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04-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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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의 도시 강릉
사월이 한참인 오늘은 문향이 깃든 도시 강릉을 돌아 보기로 했다.
작년에 업무 때문에 눈여겨본 몇 곳,
그 중에서도 허난설헌의 생가를 들려 보기로 한 것이다.

아침에 늦은 식사를 하고 원주에서 출발하니 10시가 조금 넘었는데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지나치지는 않지만 꾸준히 비를 뿌려댄다.
영동 고속 도로를 타고 힘껏 달리니
도로변 야산에는 봄이 한참 오르막 길을 달리고 있다.
그렇게 꾸준히 내리던 비가 대관령을 들어서니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하늘이 높고 맑다.
제왕산을 걸쳐서 난 고속도로 터널들을 지날 때는 아예 햇살이 눈부시다.
지금쯤 저 제왕 산 깊은 자락 왕산면 대기리에도 봄이 한참 무르익고 있을 터였다.
작년 겨울에 가본 그곳은 정말 오지로 눈이 녹을 생각이 없는 듯 춥고
사방 산과 들이 차갑고 모진 눈의 나라였는데
그래도 나긋한 계절에 밀려 백설은 흐느끼고 그 곳을 떠났을 터이다.
나는 한 줄기 실 구름인양 대관령을 타고
문향의 도시 강릉에 조용히 스며 들어 본다.

고속도로를 나와 경포대로 가는 길에는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가로변의 벚꽃들이 꽃 손을 흔들며 나를 반기는듯하여 훨씬 마음이 너그러워 진다.

경포 호를 가기 전에 이곳의 대표적인 전통 양반 가옥인 선교 장에 들렸다.
이곳은 1703년에 효령 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이내번이 지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상류 주택으로
이후로도 자손들이 10대에 걸쳐 300 여 년 간 살아 오고 있다고 한다.
옛날엔 경포호가 지금 보다 넓어 선교 장 앞 벌판이 경포 호수였는데
그 당시 배로 다리를 엮어 호수를 건너 다녔던 터라
배다리 집 즉 선교 장이 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드라마나 영화의 사극 촬영지로도 활용되고
강릉의 여고생들의 전통 예절 교육의 장 이나
전통 문화 체험 관으로 도 활용 된다고 한다.
오늘도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소풍을 온 것인지 깔깔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의 선비들은 참으로 멋진 풍류를 즐긴 것 같다.
그 넓은 건축들 곳곳에 벚꽃도 만개 했지만
화단과 담장 가까이에 매, 란, 국, 죽이 골고루 심어져 있다.
그 중에 대나무는 예전에 오죽헌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가 까만 오죽이다.
입구의 반대쪽에 있는 건물에 가보니 이곳은 만석군 선교장의 곳간 이었던 곳으로
1908년 영동지방 최초의 사립 학교인 ‘동진 학교’로 개조 되어
신 학문으로 지역 인재를 양성 하던 곳인데
몽양 여운형 선생이 영어 교사로 재직 당시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교가 되었단다.

이 집 이씨 주인의 거처인 열화당에 들르니 한 무리의 남녀가 우르르 들어선다.
열화당은 ‘일가 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 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 이란다.
안채를 들여다 보고 아궁이를 살피는데 가이드 인듯한 남자가
이들에게 나레이션 하는 말이 내 귀를 당긴다.
이 열화당 앞의 테라스는 러시아식으로 건축 되어 있는데
그건 조선 말기에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 집 주인에게 선물한 것이라며
이 집 주인은 예전에는 국제적으로 놀았던 분이라며 웃는다.
그리고 바깥 주인과 안 주인의 거처(안채 주옥)가 떨어져 있어도
아들, 딸 낳고 잘 살은 것은 바깥 주인이 저녁에 술상을 준비하라든지,
아니면 자리끼를 준비 하라고 머슴을 통해 안주인에게 전달하면
그날은 사랑을 나누자는 암호라서 안주인은 뜻을 알아듣고 준비했다가
부부 합궁에 든다고 한다.

이들 무리의 앞가슴 명찰을 보니 ‘테마 여행’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아마도 인터넷 동호인 모임에서 여행을 온 듯 하다.
커다란 집들을 지나 한 켠에 이르니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보이고
살림 가지와 신발이 가지런히 놓인 것을 보니 여기에 후손들이 사는 듯 하다.

다 돌아 나오는 문 입구쯤에 연못이 보이고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어 널따란 평 석을 놓았으니
아마도 이 집의 옛 주인은 날 좋은 날에 저곳에서 문우들과 옥주를 마시며
즐겼으리라 생각이 된다.
연못 가에 잘 지어진 누각은 활래정 이란 이름표를 달고
옛 문객들의 명필 시문을 훈장처럼 몇 개 앞 가슴에 붙이고 서 있었다.
활래정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온다는 뜻의 정자로
한국 민가 정원의 하나라고 한다.

선교 장을 나오려는데 한쪽에 많은 나무 장승들이
오합지졸처럼 어지러이 늘어서 있었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 이들 이름이 제 각각으로
흔히 천하 대장군과 지하 여장군 만 생각 했었는데
그들 외에 논개 여장군, 감자 대장군, 강원도 낮 도깨비, 밤 도깨비,
산촌 대장군, 해촌 대장군 등 별의 별 장승이 다 있다.
잠시 내게 웃음을 줬던 이들을 몽땅 쓸어 담으니
이 녀석들은 쪼르륵 내 카메라에 빨려 들어 왔다.

선교 장을 나오며 만석꾼이며 선비였던 옛 주인이 한없이 부러움은
비단 나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옆의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을 들리려니
대문에 걸린 커다란 자물쇠가 나의 발길을 막아 선다.
이곳은 개장 준비 중이라 아직 방문이 허락되지 않는단다.
주위 한적한 도로의 벚꽃 무리만이 고개를 주억 거리며 나그네를 반긴다.

흔히 홍길동의 고장은 소설 속에 나오는 배경상
전라 남도 광주 바로 위의 마을 ‘장성’이라 하며
그곳에는 홍길동 마을 이라는 명패나 캐릭터가 마을의 얼굴이 되었지만
이곳 강릉은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생과 사가 있는 곳으로
도시의 도로 곳곳에 잘 생기고 젊은 홍길동의 캐릭터가
활기찬 얼굴로 나그네를 반기며 이곳이 진짜 홍길동의 마을 이라고 시위하고 있다.
바다 내음이 물 내음에 취해 정겹게 소나무 사이를 흘러서 내리는
경포 호 허리를 돌아 들어선 곳에 노송과 벚꽃 울타리를 뒤로 하고 들어선 곳.
그 곳에 허난설헌의 생가가 오래 기다리다 지쳤다는 듯이 졸다가 나를 반긴다.

야트막한 돌담 사이로 난 대문을 들어 서니
사백 년도 더 된 난설헌의 시 향이 나를 맞는듯하다.
툇마루에 허초희(허난설헌 본명)의 아름다운 글들이 내 눈에 들어 온다.
나는 그녀의 시를 눈으로 한번 읽고 귀로 한번 읽고 가슴으로 한번 읽으니
발길이 더디기만 하다.
더디면 어쩌랴!
햇살은 아직도 갈 길이 한참이고 내 마음은 시 향에 흠뻑 젖어 들었는데.
그런데 그녀의 시 한 수가 의문을 자아낸다.

몽유 광상산시(夢遊廣桑山詩)

난설헌 허초희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 들고
파란 난 새가 채색 난 새와 어울렸구나
연꽃 스물 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하여라.

왜 그녀는 ‘연꽃이 스물 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라고 하였을까?
스물 일곱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문은 생가 옆에 이웃한 허난설헌과 허균의 기념관을 둘러 보고
조금은 추측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서얼 출신으로 27살에 이승을 떠났다니 아마도 스물일곱 되던 해에
이 글을 쓴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더군다나 아들과 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내 버렸으니 많이도 슬프고 허전 했겠다.

그 시대에는 서얼 출신은 벼슬길도 막히고 적자와 차별이 심했던 터라
서얼 출신인 허균이 자신의 삶을 빗대어
서얼 출신의 주인공인 ‘홍길동’이라는 소설을 썼으며
더군다나 아녀자는 문학을 해도 어디 발표 하거나 어울려 활동 할 수 없어
그저 규방에서 시를 쓰고 혼자만 음미하고 했었다는 데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생각하니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나는 더없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으며
또 한편으론 그녀의 재능과 그 시절의 그녀가 한없이 측은해 진다.
그 시절에는 아녀자가 남편에게 사랑을 말할 수도 없던 시대 이었으니
그저 가슴으로 만 바라다 볼 수 밖에 없는 낭군님 이었을 것 이다.

채련 곡(采蓮曲)

난설헌 허초희

가을 맑은 호숫물 옥돌처럼 흘러가고
연꽃 피는 깊은 곳에 난초 배 매어 놓고
당신 보고 물 건너로 연꽃 따 던졌는데
혹여 남이 보았을까 반나절 부끄럽네

입바른 소리를 잘 했던 허균의 누나 난설헌의 솔직한 사랑이 떠 올려 지는
이 시 앞에서 몇 번을 더 읽으며 나만 바라보며 4반세기를 살아온
나의 아내를 떠 올려 본다.
기회를 만들어 아내와 아니면 후일 생길 며느리까지 데리고 다시 이곳에 들려서
이 시를 읽고 감상하게 해야겠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읽은 어느 시인의 글에서 사랑 시는 너도 나도 많이 쓰니
가급적 안 쓰는 게 좋겠다고 하여 사랑 시는 조금 자제하고 있는 요즘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시를 쓸 수 있다면
다시 또 열심히 쓰고 더 수련하여 그녀의 반 정도라도 되는
아름다운 사랑 시를 써 보리라 다짐해 본다.
그녀의 시 향이 살아 있는 툇마루를 지나 뒤꼍을 가니
홍매화가 담벼락에 기대어 피어 있는 것이
아마도 허난설헌이 이곳을 차마 못 떠나고 님 그리며 홍매화로 피어 있는 것 같아
다시금 가슴이 시려 온다.
남자가 정말 째째 하다 나는…
이리도 가슴이 여리면서 허균처럼 내 윗사람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 대곤 했었을까?
나도 나를 모르겠다.

옆에 자리한 허균과 허난설헌 기념관에 들렸다.
그런데 현판에 난설헌 보다 허균이 먼저 들어간 건
아마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남존 여비 사상의 찌꺼기는 아닐까?
서양에서는 여성을 위하여 레이디 앤 젠틀맨이라고 여성을 앞에 내 놓는데
허균의 누나인 난설헌을 앞에 내어
‘허난설헌, 허균 기념관’ 이라고 현판을 써 붙여야 되는 건 아닌지?
허균 보다 난설헌이 연장자 이니 말이다.

여하튼 기념관에 들어 서니 난설헌 보다 허균에 많이 초점이 맞춰 진 듯하다.
난설헌은 죽어서도 규방에 숨어서 안으로 만 안으로 만 꽃 피는 것 같다.

그 시대의 기린아 허균은 무척 자유 분방하고 호인 이었는가 보다.
서얼 출신이면서도 좌참찬 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했으며 귀양과 파직이 잦았다고 한다.
그는 그 시대 선비들이 외면하는 불교와 많은 교류를 하여
유교를 숭앙하는 문관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대의 서산 대사나 사명대사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또 그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천주교 신자가 되기도 하였으니
그를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자라고도 한다.
그렇게 그는 많은 종교와 문화를 두루 드나 들고 섭렵하여
열린 공부를 하였으며 자유 분방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글 중에 ‘문파 관작’ 이라는 글에 대단한 그의 마음을 써 놓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불경을 읽어 온 것은
내 마음 머물 곳이 없었음 일레라.
내 분수 벼슬과는 벌써 멀어졌으니
파면 장이 왔다고 내 어찌 근심 하랴
인생은 또한 천명에 따라 사는 것
돌아가 부처 섬길 꿈이나 꾸리라.
그대 들은 그대 들의 법이나 써라.
나는 내 인생을 나대로 살리라.

교산 허균의 ‘문파 관작’ 중에서

기념관을 나와 강릉 사천시에 있는 허균의 시비를 둘러 보기로 했다.
작년에 잠시 들려 본 곳이라 이정표가 가다가 끊어 졌어도 쉽게 찾아 들 수 있었다.
허균의 생가 터가 내려다 보이는 무척이나 쓸쓸한 언덕 속에 허균의 시비는
봄볕에 그을려 꺼므스름 한 얼굴로 나를 반긴다.
너무도 썰렁하고 외진 곳에 서 있는 허균의 시비는
주변의 대나무가 바람에 볼 비비며 노래해 주지 않는다면
적막강산에 온 종일 잠만 잘 것 같다.
찾아 주는 객도 많지 않고
저기 저만치 있던 봄도 여기는 올라 오려 하지 않으니 말이다.

반 항아리 차를 거우르고
한 잡음 향 피우고
외딴집에 누워
건곤 고금을 가늠 하 노니
사람들은 누실이라 하여
살지 못하려니 하건만
나에게는
신선의 세계 인 져

그의 시비에 새겨진 싯귀가 바람에 씻기 울 즈음 시장기를 느끼며
그곳을 나서는데 대나무 숲 반대편 기슭에 홍매화가 선홍 빛으로 피어 있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 난과 국화는 피어서 교산의 시흥을 돋울까?

배 고픔을 잠시 참고 허균 시비 반대쪽 마을
강릉 운전 면허 시험장이 있는 사기막 마을로 향했다.
전통 한과 마을을 지나 동해시에서부터 시작된 고속도로 그 커다란 교각을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 섰다.
이곳은 200여 년 전 막 사발 사기 그릇을 만들던 움막이 많아
‘사그막’ 또는 ‘사기막’ 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이곳에서 만든 막 사발은 옛날에 서민들의 밥 사발이 되기도 했고,
탁배기 잔이 되기도 했으며, 그윽한 향기를 담는 찻잔이 되기도 했단다.
이제는 해살이 마을 이라고 하고 입구에는 테마 마을 안내판이 서 있는 주위에
장승과 솟대가 많이도 늘어 서서 나그네를 반긴다.
내가 우리 나라를 많이도 다녀 봤지만 이렇게 많은 솟대를 세워둔 마을을 보지 못했다.
작년에 이곳을 지나 가면서 카메라에 담아 두었던 사진이
내 부주의로 다 소멸되어 안타깝던 차에 이 근처까지 왔으니
시장기를 조금 참고 들려 본 길이다.
셔터를 몇 번 누르고 폐교를 개조하여 잘 차려 놓은
해살이 마을 전통 문화 체험 학교로 들어 섰다.
오늘 이곳에서 모 단체의 세미나가 있는 모양이다.
신을 벗고 들어선 입구에는 앙증맞게 작은 솟대들이 마치 참새 때처럼 앉아 있다.
잠시 둘러 보며 한곳의 문을 열고 빼 꼼이 들여다 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계신다.
겸연쩍게 인사하고 둘러 보러 왔다 하니 웃으며 설명해 주신다.
이왕에 들린 길이니 차도 한 모금 얻어 마시는데 무슨 차인지 향이 곱고
언젠가 내가 많이 맡아본 향이다.
무슨 차 이냐고 아주머니께 여쭈니 목련 꽃 차란다.
아하!
그래서 내가 이 향에 익숙했구나!
나는 매년 4월이면 목련 꽃술을 담궈서 마시는데 이렇게 차로도 마시는구나.
아주머니와 목련 꽃술과 목련 차를 담구는 법을 교환하고 물어 보니
이곳에서 이달 말일 경 두릅 축제가 있다고 꼭 다시 들렸으면 좋겠단다.
그리고 이곳은 강릉의 대표적인 가면극인 ‘관노가면극’을 전수하고
전통을 계승하는 곳이며 ‘관노 가면극’은 강릉 단오제의 한 부분이며
국내 유일의 무언 가면극이란다.
예전에는 ‘관노(官奴)’ 계층에 의해 연희 되었는데
지금은 김종군 예능 보유자를 중심으로 유천동 주민들과 초중고교 및 대학과
일반 사회 단체에서 활발하게 전승되고, 이곳 해살이 마을 관노 가면극 회는
작년에 창단되어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 다시 왜 이 마을에는 솟대가 이렇게 많이 서 있느냐고
재차 여쭈니 이곳에 솟대 장인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도 배우며 만들고
체험 하러 온 단체에서도 만들어 작품들을 마을 곳곳에 세웠다 한다.
온 김에 방명록에 이름 석자와 몇 글을 적어 놓고
아주머니가 권하는 해살이 마당을 찾아서
산 모퉁이를 돌아 개울 건넌 곳에 있는 두릅 밭을 찾았다.
초가로 전통 한옥을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해살이 마당은
개두릅, 참두릅 새순이 사춘기 소녀의 봉긋한 젖가슴처럼
조금 그리고 조용히 내밀고 봄 햇살을 희롱하고 서있다.
이것도 밭을 이루어 군락을 지으니 장관이다.
아마도 백설 공주가 저 두릅 밭 속에 갇혀서 잠들었다면
왕자님의 키스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아무튼 험상한 가시로 중 무장한 두릅 밭에 연약한 저 새순은 너무도 여리어 보인다.
참 두릅은 그냥 우리가 아는 두릅이고
개 두릅은 엄나무에 오르는 새순을 개 두릅이라고 한단다.
어쨌든 예부터 송이가 천냥, 곶감이 천냥, 문 창호지가 천냥이어서
삼 천냥 마을 이라고도 불린다는 해살이 마을을 뒤로 하고
고픈 배를 달래며 연곡으로 향했다.

주문진을 등뒤에 놓고 오대산 자락으로 흘러 드는 작은 마을에 들어 서니
이곳을 지나쳐 흐르는 개천이 바로 연곡천 이다.
마을을 조금 지나치는 곳에 있는 식당이 시장한 나를 품어 앉는다.
이곳이 이 지방에만 맛 볼 수 있는 ‘꾹저구 탕’ 전문 식당으로
내가 이 지방에서 먹어본 꾹저구 탕 중에서 그래도 가장 맛있는 것 같다.
홀에 들어가 꾹저구 탕을 시키고 있으니 잠시 있다가 식탁에 있는 가스 렌지에
구수하고 매콤한 꾹저구 탕이 들어 앉고 따라 나온 소찬과 함께
감자와 조가 섞인 밥이 한 양푼 나온다.
그렇지!
꾹저구 탕은 역시 이 감자밥하고 먹어야 일품 일께야.
꾹저구 담은 투가리가 씩씩 거리며 흰 김을 내 뿜을 즈음에
뚜껑을 여니 구수한 봄이 온 방안에 차는듯하다.
한 국자 가득 떠서 감자밥을 듬뿍 말아 먹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꾹저구 탕이다.

이 꾹저구 탕은 조선 중기에 송강 정철 선생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 당시
어느 현에 들리신 바 현감의 지시로 식사 대접을 올리게 됐는데
그날 따라 바람이 몹시 불어 배가 못 나가게 되어 생선을 못 잡고
대신 마을 천의 민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드렸는데
선생이 잡숫고 난 뒤 하도 맛이 있어 이게 대체 무슨 고기냐고 물으시니
그때 당시 저구 라는 새가 있어 “저 저구새가 꾹 씹어 먹는 고기로 끓였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니 선생이 말씀 하시길
“그럼 앞으로 꾹저구 탕 이라 부르면 되겠구나” 하셔서
그때부터 이 고기로 끓인 탕을 ‘꾹저구 탕’ 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이제 민생고도 해결이 되었으니 발길을 서울로 향해야겠다.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4시를 넘어서고 있다.
북 강릉 IC를 들어 서서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봄 볕은 따사로워 왜 그리 빨리 떠나느냐고 나에게 애원하고 매달리는 듯
살갑게 나를 따라 나선다.
지체 하지 않고 대관령을 타고 넘으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내 차의 허리가 휘청휘청 한다.
2014년 동계 올림픽을 유치 하려는 횡계에 들어서니 여기에는 아직도 봄비가 내린다.
아마도 강릉에 들어 섰을 때 비가 멈춘 게 아니고
강릉에는 비가 안 왔던 것이었다.
떨어져 내리는 어둠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달렸는데
원주를 지나 여주에 다다르니 이곳도 비가 온 흔적이 없다.
원주의 회사 식구들에게서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형님! 어디 계세요?”
“빙어 튀김 해 놨는데 소주 한잔 하시지요!”
나는
“오늘 묵향을 잔뜩 먹고 서울로 가고 있으니 친구들끼리 맛있게 먹어~”
라고 대꾸하고 서울로 들어 선다.
서울의 올림픽 도로는 이미 봄이 산 등성이를 넘어서
초여름의 풀섶으로 찾아 들고 있었다.
허난설헌만큼은 글을 못 써도
나만을 지키고 나만을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는 나의 집에 들어서니
어언 사위가 어두운 금요일 밤이다.

2007년 4월 13일에 다녀온 강릉을 생각하며 17일에 씀.
(역사적 사실이나 유래 등은 전시된 자료나 안내문, 또는 배포 되는 가이드 페이퍼와
관리인들의 설명에 근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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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강릉의 허난설헌 역사기행을 나는 가만히 앉아서 두루둘 즐겼네
포근하고 정겨움이 구수한 필력 최작가만의 기교 감칠맛 까지 좋은 여행 머릿속에 가슴속에 담아가네
부지런한 친구의 모습 눈에 선하고 굵은 목소리 귓전에 울리네
고운 글에서 편히 쉬다가 간다네
일교차가 심하니 건강 조심하게나. -[04/24-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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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평균: 기행문은 많이 안 써봐서 조금은 지루한듯 하네
하지만 이것도 자주 써 봐야 좋은 글이 나올수 있을것 같아
많이 모자라지만 출장지에서 업무차 지나 다니던 그곳에 다시 들려 보고
글을 써 보았다네.
지루한 글 다 읽어 줘서 고맙네.
항상 건강하고 즐거운 나날 되시게. -[05/07-16:56]-

AB형

얼치기 농사 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