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08-05 23:24

ㆍIP:

취미
몇 일전 휴가 여행길,

오랜만에 찾은 처가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저물어 가는 하루 해를 쓸쓸히 배웅하는 화단을 바라봤다.
시골 아버지와 엄마
(나는 친 부모를 서울 아버지, 엄마로 부르고
아내의 부모를 시골 아버지, 엄마라고 부른다.) 와
같이 한 반주와 장시간 운전의 피로로
반쯤 감겨지는 눈꺼풀을 다독이며 바라본 화단에는
내가 처음 이 집에 장가 올 때인 25년 전 보다는
너무도 헐렁하게 화초들이 들어 앉아 있어 쓸쓸하고,
손길이 뜸한 구석에 감나무만이 자식들의 부양을 덜어내 듯
열매를 수시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늙고 쓸쓸한 화단이
자식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 백발만 뒤집어 쓴 채
빈 집을 지키는 시골 아버지, 어머니 같아 서글퍼진다.

세상은 과학의 발달과 인간 삶의 질에 따라
취미의 범위와 종류가 많이 넓어지고 많아졌다.
첨단의 컴퓨터를 매체로 하는 게임이나 각종 카페 활동들.
각종 예술 활동과 건강의 증진을 겸하는 각종 스포츠.
이것들을 보며 손에 땀을 쥐는 관전 취미 활동 등.
골방에 모여 앉아 머리를 쥐어짜고 애를 쓰는
바둑과 장기, 또는 각종 화투와 카드놀이들.
태고 적 인간이 살기 위해 하던 먹이 활동을
취미로 승화하여 즐기는 사냥, 등산, 낚시 등.
그리고 영농도 이제는 취미가 된지 오래다.

영국의 경제학자이고
미래학 박사인 토인비(Arnold .J. Toynbee)박사는
미래에는 낚시터, 산들이나 운동장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에 뒤 덮여
발길 디딜 곳조차도 없을 테니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취미는 앉을 수 있는 자리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종교 활동’ 이라고 주장하다 1983년에 생을 마감 했으니
종교도 역시 하나의 취미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싶다.

작금 세상이 소란스럽고
하루하루 연명하느라 고된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스트레스를 떨쳐 버리고 그 나마 즐거운 삶을 위하여
이 취미들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20여 년 전에는 정부에서
‘일인 일 취미 갖기 운동’을 장려하여 각 회사의 써클 활동에
얼마간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취미 생활이지만
도가 지나쳐 취미가 도박으로 진전 되거나
개인의 취미로 인해 타인의 얼굴이 찡그려지는 행위와
산야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이 아름다운 삼천리강산이 더럽혀 지고 훼손 되는 건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적당한 활동은 각자의 즐거운 생을 보장하고
휘파람 불며 생활전선에 전념 할 수 있는
인생의 ‘소스’ 같은 것이 취미일 것이다.

내 취미는 ‘낚시’ 인데
그 중에서도 찌의 아름다운 비상을 즐기는 ‘민물낚시’이다.
고교시절부터 셀프스터디로 터득한 낚시 기술로
참으로 많은 이 나라의 호수와 강을 섭렵하고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춘향 골 처자와 결혼한 후에도
내 취미 활동을 위하여 새색시를 데리고
종종 호수와 강을 찾아서 취미 생활을 하였었다.
아내도 야외에서의 불편함과 따가운 햇볕이 싫었지만
큰 불만 없이 동행을 하곤 하였었다.

결혼한 다음해 여름휴가 때였었다.
아내는 큰아이를 임신하여 배가 불룩한 상태에서
우리는 남원을 찾아 하루를 지내고
전북 임실에 위치한 물 맑은 운암호로 낚시를 갔다.
그 당시야 자가용이 없으니
숙식을 할 짐 꾸러미와 낚시 가방을 메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더듬어서 호숫가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여정인데 낚시터에 텐트를 치고
낚싯대를 3대 설치하니 어언 저녁이 되었고
서둘러 저녁을 해서 먹고 낚시를 시작 하려니
갑자기 잔뜩 흐려진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텐트 주위에 물길을 내고
근처 구멍가게에서 구한 라면 박스를 텐트 아랫부분에
빙 둘러쳐서 빗물의 침입에 대비했다.
단단히 대비하고 다시 낚싯대 앞에 앉았으나
비가 점점 거세어 져서 일찍 밤낚시를 포기하고
아내와 같이 누워 텐트 후라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겨 듣던 감미로운 팝송 삼아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저녁과 함께 마신 반주는 꿉꿉하고 불편한 잠자리를
비단 금침으로 느끼게 하여 나는 편히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아내가 흔들어 깨워 일어나보니 비가와도 너무 많이 온다.
단단히 단 도리를 하였는데도 도저히 계속 버티기 힘들다.
비를 맞으며 낚싯대를 걷으려 들어 올렸는데
그 빗속에서도 날씬한 몸매의 준척 붕어가 잡혀 있었다.
잡은 붕어를 방생하고 빗속에서 짐을 챙기다 보니
어언 동쪽에서부터 희미한 여명이 도롱이를 걸치고
빗속을 헤치며 우리가 있는 물가로 걸어오고 있었다.
비가 조금 뜸해진 틈을 잡아 텐트마저 걷어 그곳을 나왔다.

시간은 새벽이라 구멍가게는 문이 닫혀 있고
할 수 없이 우산 하나에 둘이 의지하여 새벽 길을 더듬어
임실 쪽을 가늠해 걸었다.
어제 일기 예보는 분명 이렇게 많이 온다 하지 않았는데
오늘 너무도 많은 비가 몰아친다.
하루에 몇 번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며 걷다
담뱃잎이 작은 양산 만하게 자란 밭 가에 있는 오두막에 들어가니
안쪽 담벼락에는 얼마간의 담뱃잎을 걸어서 말리고 있고
밖에는 산탄 같은 비가 담뱃잎에 퓽퓽퓽 떨어지는 게
정말 여름날에 아름다운 수채화 이거나 황순원의 ‘소나기’중
한 그림 속에 우리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버스는 올 기약도 없어 비가 다시 잦아들 즈음에 걸음을 재촉해
종종 걸음으로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들 등에는 비에 젖어 무거운 짐 보따리가
마치 꾀부리다 솜 짐에 물을 흠뻑 적신 동화 속 ‘당나귀 짐’처럼
무겁고 집요하게 우리들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마을의 어느 기와집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대문이 삐그덕 열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어느 중년 여인이 쳐다보며 왠 빗길여행이냐고 묻는다.
이 지방에는 갑자기 태풍과 호우 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버스가 오려면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며 안으로 들어오란다.
그 아주머니는 하얀 옥양목 치마저고리를 입었는데
소복을 입은 것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기분이 묘하다.
마루로 올라선 우리에게 수건을 내어 주고
이어서 밥상을 내어 왔는데 반찬이 도라지, 고사리나물 등
제사 음식과 떡이 올라있었다.
괴이한 일이라 그저 그녀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니
어제가 바깥주인의 기일이고 이건 제사음식이라고
시장 할 테니 많이 먹으라고 한다.
기분은 갈수록 기기묘묘해졌으나
지난 저녁 이후에 목에 넘긴 곡식이 없는지라 서둘러
허겁지겁 한 그릇 뚝딱 치우고 떡을 한입 베어 씹었는데,
아차!
떡은 이미 쉰 냄새가 입안에 살짝 들어선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성의를 다칠 새라
‘떡은 안 좋아한다’ 고 핑계를 대고
다른 음식들만 젓가락질 하였다.

정말 고마웠지만 달리 사례를 할 방법이 없어
낚시터에서 밥을 해 먹으려 가져온 쌀만 내어주고
수 차례 반복해서 감사의 인사를 남긴 채 버스를 타고
어제 오던 길을 더듬어 남원의 처가로 돌아왔다.

참으로 우여곡절의 낚시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시골 아버지와 엄마는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셨는지
아프칸에서 구사일생 살아 돌아온 자식을 맞는 듯하였다.
그 해에는 내 취미생활 때문에
시골 부모님의 마음에 커다란 피해를 주었었다.

일제 치하나 한국전쟁 시대의 어렵고 힘든 삶을 사시느라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 키우고 짝 지워서 독립시키는 걸
유일한 취미로 알고 살아오시다 이제는 할 일을 다 하시고
그 취미도 의미가 퇴색한 시골 팔순 아버지의 허전한 마음을
쓸쓸하고 듬성듬성한 처가의 화단이 내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식들 취미만 챙길 것이 아니라
시골 아버지와 엄마 마음의 화단이 무 취미로 쓸쓸하지 않도록
자주 찾아 뵈어야 하겠다.
찾아온 자식들 얼굴 보는 게 두 분의 새 취미가 되도록.

마음고생 시키고 돌아왔던 그날
짐을 풀어 놓고 툇마루로 올라서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시던 시골 아버지는 한 말씀 했었다.
“최 서방!”
“녜~에?”
“취미생활 바꾸게! 장기나 바둑으로....!”
“......”

2007년 8월 5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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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문주: 선생님 안녕하세요.
젊은 분들은 가끔 취미랍시고 즐기는데
어르신 마음에는 기다림과 조심이 난봅니다.ㅎㅎㅎㅎ
저 또한 아희들 걱정을 그렇게 한답니다. -[08/1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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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선경: 더위와 매일 같이 내리는 비로 지루한 여름에 건강 하신지요? 지나간 여름의 기억들을 피력한 글속에 오싹한 위험을 느끼지만 이미 요행히 지난일이니 편히 읽고 갑니다. 예전엔 고생거리를 찾아다니며 휴가를 지냈던 것도 같습니다. 제 경험에도... -[08/14-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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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최시인 안녕하신가?
내가 요즈음 게으른 모습이네
어쩌다 바람든 죽정이 같다네
늦은 인사에 섭섭해 하진 말게나
한때의 취미 기억속을 맴도는 생생한 추억 이셨구먼
장대비에 떠내려 갔으면 어쩌려구.....
마님이 고생 깨나 하셨는데
지금은 빙긋이 미소 짓던 옛날 생각에 가끔ㅎㅎㅎ
빗속을 거닐고 싶으시 것네 ㅎㅎㅎ
좋은 추억에 머물다 간다네
늘 건안 건필하시게 사랑하는 친구야
-[08/16-06:40]-

날아서 내게 온 세 개의 술잔

'불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