것을 거울삼아 교정을 하고 반듯하게 살아 갈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끝 맺으며,
이미 R소장은 10여 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지만
가슴 아파했던 세분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드립니다.
또한 그 외의 적절치 못한 시기에 본의 아니게 말을 함부로 해서
마음 상하신 나를 아는 모든 이 들에게 이해를 바라며,
의도되지 않은 경솔한 나의 한마디 때문에 마음 다치신 분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이 글 내용도 포함)

2007년 8월 무더운 어느 날

........................................................................................
■ 주 환: 최평균 작가님 건승하시지요? 염치 없게도 이제야 흔적이랍시고 남기고 있습니다, 흐름이 고전수필의 분위기의 다소 해학적인 면이 돋보이는 수필 한편 흥미롭게 잘 감상하였습니다! 하고, (나 병신인데 지랄하고 있다)라는 표현에 한참이나 배꼽을 잡습니다!ㅎㅎㅎ 하고, 고인 앞에서도 용서를 비는 그 순박한 아름다움이 빛납니다! 옛고서에 보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고인이 된 이후에도 다시 한번 벌하는 것을 부관참시한다고 하는데, 작가님의 고인 앞에 용서는 무엇이라 명명함이 좋을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정말 아름다운 고해성사가 아니겠는가 생각하면서 작가님의 한 단면적 인간미를 엿보았음입니다! 늘 건안건필하시길 기원드리면서....., (matrix8255@hanmail.net) -[08/18-18:04]-
........................................................................................
■ 최 선경: 웃음이 나면서도 웃을수만은 없는 것은 상대가 상처를 받은일이니... 뭐 그러나 상처를 받은 사람도 의도하지 않은 것만은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요. 기실 어떤일이든 동기가 중요한 것이니 작가님의 좋은 분위기를 위한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었겠지요. 좌중을 좋은 분위기로 이끌기위한 방책중에 벌어진 일이니까요. 생각할 수있게 하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08/19-10:18]-

눈 오던 그 겨울의 추억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