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07-20 01:24

ㆍIP:

'불낙'
몇 일전에 초복이 지났다.
사람들은 몸 보신을 이유로 보신탕, 삼계탕 등을 즐겼을 것이다.

7월 둘째 일요일
아내와 같이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수리산 코스 중
가파르지 않고 나무 그늘이 시원한 오솔길로
그저 3시간여를 걸었으니 등반이라기 보다는
산책 같은 산행을 하고 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직접 한 닭발 요리에 막걸리 한잔하고
솔솔 바람이 시원한 수리산 중턱의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다 커피를 한잔하고 내려 왔다.
그것이 그날의 등산의 전부였는데
땡볕에 고된 등반은 일주일의 스트레스 해소 보다는
신체에 무리를 주어 피로만 더 할 뿐이니
여름 등반은 소프트 한 산책 정도로 만족을 하곤 한다.

더위가 한 풀 꺾일 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이심전심 둘의 의견이 맞아 저녁 메뉴를 위해
버스를 갈아 타고 노량진 수산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을 들어 서서 초입의 활어 상점들을 지나
호객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시장 끝으로 찾아 들어간다.
몇 집의 수족관 앞 빨간 고무 그릇에
낙지들이 꿈틀거리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낙지가 한 마리 육천 원씩인 것을
실랑이 끝에 깎아서 2만원에 네 마리를 샀다.
장사꾼들은 벌교 뻘 낙지라고 하지만 중국산이라도 괜찮다.
비닐 봉지에 낙지를 넣어 들고 나오다 시장 입구에서
튼실한 미나리 두 단과 함께 깻잎을 천 원어치 사서 담는다.
미나리는 드물어서 이곳에서 안 사갔다가 동네 시장에서 구할 수 없어
낭패를 당한 적이 몇 번 있었기에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을 구입 했으니 발걸음을 빨리 하여 버스 정류장을 향한다.
기타 필요한 야채는 냉장고에 얼마간 있는 걸로 기억되니
지체할 이유가 없다.
집으로 가면서 30여 년 전을 떠올려 본다.

***80년대 중반(84년, 85년쯤)에
회사 직원들을 몇 명 데리고 남양호가 있는
경기도의 조그만 면 소재지 조암의 전화국으로 출장을 갔었다.
조암면은 경기도의 서해 바다 쪽에 위치한 동네로
언젠가 분쟁이 있던 매향리 미군 전투기 사격장이 있던 곳이다.
처음 가는 전화국엔 의례히 국장과 그곳 직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게 되는데 그건 협조 좀 잘 해달라는 인사 치레였다.
주로 저녁 식사와 약간의 음주를 하게 되는데
이 전화국은 외곽의 작은 분국이라 직원도 적고
분국장도 과장급이라 토요일 점심을 하게 되었다.

메뉴와 장소는 그들의 선택에 맡기는데
그건 그 지역의 먹거리는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고
또 나는 인사 하는 자리이니 내 입맛 보다는
그들의 식성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끄는 대로 한 식당엘 갔는데 주 메뉴가 삼겹살인 것 같아
삼겹살이나 시키려니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역시 그 당시 식당에서 주로 쓰던 네모나고 두꺼운 철로 만든
삼겹살 불판이 버너 위에 올려진다.
그런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처음 나오는 식 재료는
꿈틀거리는 산낙지와 큼직하게 썬 양파였다.
산낙지는 머리의 내장과 먹물을 제거 한 것인데
그래도 살아서 기다란 다리를 꿈틀거리며
뜨거운 불판을 벗어 나려 애쓰고, 모진 식당 주인은
낙지에게 고추 가루와 고추장 세례를 주고,
적당히 익으니 가위로 낙지를 토막 내고 야채를 가미해 준다.
잠시 후 미나리 등 야채를 낙지에 곁들여 먹는데
정말 뜨겁고 오돌오돌 한 낙지 다리 살이 입에서 씹히고
미나리 등 야채의 향이 너무도 좋아 소주로 반주를 하며
국장에게 이게 무슨 요리냐고 물어 보니 내가 그때 처음 들어 본
‘불낙’ 이란 요리라고 했다.
삼겹살 철 불판에 요리를 하여 먹으니 ‘불낙’ 이라는 것인데
그곳 기관장들은 이 ‘불낙’ 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하긴 지척에 갯벌인 서해 바다가 있으니 낙지는
이곳 해산물의 주가 되는 곳이며 흔하고 싸리라.

그때 먹어 본 맛이 너무 좋아서
그후 남양호나 그 근처로 낚시를 갔다 올 때는
의례히 이곳에 들려서 ‘불낙’ 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 오곤 했었다.
그런데 이 요리가 몇 년 지난 후부터
우리 집 특별 요리 중에 하나가 되었고 다른 특별 요리와 함께
내가 우리 집에서 담당 전문 요리사가 되었다.***

이제 ‘불낙’ 요리를 하여 저녁 식사를 하여야겠다.
낙지의 머리를 주방 가위로 잘라서 먹물과 내장을 제거하고,
양파를 까서 썽둥썽둥 썰어 준비해 놓고,
매운 청양 고추와 깻잎을 씻어서 준비 하는 동안
아내는 사온 미나리를 다듬어 식초를 뿌린 물에 담가둔다.
이렇게 미나리를 식초를 탄 물에 담가둬야
혹시 있을 거머리가 미나리에서 떨어져 나와 물에 씻겨진다.

이제는 대충 준비가 다 되었다.
전골이나 음식이 튀면 지 저분 하니 식탁에 신문을 깔고
그 위에 야외용 가스 버너를 놓은 후 전골용 냄비를 올린다.
그 속에 찐 마늘 약간에 손질된 낙지와 양파, 청양 고추를 넣고
고추 가루와 고추장을 큰 숟가락으로 각각 두 개씩 넣는다.
고추장은 집 고추장 한 숟가락,
슈퍼에서 파는 고추장 한 숟가락이면 좋지만
없으면 그냥 시중에서 산 태양초 고추장을 두 숟가락 넣는다.
고추장과 양파는 ‘불낙’ 이 달착지근한 맛을 내게 한다.
이어서 버너의 불을 켜고, 다시 두 세 숟가락의 국 간장을 넣고,
낙지가 타는걸 방지 하고 잡냄새를 제거 하기 위하여
아깝지만 반 병 정도의 소주를 넣어준다.
낙지와 양파에서 적당한 양의 물이 절로 나와 전골이 될 테니
더 이상의 물은 추가 할 필요 없다.

그 동안 아내는 식초 물에 담가 두었던 미나리를 씻어 담고,
깻잎을 담은 그릇을 식탁에 올리며
식구 대로 한 공기씩의 밥을 준비한다.
냄비 안에서 아우성치던 낙지가 어느새 수줍다고
분홍빛으로 꽃 필 즈음 집게와 가위를 이용해 토막을 낸다.
이제 숟가락으로 국물의 맛을 보니 약간 텁텁하니
조금 더 기다리며 옛날 2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본다.

****나의 처남 둘과 동서 형님은 전북 전주에 살고 있는데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그곳의 ‘불낙’ 전문 식당엘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불낙’을 시키니 낙지에 불고기를 넣어 요리 한 게
돼지 고기 때문에 낙지만의 칼칼하고 매콤하며 깔끔한 맛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은 진정한 ‘불낙’ 이 아니라
두꺼운 불판에 낙지만 넣고 요리 하는 게 ‘불낙’ 이다’ 라고 했더니
두 처남과 동서는 열을 올리며 그건 잘못 안 것이며
낙지에 갈비를 넣으면 ‘갈낙’ 이고, 불고기를 넣으면 ‘불낙’ 이라고 우긴다.
나는 10여 년 전의 조암 면 경험을 조목조목 이야기 하며
이해를 시키려 했으나 막무가내인 이 세 사람의 공격을
나 혼자의 입으로는 중과 부적이라 그냥 ‘알았다’ 하고 말았다.

도저히 내가 이길 수 없으니 ‘알았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낙지에 불고기 넣은 게 불낙 이고, 갈비를 넣은 게 갈낙?’
‘그러면 낙지에 양고기, 그 중 최고로 큰 양고기 넣으면 최양낙? 낄낄낄’

그때쯤에
서울에도 역시 ‘불낙’, ‘갈낙’ 이란 메뉴가 있었으나
서울 대학로의 혜화 전화국 건너편에 있던 건물 2층에
그곳 지명인 종로 5가를 따서 이름 지어진 ‘오가’ 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이곳은 전문 ‘불낙’ 집으로 제대로 산낙지 만으로 ‘불낙’ 요리를 했으며
‘갈낙’ 은 메뉴 판에서 찾아 볼 수 없었는데 가격이 비싸서 인지
아니면 사계절 산낙지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3년여 만에 문을 닫고
다른 메뉴의 식당이 들어섰다.****

그때뿐 아니라 요즘 전국에 산재한 전문 낙지 집의 ‘불낙’, ‘갈낙’ 도
역시 대부분 돼지 고기를 같이 넣어 요리하고 있다.

이제 냄새가 그럴 듯 하니 본격적으로 ‘불낙’ 식사를 해야겠다.
전골 냄비를 열어 준비 했던 미나리를 한줌씩 넣고
뒤이어 깻잎을 대 여섯 장씩 넣어 그 야채가 너무 익기 전에
숟가락에 밥을 반쯤 올리고 그 위에 보랏빛으로 익은 낙지와
푹 익은 양파와 살짝 익힌 미나리, 깻잎을 하나씩 올리고
나는 매콤한걸 좋아하니 익은 청양고추 한 토막을 더 올린다.

이제 소주 한잔을 털어 넣고
준비된 ‘불낙’ 요리 한 수저를 입에 넣고 씹는다.
고추장의 단 맛과 푹 익은 양파에서 나온 달착지근한 천연 조미료가
낙지에 베어 달고, 미나리와 깻잎의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청양 고추의 매운 맛은 입술에 남아 목구멍으로 넘기기 주저된다.
들큰 매콤한 낙지 맛이 향긋한 깻잎과 미나리 향을 타고
입안에 머물 때, 내 가슴은 자연히 오물아 들고
팔뚝에는 ‘소르륵’ 환희의 소름이 돋지만
잠시의 아쉬움을 남기고 소주 한잔의 여운을 따라
혓바닥을 떠나고 나면 내 입은 다음의 ‘불낙’ 숟가락을 기다리곤 한다.

산낙지는 역시 ‘불낙’ 을 해도 죽은 낙지와는 다르게
꼬들꼬들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 항상 산낙지를 재료로 쓴다.
이렇게 미나리와 깻잎을 조금씩 넣어 가며 한잔 또 한잔 기우리다 보니
밥 한 공기와 소주 한 병이 다 비었다.

식사 양이 많은 아이들을 위해 남은 벌겋고 투박한 국물에
밥을 넣고 볶다가 미나리와 김치(줄기만), 깻잎을
종종종 썰어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돌려 마저 볶아서
한 숟가락 크게 떠 먹으면 입에서 달콤한 맛 가운데
채 익지 않은 미나리와 김치 조각들이 톡톡 터져서
입안은 별천지가 되고, 침이 그득 고여서
아이들은 그 맛에 과식을 하며 포만의 즐거움을 느끼곤 한다.

때로는 달착지근한 낙지의 먹통을 먹기 위해
낙지 머리 손질을 안 하고 통째로 익혀서 날 깻잎에 싸 먹기도 한다.

십 여 일전 산행 후 한 ‘불낙’ 저녁 식사였는데
‘낙지 세 마리면 누운 소도 일어 난다.’ 란 옛 어른들 말도 있으니
특별식 ‘불낙’ 요리를 먹은 올 해 여름에는
우리 가족이 삼복 더위에 쓰러질 일은 없을 것이다.

90년도 초에는 부산 장기 출장 시 주말에 집에 올 때면
인근 덕포 시장에 들려 그 당시 우리 아이들 키만한 낙지를
아주 싼값에 한 마리씩 사와서 저녁 늦게 ‘불낙’ 을 해 먹기도 했었는데,
이제 그것이 ‘불낙’ 이던 저것이 ‘불낙’ 이던 따질 일이 아니며
알고 있는 대로 각자 먹으며 맛을 즐기면 될 일이다.

사실 국어 사전에서 ‘불낙’ 을 아무리 뒤져 봐도
‘승락하지 아니함’ 이라는 뜻의 ‘불낙(不諾)’ 밖에는 찾을 수 없으니
우리 집 특식 ‘불낙’ 은 그도 저도 아닌 변종어 이기도 하니 말이다.

앞으로 두 번 더 남은 복날에
보신탕이 좋아서 보신탕을 먹든,
애완견이 좋아서 삼계탕을 먹든,
그도 저도 싫어 순대 국을 먹든,
각자 취향에 따라 맛있게 많이 먹고 체력을 보충하여
이 여름을 아무 탈없이 날 수 있다면 그만일 것이다.

好齒好胃好食好康 (호치호위 호식호강)
‘이빨 튼튼하고 위장 튼튼할 때, 잘 먹고 잘 삽시다. 하하하’

2007년 7월 19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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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최시인 안녕하신가요.
불낙 한철에 귀한 음식인줄은 아는데 군침이 도는건 야속하구먼.....
참 대전으로 광주로 부산으로 전국일주에 너무나 부럽다네.
다음에 기회있으면 내게도 동행의 기회를주면 참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는 감.....
나혼자는 용기가 없어서 ㅎㅎㅎㅎㅎ
하여간 대단한 용기였네.
자네의 불낙 한잔에 내가 취했으니 만족하네.
늘 건안 건필하시고 행복하시게..... -[07/20-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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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선경: 안녕하세요. 먹는 얘기를 길게 읽다보니 입안에 침이 도네요. 재료 넣는 순서와 맛의 느낌이 자세해서 동석하며 먹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잘 드시고 더위에 지치지 않는 여름 되세요. -[07/21-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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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수: 안녕하세요. 최평균 시인님! *^.^*
언제나 잊지않고 먼저 전화를 해주시어
죄송스럽기도 하고...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막상 일에 매달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참,
어제 모임은 즐거우셨는지요?
좋은 성과가 있으셨길 기대합니다.

엊그제가 초복인가 싶더니 벌써 중복입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몸보신은 하셨는지요?

이젠 장마도 끝나고
오늘부턴 본격적인 열대야가 극성일거라니
더위 먹지않도록 조심하시고 건강한 여름을 나시길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보여주세요.
고운 글에 머물다 갑니다. *^.^* (hirashi2000@yahoo.co.kr) -[07/25-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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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옥희: 윗글을 산업자원부에 보내드립니다^^ -[07/31-15:55]-

취미

내 꽃밭들(큰 꽃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