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큰아들이 예비군훈련을 나가는 걸 보고 출근했었는데 퇴근해 보니 먼저 집에 도착한 아들이 다리와 양손에 거즈와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왜? 다쳤니?" “예” “예비군훈련 갔었잖아?” “예” “그런데?” “다쳤어요.” “어쩌다?” “서바이벌 하다가요.” “저런”

요즘 예비군훈련에는 모의전투인 서바이벌게임도 하는가보다. 오늘 아침에는 평소보다 몇 십분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하는 아들의 머리를 감겨줬다. 어쩔 수 없잖은가? 의사가 당분간 두 손에 물을 묻히지 말라고 하였다는데.......

향토예비군은 지난 1968년 1월 21일 김신조(현재는 목사님)를 포함한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고 2일 후인 23일에는 미 해군의 푸에블로호 납치와 연이어 울진, 삼척에 대규모 무장공비를 남파하는 등 북의 무력행위가 빈번하고 거세게 도발되면서 이에 적극 대응하기위해 1968년 3월에 ‘향토예비군설치법시행령’이 제정, 공포되었으며 4월1일 창설되었다.

추억해보면 내가 군을 전역한 후 바로 입사한 회사에서 동원예비군을 거쳐 일반예비군에 편제되었을 때인 80년대 후반의 일이다.

나는 육군병장으로 정상적이고 평범하게 만기전역을 하였다. 그런데 새로 온 예비군 중대장이 부사관으로 전역한 대원들을 제쳐놓고 나를 일반예비군 소대장으로 임명하였었다. 그 이유는 예비군 대원들이 대부분 내 또래의 나의 부하직원들이 많아서 그런 선택을 하였던 것 같다. 1개 소대 정도의 일반예비군 대원의 20여명 가까이가 나의 친구 겸 부하직원들이었으니 그들이 나의 말을 안들을 수 없었고 나머지 대원들도 자연스럽게 부화뇌동하여 나의 지휘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도 군에서 병장을 달기 전부터(상병 때) 고참병장이나 단기사관들을 제치고 내무반장을 맡아 13개월 동안 본부중대를 이끌었었으니 그런 소대 지휘쯤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었다. 더군다나 대원들은 업무적으로도 나에게 무척 호의적으로 협조를 잘하던 직원들이었으니 통솔하기는 참으로 수월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무난히 소대장직을 수행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도 지금 기억으로는 날씨가 약간 쌀쌀한 초봄이었던 것 같다. 그 날은 저녁에 비상훈련이 있었던 날이었다. 비상훈련이 있는 날은 퇴근했다가 대략 저녁 9시쯤 회사로 집합을 해야 했는데 점심식사를 하러간 구내식당에서 마침 중대장을 만났다. 나는 “중대장님! 오늘 비상훈련인데 꼭 9시까지 집합해야 돼요?” 했더니 나에게 바짝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원래 그래야 하는데 최소장님은 11시 까지만 회사로 나오세요.”하면서 웃는다. 아마도 소대장직을 내게 맡긴 게 조금은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근무 후 저녁에 퇴근을 하였다.

그런데 같이 퇴근하던 선배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시간의 여유가 많으니 안양에서 소주를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 선배와 나는 집이 안양이었고 직장은 전철로 30분 거리내의 서울에 위치하고 있었으니 여유시간이 충분하였다. 둘이는 여유를 부리며 한 병 또 한 병 소주를 비워 나갔다. 그런데 취기를 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10시가 다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촉박하다. 중대장과 약속한 시간이 1시간여 밖에 안 남았는데 집에 가서 예비군복으로 갈아입고 회사까지 가려니 큰일 났다. 나는 선배를 술집에 혼자 남겨놓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시킨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갔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

이미 모여 있던 중대장과 대원들에게 인사하고 오늘 비상훈련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받고 대기하다 비상 발발 전령을 듣고 대원들을 각 초소 및 임무 위치에 배치하였다. 술에 취해 입에서는 냄새가 풀풀 나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으나 밤이라 조도가 낮고 중대장에게 가급적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밤은 깊어가고 해당 부대에서 훈련점검단이 도착하였다. 아마 점검단 대장은 현역 영관급(중령인가 소령인가)이었고 점검관 두 명은 현역 대위들이었던 것 같다. 초소에서 졸고 있는 대원도 없었고 임무도 모두들 순조롭게 소화하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 가며 점검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야간훈련을 하는 관계로 대원중 몇 명을 야식 준비하라고 구내식당에 배치하였었는데, 이들은 야식인 사발라면용 물을 끓이며 김치와 라면을 준비해 놓은 후 식당 문을 걸어 잠가 놓고 안에서 카드놀이를 하였던 것이다. 그걸 점검관이 지나가다 창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떠드는 소리를 듣고 적발하여 문을 두드리니 카드를 그대로 버려둔 채 전등을 끄고 모두들 뒤의 주방문으로 도망가서 초소에 섞여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급기야 점검관은 소대장인 나를 부르더니 식당 문을 열고 야식지원조를 집합시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문을 열고나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점검관은 나에게 “대원들이 이렇게 뒤에 모여서 훈련 중에 노름을 하면.......”하다가 말을 멈추고 얼굴을 찡그리더니 “참 잘하십니다. 소대장님은 술 냄새가 풀풀 나고 대원들은 구석에서 놀음이나 하고.......”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반격하였다. “우리 대원들이 야식을 준비하다 카드를 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엄격하게 교육을 시켜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술을 마신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 퇴근해서 술을 마시던 중 비상이 발령되었다 하여 곧바로 달려와서 훈련에 임했는데” 그 말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 점검관에게 나는 마지막 일침을 놓았다. “비상이라는 게 예고 없이 불시에 발령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적군이 전쟁을 일으킬 때 언제 갈 거라고 사전 통보하고 쳐들어옵니까?” 내 회심의 일격에 그는 잠시 할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입가에 고소를 머금으며 “이론상으로는 소대장님은 아무 잘못이 없군요. 하지만 대원들은 다시 한 번 교육을 시켜 주십시오.”하고 지휘본부로 돌아갔다. 그 대위는 비상훈련은 항상 며칠 전부터 발령 된다는 사전 통보가 있고 훈련이 소집되는 것이니 나의 반론은 황당한 것이었으나 내가 원칙을 앞세워 밀어붙이니 할 말이 없었으며 나도 그런 걸 잘 알면서도 그렇게 몰아붙이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 후 ‘한소리 듣겠구나.’하고 걱정을 하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점검대장의 훈련 품평에서도 또한 적발했던 대위도 나의 음주나 대원들의 노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고 훈련을 잘 수행했다는 칭찬만 하고 끝냈다. 다만 우리 중대장만 내게 슬그머니 와서 “최소장님. 다음부터는 훈련할 때 술은 조금만 마시고 오세요.”하면서 실실 웃으셨다. 후일담으로 내 당돌함을 듣고 점검단이나 중대장이나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훈련의 임무들은 큰 차질 없이 잘 수행했으니 오히려 호평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이제는 예비군이나 민방위대원 해제도 한참 지난 나이에 한 4반세기 전의 일을 회상해 보니 몇 년간 예비군훈련을 받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들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전역 후 4년간을 동원훈련 받고 일반예비군 6년을 거쳐 훈련은 받지 않고 예비군편제로 대기하는 기간이 7,8년이라고 한다. 그 후에 민방위대원으로 몇 년을 또 지내야 하는데, 아마도 그때 까지가 정식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남자의 자격이 있는 것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국난에 봉착하면 국가를 위해 낡은 이 한 몸이라도 기꺼이 바칠 용의가 있으니 인정은 안 해주지만 ‘나도 남자의 자격은 다소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자조해본다.

그 훈련이 있고 얼마 뒤에 중대장이 찾아와서 “최소장님. 돌아오는 예비군의 날에 아무거시에 있는 군부대에 가서 시계 하나 받아 오세요.”하셨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뭔 시계요?”하니 “모범예비군으로 추천해서 선정되었으니 표창 받고 나중에 조용히 소주나 한 잔 사세요.”하는 것이었다. 그러구러 나는 예비군의 날에 예비군복을 입고 해당 부대에 가서 표창과 부상으로 손목시계를 받았다.

그런데 포상의 내역을 보니 국방부장관상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상, 군단장상, 사단장상에 이어 연대장상 등 이런저런 상을 주는데 내가 받는 상은 두 번째로 높은 참모총장상이었다. 순서대로 도열해 있는 포상자들을 살펴보니 국방부장관상과 참모총장상은 모두 예비역 영관급들이었고 말단의 상까지 몇 명 빼놓고는 대부분 적어도 부사관이 포상자였으며 참모총장상을 받는 나는 사단장상까지 포함 유일한 예비역 사병(병장)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때의 육군참모총장인 이종구대장의 직위와 이름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부상으로 받고 돌아왔었는데, 이종구대장은 얼마 있다가 전역하고 국방부장관이 되었었다.

어쨌든 표창을 받으니 기분도 좋고 육군참모총장기가 문양 된 손목시계도 하나 얻었으니 고마워서 약속대로 중대장에게 소주를 한 잔 샀다. 술자리에서 “어떻게 제가 그런 대단한 상을 타게 된 겁니까?”하고 물으니 “비상훈련 때 술 드시고도 멋지게 대원들을 통솔하셨으니 당연히 소대장님이 상을 타셔야죠?”하면서 껄껄 웃으셨다. 나도 멋쩍게 따라 웃으니 중대장은 소주를 한 잔 입에 털어 넣으시고 “원래는 중대장이 타야 하는데 제가 자격이 안 됩니다. 그래서 소대장인 최소장님이 타신 겁니다.”하시는 것이었다.

우리중대에 표창하기로 선정되었지만, 중대장은 육군본부에서 근무를 하다 소령으로 예편하고 작년에 우리 회사 직장예비군 중대장으로 오셨는데 근무한지 채 1년이 안되어서 포상자의 자격이 없으시며, 지난 훈련성과와 경력으로 자신이 포상을 받으면 국방부장관상을 탔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 회사 온지 얼마 안됐는데 인사도 잘하고 친절하며 살갑게 대해주었고, 예비군업무도 처음이라 조금 낯설고 어색했는데 도움을 많이 줘서 고마운 마음으로 나를 추천하였고 결국 참모총장상으로 결정되었다고 하셨다.

그 대단한 표창장은 여러 번의 이사로 어디에 박혀 있는지 찾기도 힘들고 시계도 낡아 책상 서랍에서 부질없는 세월을 숨죽이고 있다가 언제 어떻게 사라진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대부분 회사에서 승진의 가산점이 되는 포상을 받게 된 사유와 중대장의 고마워하는 마음을 잘 알더라도 모범예비군 참모총장상을 내가 탄 것은 소주 덕분이었던 셈이었다. 결국 소주가 모범예비군을 만들었던 것이었다.

올해는 돌아오는 4월 6일이 향토예비군의 날이다. 이제는 점점 더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초강대국이 되어서 한반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어도 망언과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려는 저 덩치 큰 중국의 기세와 그러잖아도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등 군사적 도발을 서슴지 않더니 갑자기 경험이 일천한 젊은이로 영도자가 바뀌어 개구리가 뛰는 방향처럼 전혀 예측할 수없는 북한이더니 급기야 우리의 영해 쪽으로 대포동미사일을 날리겠다는 불안한 이 시점에 군 복무기간은 채 2년도 안될 만큼 짧고, 그나마 일부 국회의원후보들이 더 줄이겠다고 공약을 하고 있는 현재상황이고 보면 예비군이나마 예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진화된 훈련을 받아 정예화 된 강군의 예비군이 되어야 하는데, 모의전투인 서바이벌이나 훨씬 과학적이고 다각적인 훈련은 참으로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된다. (2012년 3월 중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