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최 평균
ㆍ작성일	2007-04-24 02:11

ㆍIP:

AB형
어떤 월간 잡지나 글들을 보다 보면
각 혈액형 별로 성격과 애정관등을 분류해 놓은걸 종종 볼 수 있다.

그 중 AB형의 성격은 대충 찾아 보니
소심하다고도 하고 지적이고 냉정 하다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AB형은 이중 인격자라서
표현 억제를 잘 하다가도 또한 잘 못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역시 AB형이면서 그런 자료들을 보니 전혀 틀린 소리가 아니다.
나는 삼 형제 중에 장남이다.
그리고 여자 형제가 둘 있으니
그저 그렇게 그 시대의 평범한 가족 구성원을 갖춘 집안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밑에 남동생이 나하고는 연년생이라
어려서부터 장남인 나는 그저 앉아 책이나 읽고
모든 심부름은 동생들이 도맡아 했다.
물론 그 동생 덕에 엄마 젖을 1년여 만에 동생에게 물려 주고
할머니 품에서 자라야만 했었다.

그 당시에는 심부름을 안 하는 것이 나에겐 편하고 좋았으나
성장을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극심한 내성적 성격이 되어 소심하고
심지어는 구멍가게에서 값 싼 물건을 살려면
가게 주인에게 정말 미안하고 창피하고 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콩나물 5백 원어치나 일회용 면도기 하나 같은 물건은
정말이지 사러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때 마다 동생들을 꼬드겨 심부름을 시키곤 했었다.
어릴 때 그런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뭐를 사더라도 조금 여유 있게 사고
하나 살 거면 뒀다가 다음에 쓸 요량으로 두어 개를 사곤 한다.
음식점에서 고기를 시켜 먹더라도 항상 조금은 남게 주문해서
아내의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니 어쩔 수가 없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말이 없고 남들이 알아서 배려 해 줄 때까지 묵묵히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항상 나는 과묵 하다고 하지만
곧잘 어떤 배당에 손해를 보곤 했었다.
나도 그런 성격에 별로 어려움을 못 느꼈는데
그때 나의 꿈은 외항선의 통신 장이 되어
커다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내 어린 생각에는
한번 나가면 몇 달이나 몇 년을 바다에 있어야 하는 생활이 무척이나 동경이 되었다.
내 전공도 전자 통신 분야고
그렇게 나가면
조용히 책도 많이 읽고 나 나름대로 글도 많이 쓰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부 터는 종로에 있던 유명한 통신 학원에 나갔다.
그때는 C.W라고 하는 모르스 부호(옛날에 간첩들이 이불 뒤집어 쓰고 통신하던)를
송, 수신하여 해독하는 자격증이 있어야 외항선을 탈수 있었으므로 열심히 수강을 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남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는 내가 너무도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운명을 바꿔 놓는 계기가 나에게 찾아 왔다.
그날은 일찍 학원에 도착하여 강의 시간을 기다리는데
학원 휴게실에 나를 쳐다 보는 책이 한 권 있었다.
지금은 지은이가 누구인지 겉 표지가 어땠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묘하게도 나를 잡어 끄는 그 책의 제목은 ‘말 잘하는 법’ 이었다.
안 그래도 말도 못하고 소심하고 극히 내성적이어서
장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던 나에게는 바이블과 같았다.
나는 금방 그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날은 학원 수업도 듣지를 않고 그 책만 보다 늦게 서야 집으로 돌아 왔다.

그 책에서는 말 잘하는 법의 최상은
상대가 계속 말 하도록 분위기를 맞춰주고
상대의 말을 귀와 입과 눈으로 들어 주라고 하였다.
정말로 내 뇌리에 쏙쏙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 그런 말들이
그 책 속에는 빼곡히 들어 있었다.
다음날도 학원의 책장을 살펴 보니 ‘리더 쉽’ 이라는 책이 또 나를 유혹한다.
그날도 수업을 빼 먹고 그 책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 책에서는 2명 이상이면 자연스럽게 그 중에 리더가 생긴다고 했다.
만약에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시켜도
먼저 한 사람이 자장면을 시키면 뒤 사람도 대충 같은걸 시키는데
그때 먼저 시킨 사람이 자연 리더가 된 거란다.
두 권의 책을 몇 일을 두고 읽고 나서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살아가면서 필요할 때 울어 야지 젖을 주고
또한 기왕 살 거면 용 꼬리로 사느니 닭 머리로 사는 게
훨씬 보람된 삶이 될 거라고.
기왕이면 할말 다하고 리더로 살자고.

그 후로 외항선 타는 꿈을 접고
그때 까지만 해도 남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해서
어머니한테서 숙맥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나는 부단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흘러 내가
상급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 했을 때는 이미 나는 예전의 숙맥이 아니었다.
그 동안 읽었던 잡스런 책들(나는 이상하게 명작이나 잘 알려진 책 보다 조금은 외면
된 책을 골라 읽는걸 좋아했었다.)의 지식을 앞세워
달변은 아니지만 한 무리는 리드 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 했다.
결국 나는 군에서 상병을 달고 내무반장을 맡게 되었는데
본부 중대라 나보다 고참인 병장도 몇 있었고 부사관도 몇 명 있었으나
인사 계는 굳이 입대 17개월인 나에게 내무반을 맡겨서
내무 반장을 14개월간 하고 전역 대기를 두, 세 달을 했으니
옛날 성격은 정말로 어디로 도망 간 건지 모르겠다.
부대에서도 대대장님 이하 본부중대 최병장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고질적인 성격은 내가 원하는 대로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예전의 그 고루한 새님으로 봤던 어머니는
지금의 아내하고 선을 볼 때도
아내에게 미리 당부의 말씀을 했었단다.
‘우리 아들은 말이 없고 착하기만 하니 아가씨가 말 좀 많이 하라고’
그래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던 아내 앞에서
유머 있고 막힘 없이 분위기를 리드해 가니
아내는 깜짝 놀랐단다.

전역한 후에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도
여흥 시간에는 사회를 보고 먼저 나서서 주책을 떠는 지경이며,
그 후 직장 예비군도 부 사관 출신이 많은데도
병장 전역한 나에게 일반 예비군 소대장을 맡겨서
예비군의 날 육군 참모 총장 상까지 받았으니
내가 예전의 그 소심한 AB형 이라는 게 나 자신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그걸 보면 확실히 AB형은 이중 인격자 인 것 같다.

그 후 결혼을 하여 아들만 둘을 낳았는데
나는 내 아이들을 내 어릴 적 전철을 밟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얘기를 하고, 마음속에 담아 두지 말고 살기를 바랬다.
그래서 애들이 어릴 때부터 모든 일에 앞장 서도록 했다.
회사의 체육 대회 때는 여흥 시간이 되면
초등학생과 유치원 생인 어린 두 녀석을 데리고
누구보다 먼저 운동장에 나가서 춤을 췄고,
친구들 부모님 회갑 잔치엔 으레 두 녀석을 데리고 무대로 나가서 같이 춤을 춰서
창피라는 단어가 두 녀석 주위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그런 결과인지 우리 두 녀석은 당당히 남 앞에 나서서
학교 소풍 때는 사회도 보고,
면접이나 시험을 봐도 오히려 더 불안하게 긴장을 안 한다.
시험 보러 갈 때 긴장하지 말라고 내가 충고하면
너무 긴장이 안돼서 오히려 걱정 이란다.
내가 왜 이렇게 철저히 성격을 조율 했냐 면
사실 두 녀석도 나와 같은 AB형이고 또 아내도 AB형이니
우리 가족은 네 명 모두가 AB형 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잘 아는 AB형을 미리 조율하고 훈련 시켜
내 어린 시절과 같이 인생을 허비 하는 일은 없애야 하는 것.
그것이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나만의 교육이 아닐까?

하지만 그 내성적인 성격은 아직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한번씩 빼꼼이 삐 져 나와서 나를 옛날로 돌아 가게 한다.
가령
남과의 대화도 좋고 친구 사귀는걸 좋아하는 낙천적인 지금이 되었지만
어느 회의에서 차례대로 하는 발표나, 아니면 차례대로 노래를 부르거나 하면
내 차례가 돌아 올 때까지 굉장히 긴장되고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누가 먼저 이야기 하면 어쩌나?’
‘내가 부르려는 노래를 누가 앞에서 먼저 부르면 어쩌나?’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성격은 아마도 기본인 것이라서
후천적 노력으로도 말끔히 해소는 안 되는가 보다.
어쨌든 AB형은 소심하고, 이중 인격이란 것은 맞는 것 같다.
단지 지적이고 냉정하다는 이야기는 맞는 말 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던 나의 생활 신조는
‘용 꼬리로 사느니 차라리 닭 머리로 살며
항상 남에게 도움이 되는 구차하지 않은 삶을 살을 거라’는 건
그때 봤던 두 권의 책에서 얻어진 교훈이다.

그러고 보니 책은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물건이다.
그렇게 내성적인 내 삶을 바꿔 줬으며
우리 아이들의 앞날도 열어 줬고
스스럼 없이 글을 쓰는 나를 만들어 줬으니
어찌 책 속에 진리 있다는 말을 부정 할 수 있겠는가?

조금 아쉬운 건 아내 AB형은 아직도 그런 내성적 성격이 많이 남아 있고,
큰 녀석 AB형은 어려서부터 책을 엄청 많이 읽어서
책값 때문에 고생을 하면서도 마음이 뿌듯 했었는데
작은 녀석 AB형은 책 읽기를 조금은 등한시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이제는 저 미국의 재미 동포 조승희 같은
끔찍한 성격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 두고 꾹꾹 눌러 참기 보다는
대화로 곧 바로 풀어 가고 친구를 잘 사귀며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 할 줄 아는 AB형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곧잘 이야기 한다.
성격은 얼마든지 개량 할 수 있고
특히 나쁜 성격은 노력으로 얼마든지 뛰어 넘을 수 있다고.
그리고 후배들이 자기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그저 책을 많이 읽히라고.
그 속에 모든 게 다 있다고.

그런데 부모들은 책을 멀리 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시킬 건지….

2007년 4월 24일 신 새벽 막걸리 통 옆에 놓고

**산자부 기술표준 2007년 6월호 실린 글**

김영진: 안녕하시오 -[04/24-14:48]-

김영진: 놓쳐버렸네 -[04/24-14:48]-

김영진: 안녕하시오.
성격의 차 그것 참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사고인데
당신은 작가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오.
자신의 흠을 생각하여 아들 들에게 좋은 선례를 가르침은 아버지로 사회인으로
큰 교훈을 보고있네.
생각지도 않은 만남 안성의 아쉬움이 지금도 눈에어리고 반가움이 만감이라네.
바쁘게 사시는 자네의 모습 정말 보기좋았네.
요즈음 일교차가 심하니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의날들만 맞이시길 빕네. -[04/24-20:30]-

최 선경: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혈액형와 성격을 잠시 주목합니다. 저는 학교때 혈액형 검사가 잘못 되었을거라는 공론이 있던 o 형인데 종종 제 자신의 혈액형을 기억하며 자신 안에 숨어있는 기질을 꺼내고 싶어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격려하려는 의도적인 발상이지요. 타고나는 기질, 재능이 나를 상당히 좌우 하겠지만 그보다 더 나를 가꾸고 정돈하며 변화시키는 능력이 더 우위가 아닐런지요... -[04/24-22:19]-

최평균: 김영진 시인님 어서 오시게.
언제나 흉금을 털어 놓고 탁주 한잔에 대화할수 있는
자네의 방문은 항상 내게 힘을 준다네.
아쉬운 만남 채곡채곡 모았다
다시 그 재회의 기쁨으로 표현 하세.
다시 볼수 있는 그날까지 안녕 하시게. -[05/07-17:00]-

최평균: 최선경 수필가님 어려운 발걸음 감사합니다.
성격을 애써 다스려 보려 해 보지만 본질은 어쩌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이곳 문학회에서 고운 글과 좋은 님들 만남이
참으로 반갑고 좋습니다.
눈부시게 피어나는 오월에 아름다운 삶 되소서.
참 ! 수필가님의 집 베란다의 장미는
올해도 미색을 자랑하며 아름답게 피어 나려는지... -[05/07-17:05]-

나의 은사님

문향의 도시 강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