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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권영심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권영심
ㆍ작성일 2020-11-22 19:28
ㆍIP: 223.xxx.180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에 그렇게... (  14 )

        권영심 (2020 , 11 ,22    )

어른이 되어 내 살림을 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와
시장을 다니면서 가끔 , 또 자주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한창 더울 때 아침에 나물을 무쳐 냉장
고에 넣지 않으면 오후엔 쉬어서 먹을
수가 없다
나물 뿐인가?
어느 것 하나 냉장고에 넣지 않으면 복
중 더위에 당해낼 음식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 우리집엔 냉장고
가 없었다
중학교 땐가 아버지가 미제 중고 냉장고
를 어디선가 가져 왔고 그토록 소리가
시끄러웠으나 너무나 요긴하게 사용
했었다
그럼 그 전에 음식들은 대체 어디에 두고 넣어 갈무리 했길래 단 한 번도
쉰 음식이나 상한 것을 먹지 않았을까?
아무리 더운 날에도 아삭한 김치나 생채
를 먹었고 콩나물도, 무나물도 쉬지 않은 것을 먹었다

음식이 쉬어서 버리거나 , 상한 음식 때
문에 다툼이 난 기억도 없다
요즘은 과일의 껍질에 흠 하나만 있어도
외면하지만 그 때의 과일들은 상해가는
것들도 그대로 팔고 또 사먹었다
여름이면 과일이 익다 못해 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으로 알았다
출렁거리는 참외 속은 숟갈로 파 내고
먹었고 상한 부분은 잘라내고 성한 쪽을
먹으면서도 배탈 한 번 앓지 않았다
어떤 과일이든지 한 두 가지는 집에 늘 있었는데 사과는 사계절 다 먹었다
내가 이 말을 했더니 사람들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이야 사계절 다 먹지만 그 때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내 기억이 잘못 되었을까?
비록 한 쪽이 거멓게 되고 껍질이 쪼그 라진 상태였어도 성한 부분만 깍아서
먹었고 인도 사과는 일부러 묵혀서 먹기
도 했다
내가 사과를 찾으면 아버지는 가게 맨
끝의 창고로 가서 한 참 만에 사과 두어
개를 손에 들고 왔다

껍질은 쪼글거렸어도 그 사과의 향기는
그렇게도 짙었다
나는 사과를 너무 좋아해서 지금도 상태
불량의 사과라도 먹는다
아버지는 떡을 참 좋아해서 집엔 떡이
떨어지지 않았고 겨울엔 굳은 떡을 연탄
난로에서 구워 먹었다
그런데 여름에도 여전히 떡을 먹었는데
그 떡을 어디에 간수했단 말인가?
긴 여름의 오후 뜨겁게 찐 떡을 얼음물 과 같이 먹는 것은 별미였다
엄마는 설탕을 듬뿍 넣은 얼음물을 아버
지와 나눠 마시면서 찐 떡을 참 맛있게 도 먹었다
그 떡에서 상한 냄새를 맡지 못 했으니
어디에 보관을 했는지 지금도 큰 의문
이다
겨울이 되면 모두배기 떡이라고 해서
밤  호박고지 여러가지 콩과 땅콩까지
넣은 떡을 여러번 해먹었는데 나는 지금
도 엄마가 그 떡을 어디서 꺼내 왔는지
모른다
송편과 모두배기 떡을 참 좋아했기에
밤에 책을 읽다가 먹고 싶어서 집 안을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 했다
아버지는 껄껄 웃으면서 나도 모른다,
엄마에게 달라고 해라고 하면서 모른체
했다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아버지였으나
엄마의 권한이랄까 그런 것은 침범하지
않은 듯 했다

내가 입을 내밀면 아버지는 마리야, 떡
좀 먹자우 , 웃으면서 엄마를 불렀고
잠시 후 엄마는 떡을 가게로 가져 왔다
가을 김장을 하는 것은 정말 큰 행사 였다
새끼 갈치, 조기, 동태, 굴들이 궤짝으로
쌓이고 트럭으로 무 배추가 실려 왔다
며칠 동안 사람들이 몰려서 김장을 했
는데 그 많은 김치를 대체 어디에 보관
했으며 어떤 재주를 부렸기에 여름까지
도 시어 터지지 않는 김치를 먹었을까?
어른이 두어명 들어갈 만한 장독들이 있긴 했으나 그 장독들의 조화라고만
생각하지는 못 하겠다
어렸을 때는 그저 당연하고 아무런 의문
이 없었으나 음식을 본격적으로 만들면 서 의구심이 생긴 셈이다
어릴 때 설겆이도 많이 해봤지만 음식
찌꺼기를 일부러 버린 기억은 없다
정지 언니가 없었을 때 나는 설겆이를
했으나 남은 반찬 갈무리는 엄마가 다
했고 설겆이는 말 그대로 그릇만 씻는 것일 뿐, 버리는 음식물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먹고 나면 버리는 것이
한 가득이다
이 조화 속을 도무지 모르겠다
하다 못해 소스까지도 냉장고에 넣는
지금의 우리집엔 김치 냉장고를 포함 해서 모두 다섯 대의 냉장고가 있다
냉동 식품은 물론이고 가루도 냉장고에
들어 있는데 꺼내 놓으면 불안하다
마트에서 장을 봐 오면 무조건 냉장고로
직행하는 요즘 나는 참 많이 예전의 일 들을 생각한다
지금 냉장고가 없다거나 고장이 난다면
이 사태의 심각성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때 그 시절, 모든 엄마들은 먹
을 것을 대체 어따가, 어떻게 보관했단
말인가?
차가운 것은 차겁게 먹고 따뜻해야 할
것들은 따숩게 먹었던 그 때, 엄마들은
요술쟁이들 이었을까?
시절따라 산다고들 하지만 그 시절의
일들을 생각해 보면 놀랍기만 한 것을
내가 남다른 감성을 가져서 그렇다고는
말 못 하겠다
즐비한 냉장고들을 바라보며 저 안에서
죽어 있는 많은 생명들을 떠올린다면
나는 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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