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언 계절은 늦가을에 접어들었다. 내 화단에도 봄부터 지금까지 기쁨을 주었던 화초들이 하나 둘 아름다운 옷을 벗어 버리고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화려했던 꽃잎과 푸르렀던 잎에 각종 영양분 공급을 차단하고 뿌리에만 비축하기 시작하며 지난할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자니 식물들의 자태는 후줄근해지고 비루하여 지난 영화가 언제였나 싶게 무척 흉물스럽다. 자연에서야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식물이 어우러져 마치 다 타고서도 마지막을 붉게 장식하는 장작의 잉걸불처럼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홍엽의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몇 가지 선정해서 이루어진 내 화단에서는 그런 조화를 바라기는 무리다. 하지만 몽땅 걷어 내면 단아함을 더러 얻을 수 있을 것이나 나는 잠시 행동을 망설이며 문득 3년 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전에는 죽음이라는 것을 무척 두렵게만 여겼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음도 삶이라는 연장선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여 기왕 맞이할 거면 멋지고 아름답게 또는 보람차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추세이다.

나는 가능하면 남들이 다 쓰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즐겨 쓰고 싶지는 않다. 대부분의 어머니 이야기는 휴먼드라마이고 대표적으로 소설가 신경숙 선생은 어머니를 모티브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엄마를 부탁해’를 탄생시켰다. 누구나 어머니는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에 남아 있고 너나없이 어머님은 희생이고 고생이셨고 감동이며 후회의 대상으로 대부분 글들이 그 범주에서 벋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주절대는 어머니도 그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란 마음에서 어머니의 추억에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가을은 왠지 어머니의 삶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기나긴 봄여름을 지나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떠나버린 올해의 가을 같이 어려서부터 모질긴 삶을 살았던 어머니는 풍성한 결실의 계절을 느낄 사이도 없이 느닷없는 엄동의 겨울을 맞으셨다.

어머니는 어려서 외조부모님을 여의고 이모와 외삼촌의 권유로 입을 덜기 위해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하였지만 남편은 6.25 전쟁에서 전사하셨다. 또다시 이모와 외삼촌의 강권으로 10살이나 많은 나의 아버지와 재혼을 하셨지만 아버지는 결혼 초부터 있는 속 없는 속을 다 썩이다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후에는 어머니를 더욱 더 힘들게 하셨는데, 그 부분은 다른 분들의 어머니와 많이 유사하니 거론을 더 할 사유는 없다. 단지 그런 상황에서 5 남매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려 철부지로 자라며 한 번 생각지도 못했던 행상을 하는 등 몹시 험난한 삶을 정면으로 부딪쳐 나갔는데 그것도 자식에게서 희망을 얻으려는, 자식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반듯하게 세우려는 모정의 명목으로 희생을 하셨다. 그도 전 후 세대의 다른 어머님들과 유사하다하겠다.

그런 어머니의 삶이 그 무덥고 고된 농번기 여름을 지나 쾌청한 날씨에 결실을 거두는 보람의 가을에 갑자기 자리에 눕고 말았다. 발단은 어린 손주의 돌떡을 이고 오시다 빙판에 넘어져 척추를 다친 후유증에 의한 것이지만 사실 어머니의 복은 그만큼 밖에 안 되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 행상으로 얻은 평소의 고질병인 좌골신경통에 더해 다쳤던 척추를 60대 후반에 강남의 유명병원에서 시술을 받은 후 다시는 당신 혼자의 힘으로 걸음을 떼어 놓을 수 없더니 몇 년 후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서 집의 침대에서 병원의 중환자실 침대로 그리고 다시 요양병원의 침대로 옮겨서 3년여를 식물인간으로 사시다 생을 마감하셨다.

집에서 누워 계실 때는 물론이고 살아생전에 어머니는 항상 “내가 먼저 죽으면 너희들이 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 들 거야. 그러니 아버지가 먼저 가고 내가 뒤따라가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였었다. 그런데, 10살 연상인 아버지는 갖은 사고의 부상 후유에도 꼿꼿하셨는데, 덜컥 어머님이 먼저 쓰러지신 것이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병환으로 집에 누워 계실 때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뇌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을 거쳐 회복을 하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하였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 한 번의 스러짐에서 다시는 허리를 펴고 일어나지 못하신 것이다. 어려서부터 병치레와 갖은 불행으로 맘껏 웃을 수 없었던 어머니가 이제 자식들이 다 장성하여 한 번 웃으시려는데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는 살아오시면서 아버지에게 봉사했던 것을 중환자실에 의식이 없이 누워계시며 모두 되돌려 받았다. 아버지는 하루에 한 번씩 집에서 가까운 요양병원에 걸어서 또는 힘들면 택시를 타거나 아들들을 불러 승용차로 어머니에게 가서 간병하시다 돌아 오시 곤 했는데, 연세가 80대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기력이 약해진 후에도 1주일에 한 두 번은 식물인간인 어머니에게 가서 간병인 아주머니들에게 과일도 사다 주시고 때론 기만 원씩도 쥐어주시며 정성이 담긴 어머니 간병을 부탁했었다. 끔찍이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문병을 다니신 것이다. 아마도 그때까지 살면서 어머니에게 저질렀던 죄를 단시간에 모두 속죄 받으려는 마음인 듯 무척 열성이셨다.

둘째아들 집에서 그렇게 기거하시며 어머니 문병을 다니시던 아버지는 내가 들렸던 어느 날 “아범아! 술을 안 마셨더니 똥이 안 나와! 술 좀 몇 병 사다줘라.”하셔서 인근 가게에서 소주 3병을 사다 드리며 “아버지! 한 번에 조금씩 반병씩만 드세요. 떨어지면 또 사다드릴게요.”했는데 그나마 한 병 반을 남기시고 어머니보다 먼저 홀연히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병원에 갔더니 어머니는 평소보다 뭔가 더 슬퍼보였다. 전혀 듣지도 못할 것 같았던 어머니는 자주 오셔서 잘 해 주시던 아버지가 오래도록 방문을 않자 궁금하던 차에 내 여동생의 전화로 소식을 접하고 옆에서 떠드는 간병인들의 소리를 듣고 부터는 무척 슬픈 얼굴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여러 날을 견디고 계시다가 내가 남도를 여행하는 중에 위급하다는 동생의 전언으로 부랴부랴 밤을 새워 달려왔는데, 그 동안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한 시름 놓았었다. 그런 어머니는 말도 못하시고 나를 빼 꼼이 바라보며 무척 슬픈 얼굴로 계셨는데, 울컥 설움이 복받쳐 왔다. 살아생전 좋은 꼴도 제대로 못 보시고 힘들게 살아왔는데 가시는 이 시간에도 의사표현도 못하시고 등창에 고생하시며 저렇게 박복하게 생의 끝까지 살다 가셔야겠는가.

나는 슬픔이 담뿍 담겼는데도 초롱한 어머니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씀드렸다. “어머니 이제 그만 가세요. 힘들잖아요. 엄마도 힘들고 큰아들도 힘들어요. 이제 아버지도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어머니는 역시 아무 말씀 못하시고 두 눈에는 더욱 슬픈 빛이 겹겹으로 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는 내가 야속했는지 아직도 생에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는지....... 그런 뒤 어머니는 3일 만에 조용히 삶의 끈을 놓으셨다. 거짓말 같이 조용히.......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40여일 만에 소천하신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평소 말씀하신 “아버지 먼저 보내고......”를 지키시려고 그렇게 집 침대에 누워 걷지도 못하고 3년,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식물인간으로 3년의 삶 같지 않은 삶을 모질게 이어가시다 약속대로 자식들의 짐을 덜어내고 가신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그런 어머니의 박복한 삶이 이번 가을과 겹쳐져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 계절의 식물들은 행복한 결실의 가을을 맞이한 찰라 겨울의 차가운 입김으로 사지가 너덜거리고 서럽게 잎을 말리고 떨구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가을의 또 다른 꽃인 단풍나무를 치덕치덕 감고 있는 누런 나뭇잎의 나팔꽃과 여주넝쿨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어머니 삶 같아서 꼴도 보기 싫다. 날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낙엽을 아침마다 쓸어내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감고 올라선 넝쿨에서 자식을 위해 힘겹게 사셨던 어머니의 억척을 본다. 억척스런 어머니의 사랑을 이 계절의 낙엽 지는 넝쿨식물에서 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들이 내 어머니처럼 자연적으로 서서히 소멸되는 걸 곁에서 지켜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그것들을 거두지 못하는 이 늦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