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찬열
ㆍ작성일	2021-03-08 04:44

ㆍIP: 211.xxx.27

빗나간 지난 추억

빗나간 지난 추억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의 초등(국민)학교 시절 하굣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 성격에 왜 그 속에 한 무리가 되었는지 어스름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때가 그러니까 내가 5학년 때의 일이었으니까 1960년 7월 하순쯤의 일이다.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그 무렵 자동차 가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겨우 우마차나 다니는 산속을 걷는 길이 총 3.5km 중 2.5km는 산속 오솔길이고 남은 1km 구간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그날이 토요일이 되는 날인데 아침에 오지 않던 비가 점심 무렵부터 쏟아진다. 오늘날 같으면 부모님이 우산을 갖고 나오겠지만 그 시절에는 누구 집 할 것 없이 변변한 우산도 없는 시절이다.
대부분 들에 농사일에 갑자기 비가 오면 바쁘기에 나와주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저학년이 공부하는 교실은 동편에 초가지붕 아래 교실에서 1학년이 공부를 했고 2학년이 되어야만 남향으로 길게 지어진 단층 양철지붕으로 된 교실에서 공부했다.
만약 비가 오면 두꺼운 비료 포대를 절반을 세로로 접어 머리에 걸쳐 쓰기 좋게 비가 오는 날 쓰고 다니는 것이 우산을 대신한 유일한 비를 막아주는 수단이었다.

그것마저 아침부터 오지 않은 비 탓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학교에서 약 1km 정도 집으로 걸어오다 보면 망골 마을이라는 동네 입구를 지나서 5명이 한 학년에 다니는 철천 1, 2구 철야(鐵冶)에 사는(가명) 서길수, 서병현, 정용숙, 나를 포함 4명은 3반인데 철천 3구에 나와 사는 1반이지만 나와만 함께 다니는 양태곤 이렇게 5명이 비를 흠뻑 젖은 채 우리가 무리 지어 하교하는 길에 오다가 평소 입김이 센 길수 친구가 갑자기 제안하는 것이다.
야! 비도 오고 사람도 없을 것이니 우리 길 넘어 언덕 아래 수박이나 몰래 따먹자고 하며 다그치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반 편성은 2학년에 올라가면서 반 편성을 하고 그 후 한 번도 반 편성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한 반에서 오래도록 함께한 교우의 정은 어린 나이지만 더욱더 끈끈해 있었다.
평소에도 입심이 강한 길수 친구의 제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토요일은 점심도 쌓아서 가지 않고 네 시간 수업 후 오후 한 시 반을 넘기니 대부분 배가 고파서일까?

우리는 보자기에 싼 책보를 한쪽 어깨에 올라가는 빗금 형태로 단단하게 매고는 나만 따라오라는 태수 친구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그 친구 뒤를 따라 100여m 언덕 너머로 재빠르게 기듯이 들어갔다.
솔밭 사이사이에 황토 땅에 구덩이를 파고 심어놓은 수박 넝쿨에 달린 것 중 무조건 큰 것으로 하나씩 따 나오라는 의견을 따랐다.
난생처음 남의 밭에 들어가 군데군데 흩어져 심어 있는 수박 넝쿨에 무조건 큰 것만 골라 하나씩을 앉고 나오며 태수는 빨리 나오라는 독촉을 연신 한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소나무도 크게 자라지 않고 조밀하게 숲을 이루지도 않은 솔밭 속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인분이나 퇴비를 넣고 소량의 수박을 심은 것이 고작이고 지금처럼 품종도 과일이 크지 않아 난생처음 몰래 따보는 수박이 어느 수박이 잘 익고 덜 익은지를 전혀 모르는 우리였다.
그리고 하나씩을 품에 안고 기는 듯 허리를 굽히고 그곳에서 300여m 떨어진 네거리길 조금 못 미쳐진 움푹 파인 곳에 한 태모였다. 계속 비는 내리는 가운데 그 옆을 지나는 사람도 학생들도 없었다.

태수가 말하는 것이다. 절대 이 이야기를 집에 가서나 친구들한테도 발설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별도 칼을 가진 것도 아니라 태수는 땅에 내려치듯 수박을 내려뜨리니 퍽 소리를 내며 벌어진다.
그런데 따온 수박 중 제일 큰 것 하나만 속이 조금 붉은 기운이 있을 뿐 나머지는 이제 약간의 붉은 색이 부분부분 든 수박을 손가락을 통째 넣어 속만 파먹고 한쪽에 모아 소나무 가지로 덮어두고 집으로 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배 속을 채우고는 빙긋 웃으며 헤어지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500여m만 더 집으로 가면 철야 사는 세 사람과 산길로 접어드는 갈림길로 태곤이와 나는 갈려 귀가해야 한다.
남의 농산물을 몰래 도둑질하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아는 어린 마음은 비가 오는 추위 탓일까 찬 수박이 뱃속에 들어가서일까 그렇게 떨릴 수가 없다.
태곤이와 나는 200여m 산속 오솔길을 지나서 길이 조금 넓어진 들판 길을 지나 동네로 들어가는 우마차 길 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200여m 지나다 태곤은 큰 마을로 나는 4호가 사는 작은 조양동 마을로 나누어지는 갈림길이다.

나는 태곤이에게 말했다. 절대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자고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그 후 행여 그쪽 방면으로 다니는 초등학생으로 짐작하고 학교에 수박밭 주인이 찾아올까 나는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 그 일은 아무런 일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가난한 농촌 사정 때문에 용숙이는 친구 아버지가 재산을 꽤 갖고 있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개인 운수 사업을 하다가 50세를 넘기지 못해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태곤이라는 친구는 키도 크고 나이도 한 살 위인데 육군에 입대 후 어떻게 된 연유는 모르지만 군 자대 생활 중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문에 의하면 부대에서 두들겨 맞아 죽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그 일을 주도했던 태수 친구 역시 고향에서 오랫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초등학교 동창 모임 회장도 하며 철야에 이천서씨파 종회장도 하며 나와 둘도 없이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다.
그런데 아들만 둘인 그 친구가 작은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무렵 자전거 타기를 즐기다가 그룹을 지어 장거리를 다니고 하던 중 나주시 다시면 광주에서 목포 간 지방 도로에서 3명의 친구와 자전거 탐방을 하던 중 그 친구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나에게 급히 와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승용차가 있는 나는 현장 수습을 하기 위해 그 친구와 함께 가해자 집을 수소문하여 찾아가 보니 가난한 할머니 밑에 사는 손자로 음주 무면허 사고의 전과가 있는 젊은 이었고 당시도 무면허 상태였다.
아무런 구제나 보상도 밭지 못한 그 친구는 현장에서 죽은 아들의 충격에 현실을 잊으려 자주 술을 많이 마시곤 하였다.
끝내 간암 말기에야 검사에 발견되어 3년 가깝게 고생하다가 내가 가끔 문안하러 가면 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십 칠팔 년 전 세상을 하직했다.
그때 다섯 명 중 그 누구도 그때의 수박 서리 문제를 꺼내거나 들추어내는 일은 없었다.
그 시절 또한 그런 문제는 보통 넘어가는 시절인 탓에 조용히 넘어가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 저미는 남의 물건을 손상한 나쁜 추억의 한 장르가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떠오르며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 후 나는 광주로 가족이 이거를 하고 어쩌다 고향길에 그곳을 지나면 그때 이후 달라진 도로지만 그 근처를 지날 때면 그 생각이 어린 날의 못된 기억이 되살아나 스스로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어린 날의 빗나간 잘못을 구하며 떠오른 추억이다.
20210306, 기(記)

※.태수라는 그 친구 묘소가 나주호 언덕에 있었는데 댐의 증설로 자취를 감춰 생각이 나 써본 글입니다.

정대수 2021-03-08 17:24	`정찬열`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정찬열 작가님 안녕하세요. 어린시절의 서리 추억이군요. 아마도 그런 기억들은 다 있으리라 생각듭니다. 나쁜 짓인줄 알면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면 그렇게 되었지요. 또 힘있는 녀석들이 시키면 마지못해 서리를 하기도 했고요. 그나마 수박서리라 다행입니다. 좀 심한 경우는 닭이나 토끼 등을 서리하기까지...ㅎ 지난 추억이 소환되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로 형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한영택 2021-03-13 07:27	`정찬열`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정찬열 작가님 안녕하세요? 봄비가 자주 내려 대지를 흠뻑 적시니 초목이 생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남쪽지방엔 목련이 활짝 피고 봄은 이만치 곁에 다가 왔네요. 코로나가 앗아간 일상의 봄도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보릿고개 시절 시골엔 교통수단이 없어 학교까지 먼 길 걸어 다녀야 했고, 시골에 살면 겁이 나면서도 남의 밭에 몰래 들어가 수박, 참외, 사과, 자두, 등 따먹은 경험이 누구나 한 두 번은 있을 거 같습니다. 잘못된 행동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엔 시대적 애교로 넘겨야겠습니다. 지난 추억의 이야기 공감가는 작가님의 글에 다녀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3월 보내십시오.

정찬열 2021-03-09 06:58	어서오십시오 존경하는 정대수 작가님~ 주위의 환경은 천우 풍파와 같은 것이기에 때로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그런 날을 생각하면 얼굴 붉어집니다. 귀한 걸음 달려오시여 응원에글 고마움 전합니다. 3월에는 뜻하시는 소망 이루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정찬열 2021-03-15 06:05	반갑습니다 존경하는 한영택 작가님~ 귀한시간 주신흔적에 고마움 전합니다. 괸시리 죄짓는 마음 이라고 그때 함께 했더ㅏㄴ 친구들이 일찍 떠나고 나역시 드는 환갑의 나이에 죽을 고비에결국 중증장애자로 전락하니 죄값을 받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이곳 광주에는 어제 첫 벚꽃이 활짝핀곳을 걸었습니다. 성큼다가온 봄날에 늘 건강에 유의 하시고 행운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매화(梅花)꽃이 필 때면

역사속 동백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