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이 회사에서 받아 온 구충제 두 갑이 달포가 넘도록 거실 텔레비전 탁자위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 예전에는 매년 아내가 가족들 구충제를 사와서 복용하라고 윽박지르곤 했었는데, 이제는 아들이 회사에서 무상으로 네 가족의 구충제를 타오곤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복용을 종용하던 아내는 본체만체하고 있고 작은 아들도 복용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결국 약을 타온 큰아들과 성의도 성의려니와 마냥 방치하기가 미안해서 마지못해 입에 털어 넣은 내 것을 제외하고 두 갑은 아직도 타고 들어갈 식도를 못 찾은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구충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진 것은 이제는 회충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내에는 별로 기생하지 못하고 있어 더 이상 국민의 건강에 위협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우리 부엌문화와 난방문화가 60년대 중 후반부터 연탄에 의존하면서 그 독한 가스로 인해 겨울의 물것인 이와 빈대가 서서히 사라졌고, 회충은 사람의 인분으로 나왔던 알이 그 인분을 써서 재배한 채소의 잎에 붙어 있다가 이를 섭취한 사람의 체내로 들어가 기생하게 되는데, 이제는 인분대신 농약을 사용하고 또한 생활환경도 현대화되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채소를 재배하며 뿌렸던 농약의 잔여물을 자신들도 모르게 장기간 섭취하게 되면서 얼마간의 농약성분이 몸에 축적되어 우리 체내도 더 이상 회충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을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92년에 이미 0.3%로 멸종 조짐을 보였고 그 뒤 더 줄어 0.05%선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어 거의 천연기념물 수준이라고 한다.

반면에 예전부터 2%선이었던 간디스토마는 꾸준히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늘어나서가 아니라 회충이 거의 사라져서 기생충의 1위를 간디스토마가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 간디스토마는 강 유역 주민들에게서 감염률이 높고, 특히 최대 유행지는 낙동강유역이라고 하며, 1970년 조사에서는 이곳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감염되어있었다고 한다. 내가 1990년대 초에 업무 차 부산의 구포지역으로 장기 출장 갔었을 때의 어느 휴일.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5일장 중의 하나인 구포장을 구경하였었다. 바다와 강과 김해평야가 접해있는 부산은 농수산물이 다양하고 또한 값이 쌌다. 그런 다양한 상품들을 여유롭게 둘러보다가 시장의 거의 끝자리쯤에서 마침 민물고기를 파는 가판을 만날 수 있었다. 평소 붕어낚시를 즐기던 터라 가물치, 잉어, 미꾸라지 등을 구경하는데, 내 한가로움과는 달리 주인장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붕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붕어가 지느러미도 여기저기 찢어지고 비늘도 군데군데 떨어졌으며 빛깔도 히끄므리 하여 ‘싱싱’이라는 단어하고는 멀어도 한참 멀어보였다. 그런 붕어를 회 뜨고 있었다. 인근의 낙동강 하류 그 더러운 물에서 그물로 잡았을법한 그 붕어들을....... 그래서 나는 물어봤다. “아저씨 이 붕어는 왜 회를 뜨는 겁니까?” 했더니 주인장은 나를 잠시 올려다 볼뿐 말없이 손질만 부지런히 하고 있었고 내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대변하듯 자랑스럽게 “아. 예! 제가 회로 먹으려고 샀어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오염된 물에서 잡은 피들피들한 붕어를 날것으로 먹으면 간디스토마 걱정이 안 되나?’하고 반문하였었다.

또한, 그 시절 중부지방에서도 향어는 회로 먹었지만 경상도지방에서는 향어는 물론 잉어회를 파는 식당들이 많았었다. 그러니 낙동강이 가슴 한 복판을 꿰고 지나가는 지역에 사는 경상도사람들이 간디스토마 감염자가 많았을 거란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인근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처 고모부 내외를 병문안 했었다. 비록 일어나 걷거나 앉을 수가 없어 병상에 누워계시지만 정신이 또렷하고 말씀을 잘 하시는 일반병실의 고모와는 달리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고모부는 그 육신이 너무도 지쳐있었고 정신도 오락가락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먼저 방문했을 때는 정신만은 건강하였었는데 보름새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서 바라보는 내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결혼 30주년을 두 달 전에 지났으니 처 고모부 내외와의 인연도 30년이 조금 넘은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결혼한 지 2,3년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처의 가족들 행사나 여름휴가 때 처가인 남원에 가게 되면 나는 종종 인근의 호수로 낚시를 가곤 했었는데, 그 해 여름에는 88고속도로 밑의 저수지인 금풍지에서 밤새 손바닥만 한 붕어를 꽤나 많이 잡았다. 오전에 철수하여 잡은 붕어를 풀어 놓으니 처갓집 그 커다란 함지박에 가득 찼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대충 닦고 막걸리반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마침 남원에 내려와 계시던 고모부가 집으로 들어서시다 함지박의 붕어를 보시더니 반색을 하셨다. “이야! 최 서방 이 붕어 어디서 잡아 왔노?” “예! 고모부 저기 금풍지에서 잡았는데요.” “그래? 거기는 물이 상당히 맑을 텐데.” “예. 물이 참 깨끗하던데요.” “그럼 이놈들은 회로 먹어야 제 맛이지!”

고모부는 그 길로 구멍가게에서 페트병에 담긴 막소주를 사오시고 붕어를 몇 마리 회를 뜨시더니 소주안주로 초고추장을 듬뿍 찍어 맛있게 드시는 것이었다. 지켜보던 내가 괜히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고모부! 얼마나 맛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간디스토마 무섭지 않으세요?”하고 여쭸더니 내 염려를 단칼에 잘라내며 “어떠냐? 간디스토마가 잠복기간이 30년이라는데 설마 내가 30년을 더 살겠니?”하시며 “하지만 자네는 오래 살아야 하니 먹지 마라.”하시고 참으로 고소하게도 잡수셨다.

내가 자료를 조사해 보니 수명이 1년 반 밖에 안 되는 회충과는 달리 간디스토마는 사람 몸에서 20년 이상 살수 있다고 한다. 그 증명으로 예전에 중국에 살던 사람이 호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그는 그 뒤 호주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26년간 살다가 죽었는데, 부검을 해보니 담도에서 살아 움직이는 간디스토마가 나왔다고 한다. 간디스토마는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국가에만 국소적으로 분포하고 있다고 하니 그가 호주에서 간디스토마에 추가로 걸렸을 확률은 없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중국을 떠나는 순간 간디스토마에 걸렸다고 해도 최소한 26년을 그의 담도에서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자료를 보니 한때 교사이셨던 고모부가 근거도 없이 허투루 말씀하신 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런 고모부는 이제 추정하면 말씀대로 30년이 조금 모자라는 지금 먼 길을 떠나실 채비를 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낚시를 시작한 것도 사실 붕어회가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어느 여름방학 때 자전거를 타고 구로공단을 지나 안양천을 건너 지금의 광명시에 있는 애기능 저수지를 갔는데, 비포장 도로 밑에서 세분의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헌데 두 분은 전혀 붕어를 못 잡고 있었는데 유독 가운데 앉은 아저씨는 잘지만 때깔이 고운 붕어를 연신 낚아 올렸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에서 한동안 구경했는데, 신나게 낚아 올리는 아저씨와 달리 두 분은 지루하고 구경꾼들에게 겸연쩍은지 점심식사를 하려고 싸온 도시락을 꺼내 펼쳐 놓고 신나게 낚시하는 아저씨를 채근했다. 식사를 하자고 연신 불러대니 그 아저씨는 마지못해 손을 씻고 도시락을 꺼냈다.

근데 이 아저씨 잡은 붕어 몇 마리 배를 따고 비늘 손질 하더니 소주 한잔을 입에 톡 털어 넣고 손질한 붕어를 호수의 물에 휘휘 흔들어 씻더니 고추장을 잔뜩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 아저씨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듯 꼬리지느러미만 입 밖에 나오게 하여 앞 이빨로 살짝 씹으니 붕어 꼬리지느러미는 부르르 떨었고 이내 입 밖에 돌출된 지느러미를 손으로 잡아떼어 마무리하면서 “어~ 그놈 참 맛있다.”하는데 입가에 붕어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니 옷소매로 쓰윽 닦아 냈는데, 나는 그의 그런 행동에 완전 매료되었다. ‘그래. 지금은 학생이라 술을 못 마시지만 졸업하면 저 붕어회에 소주 한잔 꼭 해봐야지.’하고 작은 계획을 마음속에 갈무리 하였다. 그 후 바로 낚시를 시작하였으나 내가 술을 마셔도 될 때쯤에 전국적으로 간디스토마가 문제가 되어 매스컴에서는 날로 민물고기를 절대 먹지 말라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결국 낚시는 시작했지만 붕어회 안주로 소주는 오랜 시간동안 마셔볼 수 없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소양강에 낚시를 갔을 때는 그 물 맑은 호수에서 잡은 쏘가리나 누치 등은 날로 먹어봤지만 붕어회를 처음 먹어 본 것은 낚시를 시작하고 20여년이 지난 90년대 초 경남 양산 출신의 아저씨가 주인인 아파트의 방 한 칸을 얻어 지내던 울산의 장기출장 시절이었다. 그 아저씨도 경남사람답게 민물 날것을 엄청 좋아하셔서 휴일 날 내가 영천의 맑은 물에서 낚시로 붕어를 잡아오면 인근의 아저씨 친구들을 불러서 붕어회에 소주 파티를 하곤 했는데, 잡아온 나를 항상 불러서 같이 술자리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레 붕어회를 접하게 되었다.

요즘은 즉효약이 개발되어 구제에 문제가 없지만 간디스토마는 우리 민족에겐 무척 오래전부터 기생하였다고 하는데, 500년 전 5살에 죽은 아이의 미라에서도 알이 발견되었고 조선시대 양반들의 묘역에서도 발견되었으니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즐겼으며 간디스토마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가장 오래된 화장실로 알려진 삼국시대인 백제시대에 사용됐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간디스토마의 알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니 이 기생충은 인간에게 징그럽고 악착스런 놈들이다.

한때는 민물 날것은 전혀 먹지도 않고 활어횟집에서 광어회만 자주 즐겼는데 자신도 모르는 새 간디스토마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아서 당국에서 조사 분석해보니 횟집 업주들이 비슷한 색과 육질의 가물치를 광어회라고 속여서 팔아 결국 그걸 먹고 감염된 걸로 판명되어 사회적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엔 간디스토마 구충 즉효약이 개발되어 3번만 복용하면 따로 결과를 검사할 필요가 없을 정도니 이제는 자주 검사와 구충을 해주면 민물회를 맛있게 즐길 수 있겠다.

이 간디스토마는 중간숙주인 쇠우렁이 살 수없는 환경에서 자란 물고기에는 존재할 수 없어 양식한 물고기는 간디스토마에 안전하다고 한다. 공어라고도 하는 빙어도 소양강 같이 깨끗한 물에서 잡은 것은 괜찮다고 하는데, 예전에 깨끗한 물에서만 살던 빙어가 이제는 더러운 물에도 적응을 하여 남양호나 강화 등 물의 맑고 탁함을 막론하고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살고 있어서 시중에 파는 빙어는 어디서 잡은 건지 출처가 불명하다. 설사 깨끗한 물의 호수에서 내가 잡은 빙어라도 가급적 날로는 먹지 말고 튀김이나 조림으로 먹을 것을 사람들에게 권한다. 따라서 민물고기는 가급적 날로 먹지 않는 게 좋으며 설사 즐기더라도 자주 감염 여부를 검사하고 구충하여야할 것이다.

또한, 회충 등 기생충도 최근 들어 사람들이 유기농 채소를 선호하고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다시 기생충 감염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 1년에 한 번씩은 구충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겠다. (이글을 초고하고 퇴고하는 기간에, 그러니까 탈고도 하기 전에 처 고모부는 결국 소천 하셨다.)

2013년 2월 중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