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출연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화중에 내 이름이 화두에 올랐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았다. 종종 처음 통화를 하거나 만나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소개하면 “평준씨요?” 또는 “평규씨요?”하며 정확한 내 이름을 재차 물어보곤 한다. 그럼 나는 “산수책에 나오는 그 평균이요. 그것도 최고의 평균. 최평균”하면 모두들 “예에!”하며 내 이름을 쉽게 각인하기도 하고 화두로 삼거나 약간의 농담을 덧붙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친이나 조부가 이름을 지어주는데, 나의 이름은 아버지 보다 연세가 10여년 많은 6촌 형님이 지어주셨다. 동생들의 이름에 법 헌(憲)자나 권세 권(權)자를 넣어서 작명 한 것과는 달리 ‘너는 집안의 장남이니 그저 굴곡 없이 항상 편안한 삶을 살라.’는 뜻으로 평평할 평(平)자와 고를 균(均)자로 작명하였다고 한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그 6촌 형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동경에 유학하셨고 동경의 기관차기관사로 근무하시다 해방과 함께 귀국하셨는데, 근무당시 시간이 날 때마다 동경 국립도서관에서 사시다시피하시며 책을 많이 읽으셔서 다방면에 박식하셨다.

그런 형님의 염원을 담아 작명해 주신 ‘평균’이라는 이름은 그 염원을 저버리고 나는 우리사회의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그나마 다소 나아지고 있으니 그저 서운하지만은 않지만 결국 이름과 같이 삶이 펼쳐지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름대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누구나 이름을 거창하고 멋들어지게 잘 지으려 작명에 거금을 투자하고 열성을 다할 것이다. 하긴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조합한 게 사주라고 하는데, 거기에 성명학을 더 한 게 ‘신사주’라고 하며 더 나아가서는 관상 수상 심지어 족상 까지 포괄하여 미래의 운수를 점친다고 한다.

이름은 성 뒤에 붙여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그런데 조선 왕실에서는 왕의 이름을 대부분 외자로 사용했고, 이를 휘(諱)라 하며 극 존중 했으며 왕의 이름은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왕의 이름을 지을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아주 어려운 한자를 선택해서 쓰도록 하여 일상에서 문서나 편지를 작성할 때 큰 불편이 없도록 배려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신하나 백성들과는 차별화 한 이름을 갖도록 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런 이름은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조선시대에서 일제 강점기 까지도 민간에서 아명을 ‘강아지’ ‘개똥이’ ‘돌이’ 등으로 천하게 지었는데 이는 당시 전염병에 의해 유아사망률이 높아서 천한 이름으로써 염라대왕의 관심을 피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좋은 이름은 어떤 것일까? 조선의 왕들처럼 나만의 이름이 좋을까? 아니면 부르기 좋거나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 좋을까? 그저 평범한 한문으로 구성된 평균(平均)은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라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군에 입대하기 까지 나와 똑 같은 ‘평균’이라는 이름은 내가 유일한 줄 알았었다. 그런데 입대하여 훈련을 마치고 훈련소를 떠나 자대로 가려고 대기하던 중에 줄을 맞춰 놓여 있던 더블백에 하얀 글씨로 써 놓은 이름이 ‘신평균’이라고 되어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여 그 인물을 만나보고 싶었으나 개인행동이 허락되지 않는 관계로 결국 만나지도 보지도 못하고 그저 스쳐 지나고 말았었다.

그 후 전역을 하고 취직을 하여 우여곡절 끝에 맞선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는데, 내가 명함을 내밀었더니 아내는 명함을 읽어보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래! 내 이름이 좀 별스러워 그러겠지.’하고 생각하였으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내의 이름도 별스러운 ‘평순’이라고 하였다. 어째 이런 일이....... 알고 보니 아내의 집안은 ‘평’자 돌림이라 평권, 평엽 등 거의 모든 이름이 평자돌림이었으며 심지어 아내 작은아버지의 아들 즉, 아내의 사촌동생이고 나의 사촌처남은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나와 같은 평균이다.(지금도 그 처남을 만나면 ‘평균 처남’ ‘평균 매형’하고 서로 부른다.)

그때서야 세상은 넓고 사람은 더욱 많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살다보니 평균과 평순에다 한때는 경기도의 평촌아파트 단지에 살기도 했으니 그 평평하게 라는 염원의 평자는 나의 삶에 절대적으로 같이 한 글자인 것이다.

언젠가 여동생이 직장에서 서류에 가족사항을 적는 란에 오빠 이름을 ‘최평균’이라고 적었더니 동료아가씨들이 “오빠 이름이 최평균이니?” 하면서 호호호 웃더란다. 그래서 동생은 “오빠 이름 가지고 뭘 그러니?” “올케 언니 이름은 뭔지 아니?” “뭔데?” “모평순” 그러자 모두들 “까르르르” 웃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평균과 평순은 아들 둘 낳고 다소 힘들 때도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그런대로 잘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고, 쓴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 되면서 내 글이 어디어디에 실렸나 궁금하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최평균’이라고 쓰고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의외로 나와 같은 동명의 ‘최평균’이 여럿 검색되었다.

경기도 모 시청의 청소과 최평균, 동남아시아 대사관의 최평균, 기업 회장 최평균, 건축 디자이너 최평균, 의학박사 최평균, 심지어 최평균 여사도 있었는데, 그 최평균들 속에 글 쓰는 나와 실패를 본 기업체 대표였던 내가 검색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사람은 그래도 어떤 업적이나 흔적이 있는 사람들이나 등록되어 있을 것이니 검색되지 않는 사람들 까지 생각하면 남북을 통틀어 얼마나 많은 ‘최평균’이 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 수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참에 이름에 대하여 살펴보니 시대적으로 유행했던 이름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해방된 1945년 당시 출생한 사람들의 제일 흔한 이름으로 남자는 영수, 영호, 영식이 등이었으며 여자는 영자, 정자, 순자, 춘자 순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인 75년도를 살펴보면 남자는 정훈, 성호 순이었고 여자는 미영, 은정이 가장 흔한 이름들이었다고 하며 최근인 2005년도에는 남자는 민준, 현우 등이고 여자는 서연, 민서 등으로 그러고 보면 그 이름들은 살아오면서 낯설지 않게 자주 들어본 이름들이다.

거기에 성씨로는 김씨가 약 1천만 명 정도로 1위고, 2위는 700만 명 정도의 이씨, 그다음으로 박씨 그리고 나와 같은 성인 최씨가 4위로 220만 명 정도라니 다소 흔한 성에 드는 최씨에 평균이라는 이름은 꽤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그와는 반대로 경(京)씨, 빙(氷)씨, 예(乂)씨, 우(宇)씨 등은 정말로 희성이어서 한두 명밖에 없다고 통계가 되어 있으니 그런 성씨에는 평균이라는 이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제는 친구들 간에서나 어떤 자리에서도 최평균은 모평순과 더불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나간 세월들이야 지나간 일이니 제쳐두고 앞으로의 내 삶이 모평순과 더불어 이름처럼 큰 어려움 없이 잘살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무사평탄하기를 바래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