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8월 중순에 이리 많은 비가 내리는 것도 거의 처음이지 싶다. 하긴 덕분에 화단에 물을 주는 일은 생략이 되어 나의 일상은 조금 더 여유가 있어졌으니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지만....... 이 비가 내리기 전에는 3십 5,6도를 찍는 수은주의 도발로 머리가 열 밭이고 온몸이 끈적거리며 화단의 화초들도 불볕에 어쩔 줄 몰라 몸을 비비 꼬고 있어서 하루에 두 차례나 호스로 물을 뿌려 주었었다.

그런 내 정성으로 저마다의 화초들이 꽃잎을 피워 올려 벌 나비는 물론이요 나와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러 모으던 내 호단에서 오늘은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화단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코스모스 무리를 몽땅 베어내고 뿌리를 모두 뽑아내었다.

화단에는 이른 봄부터 작년까지 모아 놓았던 씨앗들과 인터넷으로 구입한 씨앗들을 커피를 타 마신 종이컵을 재활용하여 흙을 담고 씨앗을 심고 정성들여 물을 주고 햇볕을 쬐여주어 돋아난 어린 모종들을 옮겨 심었었다. 거기에 집 마당에 화분으로 키우던 비비추, 벌개미취, 쑥부쟁이 등을 식재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볕 좋던 5월의 어느 날 큰아들이 양재동 꽃시장까지 가서 어버이 날 선물로 사준 채송화, 공작초, 한련화, 사루비아에 자스민과 로즈마리를 사다가 심었더니 화단이 풍성한 꽃동산을 이루었다.

코스모스도 한 평 가까이 할애하여 파종하고 열심히 물을 준 덕에 봄이 다 가기도 전에 각색의 예쁜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계절을 빨리한 코스모스의 개화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머~~! 벌써 저렇게 활짝 핀 코스모스도 있네!” 하며 부지런히 가던 발걸음을 돌려 스마트폰으로 두어 컷 코스모스의 자태를 담아가곤 하였었다.

코스모스밭 옆에는 강원도 산촌에서 옮겨온 벼와 옥수수도 심었는데 지금은 옥수수는 열매를 여물이고 있으며 벼는 두 자쯤 자라 건강한 육신을 뽐내고 있으니 머지않아 이삭이 필 테고 그러면 물화분에 살고 있는 우렁이들이 그 줄기에 핑크빛 알을 입혀 놓을 것이다.

이래저래 심고 가꾸는 화초가 20여종이 훌쩍 넘었는데, 다 자란코스모스와 봉선화, 분꽃은 자연스레 떨어진 씨앗이 발아하여 어느덧 다시 새 생명이 여린 잎을 피우고 있다.

화단의 화초들은 꽃잎이 지고 나면 열매가 맺히니 나는 일삼아 그 씨앗을 하나하나 채취해서 보관하고 있다. 코스모스, 분꽃, 패랭이, 백일홍, 채송화, 쑥부쟁이, 나팔꽃, 공작초에 피마자와 질경이까지 씨앗 상자를 채우며 내 마음도 뿌듯한 흡족함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일찍 개화하여 나를 비롯하여 행인들 마음을 환호하게 만들던 코스모스가 본격적인 장맛비를 맞고 우쭐우쭐 자라더니 이달에 들어서면서 개화될 봉오리도 적어지고 꽃이 피어도 쉬 녹아서 흉물스럽고 씨앗의 결실도 맺질 못하였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1년생 초본 코스모스는 6~10월에 꽃이 핀다고 한다. 어디서나 잘 자라고 약간 척박한 땅에서 더 잘 자라는 이 코스모스는 거름기운이 많은 곳에서는 키가 너무 자라 여름 비바람에 줄기가 쓰러진다고 한다.

내 코스모스들이 딱 그 짝이다. 멋대로 커진 장다리 줄기에 군데군데 시들어 누렇게 뜨고 꽃잎은 녹아내려 흉물스럽기까지 하였다.

하긴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출근하기만 하면 호스로 물을 듬뿍듬뿍 뿌려주고 메마른 날씨에는 오후에 한 번 더 물을 주었으니 코스모스가 제 키를 키우기는 가장 적당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이나 미인이나 제 젊음을 다하고 보면 생산도 떨어지고 아름답던 자태도 소멸되고 마는가 보다. 코스모스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자 하는 내 바람을 이미 벗어나 버리고 만 것이다.

저놈들을 베어낼까? 조금 더 미련을 가지고 기다려 볼까? 아니면 몽땅 베어내고 가을의 요정 국화를 몇 종류 사다 가을맞이를 할까? 이럴까? 저럴까? 몇 날을 망설이다 오늘은 결국 결단을 내리고 모두 베어낸 것이다.

그 베어낸 자리에 여름부터 모아왔던 퇴비와 적당히 부패한 한약 찌꺼기를 파묻고 그 위에 다시 올해 거두어들인 코스모스 씨앗을 넉넉히 뿌리고 부토를 살살 뿌려 주었다. 그리고 장대비가 씨앗을 헤집어 쓸고 갈까 염려하여 베어낸 코스모스 줄기를 위에 촘촘히 덮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콩을 삶는데 콩깍지를 태운다.’는 조식의 칠보시가 떠올랐는데, 코스모스씨앗을 보호하려 제 어미의 육신인 코스모스 줄기를 덮은 것이 그와 유사한 것 같다. 하긴 닭도 병아리를 제 품에 품듯이 사람도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자식이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는 것이니 세상의 모든 어미는 새끼를 위해 희생을 하며 그 희생은 훌륭한 자식으로 빛을 발하므로 이 세상의 모든 어미의 희생은 정말로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 저 코스모스는 며칠 후면 새싹을 세상에 내밀고 다시 밭을 이루어 밤마다 몰래몰래 키를 키우다 9월의 어느 날 아침 한 두 송이의 꽃봉오리에서 화사한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출근한 나를 깜짝 놀래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모작 코스모스 재배가 된 셈이다.

한쪽에는 쑥부쟁이 국화가 무리를 이루고 있고 아쉽지만 돌단풍과 구절초도 한 그루씩 나의 화단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풍나무도 두 그루가 잘 자라고 있으니 그들이 2012년도의 내 화단에 가을 향을 그득 채워줄 것이지만 그것들만 기다리며 가을을 그냥 무의미하게 맞을 수는 없으니 코스모스밭 앞부분에는 소국 중국 대국의 국화들을 한 화분씩 사다가 열 맞춰 심어야겠다. 그 중 소국은 수년전 충북 영동에서 보았던 그 향 짙은 산국이나 감국 한 화분 사다 심어서 나의 화단에서는 진한 국화 향으로 코스모스가 하던 벌 나비와 뭇 것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일조하도록 해야지.

그래야 나의 올 가을이 서운하지 않게 지나갈 것이므로.......

2012년 8월 중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