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또는 살아가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만하고 밥만 먹고 살다가 간다면 너무도 인생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처럼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경험도 해보며 살다가 하늘이 부르면 하나 아쉬움 없이 부름에 응할 수 있다면 부자나 권세가를 따지기 전에 이 세상 떠나면서 ‘한세상 잘 살다 간다.’고 해도 괜찮겠다.

그렇다면 이번 sbs라디오 오디션 ‘국민DJ를 찾습니다.’에 출연하게 된 것은 나의 인생에 짧지만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내가 오디션에 출연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 특히, 친구들은 ‘안 떨 자신 있니?’나 ‘잘할 자신 있니?’등 염려를 하였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게 그리 허술하지는 않을 것이어서 진정한 프로들이 스텝들일 것이고 진행하는 김승현 선생이나 심사위원인 출연진이 능수능란하게 방송을 이끌고 나갈 거라 생각하니 걱정이 하나도 안 되었다. 그저 작은 점으로 출연을 하면 나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거나 웃음과 휴먼을 이끌어 내는 몫은 그들이니 충분히 나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화시켜 주리라 믿었다.

경력이 2년 밖에는 안 되지만 경비원으로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으니 전에 아파트에서 근무하며 있었던 잔잔한 추억으로 원고를 준비하고 방송을 망칠세라 사연 소개하는 연습을 해보니 아무래도 딱딱하고 책을 읽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리라. 그건 살아오면서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고착된 버릇이리라 생각을 해보며 다소나마 그 틀에서 벗어나 자연스런 언어구사를 해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렇지만, 방송은 잘하는 사람도 필요 하지만 나같이 못하는 사람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더군다나 경비원이라고 하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에서 다소 하층으로 분류되고 있으니 팍팍한 삶 속의 그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도전을 하였다.

드디어 방송이 있는 날. 다른 날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여 시설점검과 건물 외곽 청소 등 할 일을 마치고 작가의 권유에 따라 경비복을 입고 목동의 방송국으로 향했는데, 8시경에 택시를 타고 가니 기껏 15분밖에 안 걸려서 작가와 약속한 9시까지는 까마득 멀었다. 모든 일이 그렇다. 밤이 길면 꿈이 많고 꿈이 많으면 악몽도 많은 법. 이런 일은 잘하든 못하든 후다닥 해치워야 하는데 기다리려면 이렇게 말할까 저렇게 말할까 생각도 많고 걱정도 많을 수밖에 없다. 원고도 가져오질 않았으니 그저 로비에서 출근하는 방송국 직원들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 사람들은 방송국에서 어떤 일을 할까 살피며 이런저런 상념으로 시간을 보냈다.

9시가 조금 넘어서니 담당 작가님이 오시는데 눈빛만 보고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출연자 두 분과 함께 방송국에 들어서니 스튜디오가 참으로 많았다. 그저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두 번의 리허설을 마치고 기다리다 보니 MC인 김승현 선생이 오시고 오늘의 심사 위원이신 방송인 송도순 선생과 ‘컬투 쇼’ PD이신 이재익 선생이 오시고 드디어 슈팅에 들어갔다. 사실 방송을 기다리자니 조금은 긴장이 되었는데 일단 슈팅을 하고 나니 긴장은 풀어지고 담당 PD님이 말씀하신 ‘방송 사고가 안 날 만큼의 선에서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충분히 즐긴다는 생각으로 이야기하라’는 말이 새삼 떠올라 평소 친구들과 만나서 나누던 대화 정도로 생각하고 말을 하였는데, 과연 김승현 선생은 적재적소에 끼어들며 진행의 마디를 만들지 않으셨다. 참으로 언어가 업인 방송인답다. 또한 이야기가 끊어질듯 싶으면 송도순 선생과 이재익 선생이 자연스럽게 맥을 이어 놓으셨다.

그럼 그렇지. 친구들의 걱정은 한갓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참으로 재미있었다. 언제 또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해 볼 수 있겠는가. 1시간이 너무 짧다 생각되니 내가 충분히 즐거웠던 것 같다. 이제 프로그램을 매조지하는 시간. 오늘의 우승자를 가리는 시간이다. 여자 출연자가 참 잘한 것 같아 박수를 쳐주려고 준비를 하였는데, 이런! 오늘의 우승자로 나를 지목한다. 뜻밖이라 기쁘기도 하고 금요일 주 장원전까지 기다려야 한다 생각하니 또 한 번의 수고를 걱정하게 되었는데, 까짓것 오늘도 충분히 즐겼는데 하루 더 즐긴다고 생각하면 나에게는 삶의 작은 이벤트가 조금 더 이어 지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기꺼이 출연해서 최선을 다 하리라.’ 생각하였다.

화요일 예선전과는 달리 주 장원전에서는 경비원을 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탈피하여 소재를 선정해 보았다.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코믹 보다는 휴먼이 적당할 것 같았다. 그 동안 써놓았던 백여 편의 수필 중에서 적당한 글을 다시 방송용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숙고 끝에 처음 시골아버지를 뵙고 결혼 승낙을 받았던 이야기로 결정했다.

“자네 내 딸과 잘살 자신 있나?” “아니오.” “저는 잘살 자신은 없지만 재미있게 살 자신은 있습니다.” “그럼 됐네. 되도록 빨리 날짜 잡겠네.” 로 시작되는 내 삶의 이야기....... 그리고 신청곡은 3년 전 돌아가신 부모님과 시골의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며 윤항기씨가 부른 ‘부모’로 결정하였다. 그러고 보니 선곡과 사연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여기에 지난 화요일도 그렇지만 오늘 주 장원전을 하는 금요일 이 시간도 소중히 하고 싶어 배경음악으로 평소 즐겨듣던 Jim Croce의 'Time in a bottle'로 결정했다. 이 팝송은 행복했던 시간들을 병속에 담아 고이 간직했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꺼내어 그 시간으로 다시 살고 싶다는 가사로 나도 이 노래처럼 오늘의 소중한 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염원을 담았다. 오늘도 변함없이 평소처럼 대화하며 내 차례에 사연을 소개하고 신청곡을 청하니 마침 팝 칼럼리스트이신 심사위원 이양일 선생이 ‘Time in a bottle’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으로 소개를 해 주셨다. 챙이 넓은 카우보이모자를 쓰신 멋쟁이 이양일 선생님과 또 한 분 심사위원은 저음으로 낮게 깔리어 저녁노을 같은 목소리의 아나운서 김정일 선생이었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고 내가 살아온 영등포에서 성장을 하였다니 더 친근감이 있었다.(후에 검색해 보니 독일 월드컵과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캐스터로 중계방송 하셨다고 한다.)

오늘도 한 시간이 벌떡 지나가고 우승자는 4년간 음악다방 DJ 경력자로 차분한 목소리에 잔잔한 사연소개를 한 서초소방서 소방관이 차지하였다. 방송 중에 업무전화가 왔는데 받지 못한 관계로 방송이 끝나자마자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서는데, 담당 PD이신 김삼일 선생이 복도까지 나와 인사를 하셨고 담당 작가도 엘리베이터 앞까지 친절히 배웅을 해주셨다. 아침에 큰아들이 “아버지! 최선만 다하고 오세요.”하던 말을 상기하며 나도 최선에 만족을 느끼면서 택시를 타고 근무지로 돌아왔다.

이틀에 걸친 방송에서 출연한 나보다 내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면서 더 떨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꿈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물론 주 장원을 하면 상금이 50만원이고 더 나아가 년 말 최종우승자는 몇 천만 원의 상금에 내년부터 정식 방송진행디제이로 발탁된다고 하지만 실력을 잘 아는 나에게는 언감생심이요 바람도 없고, 단지 이틀 즐긴 것만으로 대단히 흡족하였다. 또한, 누구든지 생각이 있으면 염려는 방송국 스텝과 출연진에 맡기고 도전하여 방송을 즐기기를 권하여본다. 사람이 보거나 듣는 프로에는 그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출연하여 사람 사는 이야기로 꾸며야 휴먼과 흥미 있는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탄생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나의 오버를 적당히 잘라주신 김승현 선생께 감사드린다. 그는 과연 프로다. 그리고 출연한 선생님들께 내가 너무 무례했다면 너그러운 용서도 함께 부탁드린다. 라디오 sbs러브fm(103.5Mhz)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11시부터 12시까지 방송하시느라 준비하시고 수고하시는 프로그램의 선생님들께 “지난주는 덕분에 참 즐거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며 글을 맺는다.

<2012년 4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