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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07-08 21:10
ㆍIP: 223.xxx.128
아버지의 과일
#권영심의글
-아버지의 과일  -
         권영심
어제  하귤과 비파를 선물 받아 글을 썼는데 참 재미있는 댓글들이 많았다
하귤과 비파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릴 때 먹었던 과일들이 지금은 보기조차 힘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 처럼 과일을 흔하게 먹지도 않았다
사과 한 조각 먹어보지 못하고 컸다며 웃는 어르신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집은 과일을 제법 많이 먹은 듯 하다
가장 많이 먹었던 과일이 수박 참외  토마토 사과 복숭아  미깡 바나나였다
수박 참외는 여름이면 거의 매일 먹었고 토마토는 비오는 날이면 엄마가 도가로 뛰어가서 한 다라이 사가지고 왔는데 절대적으로 먹어야 했다
사과는 내가 좋아해서 아버지가 종류를 불문하고 상자로 쟁여 놓으셨다
밥을 먹지 않아도 사과는 먹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사과로 인한 엄마와의 갈등이 말도 못했는데 미처 먹지 못하고 썩어 버리는 것들이 생길 때 마다 엄마는 대놓고 나를 구박했다
그러면 아버지가 나를 감싸고 결국 부부 싸움이 나고...
나는 엄마가 미워서 이를 앙다물고 며칠내내 밥 한 톨 안 먹고 주구장창 사과만 먹어댔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경양식 집이며 중국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이셨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디
사과만 먹으면 영양실조로 큰일나는 거이야-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면서 토닥이는 아버지께 입술을 쑥 내밀고 고개를 흔들던 어린 나의 그 불효가 이렇게도 가슴을 친다
사랑하는 것이 죄이며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고 무슨 큰 위세라도 되는양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어린 내가 보이면서 한 대 치고 싶어진다
복숭아는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과일이다
시고 딱딱한 풋 복숭아 부터 물컹한 백도 황도까지 엄마는 가리지 않고 먹었다
복숭아 다라이를 이고 우리집에 와서 몽땅 떨이를 하고 옷과 양말 내복등으로 바꾸어 가던 아주머니들의 새까만 얼굴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미깡은 감기 치료제였으며 바나나는 남동생의 독차지였다
여동생이 첫 조카를 낳았을 때 바나나 한 송이를 12000원 주고 산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암튼 바나나는 서민들이 사먹을수 없을 정도로 예전에는 비쌌고 웬만한 과일 가게에는 없었다
몸이 너무나 약하고 거의 먹지를 않던 남동생이 그나마 잘 먹는 것이 바나나여서 엄마는 목숨 걸고 사수했다
아버지가 큰 시장에 물건하러 가면 반드시 바나나를 사 와야 했는데 만약 잊고 못 사오면 난리 난리가 났다
-마리아가 먹는 것은 그렇게두 챙기면서 아들은 어디서 줏어 왔소?
겨우 바나나 하나 잘 먹는 것을 안 사오요 ? -
나이 차이가 많은 부부이고 엄마는 아버지를 아주 존경했는데 그럴 때는 마구 대들면서 화를 냈기에 아버지는 초콜렛과 함께 잊지 않고 사왔다
나는 지금도 잘 안 먹지만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과일가지고 다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남동생은 수박과 참외를 조금 먹을 뿐 사과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모든 음식을 다 잘 드셨고 어떤 과일이든지 주어지는대로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계절마다의 과일을 잊지 않고 먹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시장엔 지금은 만날수 없는 과일들이 아주 잠깐 나타났었다
난전을 펴는 여자들이 가져 왔는데 살구 오디 버찌 어름 머루 다래 능금 아그배 똘배 자두 산딸기... 과일이라기 보다 열매 수준의 그것들을 일삼아 사와서 먹게 했다
시고 떫고 들척지근하고 딱딱하고 물컹거리고...
얼굴을 찡그리고 바르르 떨면서도 먹곤 하던 딸을 보며 파안대소하시던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리는듯 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지의 그 웃음 소리가 좋아서 기를 쓰고 먹은 것 같다
기특해 하시며 머리도 쓰다듬고 어깨도 두드리던 아버지께 어리광을 부리던 나를 기막혀 하면서 바라보던 엄마...
너무나 그리운 추억의 한 장면이다
어렵게 임신하고 나서 오로지 배만 먹는 딸을 위해 아버지는 과일 도가에 거의 매일 가서 가장 크고 흠 없는 배를 골라 사람을 시켜 보내 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특상품 배를 먹으면서도 나는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당시 아버지는 중풍으로 수족이 자유롭지 못했는데도  삼시세끼 배만 먹는 딸을 위해 그 힘든 걸음을 아끼지 않았다
-저렇게 배만 먹어대니 아들이지 뭐 가서? 흐ㅎㅎ...-
나는 과연 아버지께 첫 손주를 안겨 드렸고 아버지는 하염없이 우셨다
-니 엄마가 배만 먹고 니를 낳았으끼니 배같이 순하고 연하게 세상을 살아 가라우 -
아버지는 그렇게 품에 안은 손자에게 축복하셨다
내 아들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순하고 연하게 세상을 살아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고비마다 잘 넘기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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