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모 텔레비전 방송 중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보고 싶다 친구야’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됐었다. 유명연예인이나 명사들의 어릴 적 또는 오래전에 연락이 끈긴 학교동창을 찾아 사연을 재구성하고 비 동창 속에 동창친구들을 섞어 게스트로 앉혀놓고 주인공이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일부 출연할 수 없는 친구는 스텝이 추적하여 영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게 하여주던 프로그램이었었는데, 그 프로가 인기가 있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누구나 보고 싶으나 연락이 끈긴 친구들을 가슴에 하나둘쯤은 품고 있어 마치 내일 같이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컷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란 사전적으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친구 중에는 어릴 적 동내 친구, 초중고교 나 대학친구, 군대 친구, 직장, 사회친구 또는 같이 글을 쓰거나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친구, 이성친구 등 여러 부류의 친구들이 있다.

그렇지만 어떤 부류의 친구든 진정한 친구란 참 좋은 것인데, 내가 그 방송의 주인공인 초대 손님으로 섰다면 제일먼저 찾고 싶은 친구는 나의 고교 동창 K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나의 인생길에 소중하고 보고 싶지만 그 중 베스트 중 베스트를 찍으라고 하면 결국 찾고 싶은 친구는 오랜 시간 내 짝이었던 K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요즘은 IT가 꽃을 활짝 피워 통신기기만 가지면 못 할 것이 없다는 SNS시대라고 한다. 온라인상에서 친구 찾기 프로그램은 수없이 많고 여러 경로로 친구를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연락이 끊긴지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그 친구를 찾으려니 난감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여야 할지 어떤 경로로 찾아가야 할지. 또, 자존심이 강한 그 친구가 자길 찾는 걸 원하지 않는지도 알 수없는 상황이고 보면 싶게 K를 찾아 나서지 못하고 있다.

70년대 초반의 고교시절. 얼굴에 여드름 꽃을 잔뜩 꽃 피웠던 나와는 달리 깨끗한 피부에 말쑥한 얼굴의 그는 세련되어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학업에는 뒷전이고 결석을 밥 먹듯이 하며 청춘사업에만 전념하던 친구로 말하자면 그 당시 문제아였었던 것이었다.

그의 집안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 추사 김정희의 후손들이었으며 부친은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었는데, K의 공부를 위해서 그의 누님과 함께 서울로 유학을 와서 보광동에서 자취를 하였었다. 그 시절 엘리트로 분류되었던 간호원으로 경찰병원에 근무하던 누님은 그의 학업을 위한 보호자였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시골집에서 송금해주는 납부금, 누님이 마련해주는 납부금, 당시 덕수궁과 창경원의 놀이기구 업체의 이사장이셨던 작은 할아버지에게 손을 벌려 얻은 납부금을 모두 유흥비로 날리고 결국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받은 누님이 다시 납부금을 준비하여 학교를 방문 직접 선생님께 납부를 몇 번하였다. 그런 그를 고심 끝에 공부에 전념하도록 할 방안으로 선생님께 착실한 친구와 어울릴 수 있도록 짝을 지어달라고 누님이 간곡히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 중 근면하고 제법 착하다고 생각한 나와 생활하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결국 교화시킬 목적으로 나를 낙점하여 2학년부터 졸업 때까지 계속 짝으로 맺어주셨던 것이었다.

나도 그가 싫지 않아 무척 친하게 지냈었는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는 그의 자취방에서 같이 시험공부를 하면 누님은 그 시절에는 귀했던 하얀 쌀밥을 지어서 생선을 굽고 고기반찬을 올려 밥상을 차려주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고 병원으로 출근하곤 하였었다.

후에 알았지만 그의 부친은 장손은 아니었지만 경기도에서 삽교호를 건너 충남 신평으로 들어서면 그의 종갓집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었을 정도로 추사 후손은 부유했었다. 그러니 혼식분식을 장려하던 그 시절의 귀한 쌀은 그 집에서는 흔하디흔한 곡식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나와 짝이 되어 어느 정도 성적도 올라가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였었다. 물론 나도 얻은 게 있었으니 융통성 없고 고루했던 내가 여학생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어느 정도 학교 밖의 사회라는 것도 알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갖지 못했던 그 친구의 장점을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줬다고 말하기는 곤란한 것이다.

그 시절에는 가끔 학교에서 단체로 경복궁이나 남영동의 극장에 반 전체가 미술전시회나 영화를 관람하러 가면 우리 둘은 따로 떨어져 뒤풀이로 덕수궁이나 창경원 뒷문으로 가서 작은 할아버지 회사의 직원들을 면회 신청하여 무료로 입장하고 놀이시설의 관리기사로 일하던 형들을 졸라 허니문 카나 회전목마를 공짜로 타기도 하였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모나미볼펜 한 자루 산다는 핑계로 같이 백화점에 가서 평소 면식이 있고 친하던 직원아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퇴근한 그녀를 연애에 숙맥이던 나에게 소개해 주고 잘 사귀어 보라고 했었던 그 친구는 이성문제에 휘말려 고민 고민하다 하루는 자살을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용산역에서 청량리로 가는 한남동 앞의 중앙선기찻길을 베고 누워 있었는데, 마침 기관사가 운행 중 발견하고 급정차를 시도하여 아슬아슬하게 지척에 열차는 정지하여 목숨은 건졌지만 철도원에게 붙잡혀 철도법위반으로 결국 누님이 거금의 벌금을 물어주기도 하였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친구 누나들에게는 골치 덩어리였었지만 지금도 나는 그 곳을 지나갈 때면 그 생각이 떠올라 고소를 금치 못한다. 그게 그 친구에게 재수가 있었던 건지 없었던 건지.

고교 졸업 후 그는 모 신문사의 서울지역 한 지국을 인수하여 사업을 시작하였었는데, 여자 밝히는 버릇을 못 버리고 저녁마다 룸살롱 출입을 하기 시작하였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나긋나긋한 아가씨들의 술시중을 받으니 꿈나라 같았을 것이어서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테고, 그래서 몇 달 만에 사업은 거덜 나고 말았다. 물론 학창시절에 여학생들과 연애하던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룸살롱 아가씨들하고는 격이 달랐던 것이다.

낙담한 K는 고심 끝에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에게 무릎 굻고 눈물을 흘리며 그 당시 거금이었던 기천만원을 술집에 쏟아 붓고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털어 놓으니 “사내놈이 그깟 일로 눈물을 흘리고 난리냐! 기천만원은 잃었으나 그 만큼의 경험은 얻지 않았냐. 너는 아직 젊으니 그만하면 됐다. 사업은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는 더 이상 질책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당시도 교육자이셨지만 부유한 양반가에서 성장하고 살아오신 아버지이셨기에 그렇게 호탕하게 나무라셨지만 웬만한 부자나 우리 집을 비롯하여 보통의 가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은 물론이고 사업비로 애송이 아들에게 기천만원이나 밀어줄 리도 없었을 것이다.

하여간 별스러운 친구 K는 중동의 오일달러로 건설 붐이 일었을 때 남들은 중동에 파견근무하며 돈을 벌어 온다는데, 왕족들과 교류하느라고 벌은 돈을 다 쓰고 모자라 집에서 돈을 송금 받아쓰다가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는 고가의 카메라 4대를 가지고 들어 와서 내 결혼식 때 작품 같은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었다.

남산 한옥마을에서 전통혼례를 올렸던 그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은 절대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어했다. 항상 도움을 받기 싫어하면서 도움 주기를 고집했었다. 그래서 때때로 힘들 땐 우리들에게서 자취를 감췄다가 형편이 괜찮아 지면 목에 힘을 주고 ‘짠’하고 나타나곤 했었다. 그런 K는 인생 여정에서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거듭하다 성동구의 커다란 개인병원을 인수하여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도 했었다. 하지만 10여년 병원을 운영하다가 모 소프트웨어 사업체를 인수하여 의욕적으로 사업을 하다 쓴맛을 본 후 갑자기 친구들에게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고는 여태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나는 그가 또 다시 재기하여 어느 날 불쑥 내 앞에 나타나서 하얀 그의 치아가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평균아! 잘 있었니?”하기를 고대하곤 한다.

그런데, 너무 오래도록 그는 소식이 없다. 은사님에게는 가끔 전화를 하여 그의 거취를 은사님만이 알고 있었으나 그 친구의 당부로 우리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었는데, 그 은사님도 몇 년 전 갑작스런 발병으로 작고하셔서 친구들은 더 이상 K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라도 내가 잡지, 신문, 라디오 등 대중매체에 이름을 올리는 이유 중에 하나도 ‘혹시 내 소식을 접하고 반가워서 K가 나에게 연락을 해오지는 않을까?’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품고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내 동생들과도 같이 어울리고 낚시도 다니던 안경을 쓴 K를 어머니는 항상 ‘안경잡이 친구’라고 불렀었다. 지금은 지방의 어느 개인병원에 근무 한다는 어렴풋한 소식만 오래전에 들었었는데, 하루빨리 안경잡이 내 친구 K의 형편이 펴서 비 개인 후의 무지개처럼 다시 내 앞에 감동으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내 소중한 친구 K에게 꼭 내말 전하고 싶다.

“보고 싶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