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8-08-20 14:32

ㆍIP: 61.xxx.105

화선지 ( 5 )
(5)
거리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는 12월,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눈이 펑펑 쏟아질것 같은 날이다. 민재는 회사의 큰 문제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영미생각을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크리스마스연휴에는 영미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크리스마스 전 날 영월로 떠나기 전에 백화점에 들렀다. 백화점엔 캐럴송이 흘러나오고 선물 판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예쁜 머플러를 하나 골랐다. 그리고 필방에 들러 지필연묵紙筆硯墨 세트를 포장했다. 영미가 배우고 싶다던 묵화 중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난화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영미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며 민재는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역에 도착하여 영월 행 기차에 올랐다. 깜짝 놀라는 영미를 보고 싶어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영미는 이상하게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뭔가 자꾸 이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찬바람을 들여 마셨다. 눈을 뜨는 순간, 아! 민재의 환영이 웃고 있었다. 머리를 도리질 하며 창문을 닫으려했다.
“잠깐! 영미씨! 나예요. 내가 왔어요.”
영미는 화들짝 놀랬다.
“어머나, 민재씨? 정말 민재씨 맞아요? 어떻게 소식도 없이...”
영미는 꿈만 같았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민재가 가방에서 꺼내주는 선물을 받으며 영미는 환하게 웃고 있다. 머풀러를 두르고 귀엽게 웃고있는 모습이 다른 때보다 더 예뻤다. 지필연묵 상자를 풀면서, 만면에 희색을 띄는 영미를 바라보는 민재는 황홀하기까지 하였다. 한 시간여 탁자에 화선지를 펼치고 민재가 먼저 한 폭의 난을 치면서, 순서를 설명해 주었다. 영미는 민재의 작품에 연필로 번호를 써놓고 단번에 붓을 들어 민재의 묵화처럼 난을 치고 있었다. 워낙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영미 실력에 민재의 칭찬이 쏟아졌다. 틈나는 대로 연습하면 훌륭한 묵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다. 점포 문을 닫고 둘은 나란히 양식집으로 갔다.
짠! 예쁜 와인 잔이 부딛치며나는 맑은 소리는 잠자는 영혼이라도 깨어날 것 같았다. 한 모금을 먼저 마신 민재는 영미를 향한 답답했던 마음을 털어놨다.
“영미씨, 나는 영미씨가 많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영미는 잠자코 민재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민재는 그런 영미가 못내 서운했다.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영미는 마지못해 한마디 했다.
“저는 할 말을 이미 다 했기 때문에 답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어요.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우리 맛있게 밥 먹고 천천히 이야기해요.”
영미는 와인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민재씨 건강과 성공을 위하여.”
민재는 영미가 전과 같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을 두는 것 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사를 하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영미의 제안으로 찻집으로 갔다. 차를 한 잔씩 앞에 놓고 둘은 서로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님 병환은 좀 어떠세요?”
“아! 네, 한 달 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어요. 일을 치루고 처리 할 일들로 그동안 많이 바빴어요. 아직도 회사 합병은 마무리 단계지만 할 일이 참 많군요.”
영미는 놀란 얼굴로 나지막히 말을 했다.
“부친께서 좀 더 살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버님은 저 세상에서도 민재씨에게 힘이 되어 주실 겁니다. 그리고 합병이 잘 마무리되어 간다니 무엇보다 다행이군요.”
영미는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며 위로를 해 주었다.
“영미씨 위로에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민재는 영미에게 백일 탈상할 때 까지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려고 왔다.
“영미씨 난 영미씨와 결혼하고 싶어요. 봄에 아버지 탈상을 하고 어머니께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시지만 내 마음은 달라요. 영미씨를 사랑하기에 어머니 뜻을 따를 수 없다고 거절을 했어요. 결혼만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어머니께 설득을 하는 중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영미씨를 행복하게 해주고 집안 어른들과 동생들도 책임지겠습니다. 나만 믿고 기다려 줘요. 영미씨 약속해줘요.”
영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민재씨 고마워요. 제가 무슨 복으로 이렇게 멋진 민재씨의 과분한 사랑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영미는 속으로는 ‘그렇게 할께요. 얼마든지 기다리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예전보다 차분하게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민재가 선물까지 들고 찾아와 말할 수 없이 반가웠지만, 전과 같이 허물없이 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찻집으로 안내를 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미는 여고 친구 진아가 서울 삼촌 집에서 대학을 다니며 방학이면 내려와 사촌언니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한 살 차이인 사촌 언니와 친구처럼 함께 영화도 보고 백화점에 쇼핑 다녔던 이야기. 언니가 마음이 착해 예쁜 옷도 함께 입자고 옷장 개방도 한다는 이야기. 영미는 그 친구가 부러웠지만 현실을 잘 알고있기에, 무엇보다 장사도 재미있기에 편하게 친구를 만날수 있었다.친구 진아는 내려오면 영미의 가게로 찾아와 대학생활의 이모저모를 들려주며 놀다가곤 했었다. 어느 날은 천사같은 사촌언니에게 정해진 신랑감이 있어서 누구와도 데이트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언니가 오빠처럼 따르며 좋아 하다가 지금은 혼자서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가엾다고 했다. 그 오빠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흔히 있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지만 영미는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영미는 친구 진아에게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보았다. 진아 삼촌은, 쓰러지는 회사를 합병으로 구해주었다며 그 회사 사장이 민재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아! 어쩌다 이런 일이, 믿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사실에 영미는 경악을 하고 말았다. 영미는 며칠 동안 정신이 혼란스러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비우고 민재를 잊으려 노력하는 중이지만 갑자기 태산 준령 같은 암초가 놓여졌다는 실망은 무슨 연유일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부모님 뜻에 부응하라고 등 떠밀고 소식조차 끊었건만, 오히려 마음에 상처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친구 진아에게 민재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영미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민재의 행복을 위해 냉정하게 정리를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런 줄도 모르는 민재는 영미를 만나러 왔던 것이었다.
영미는 한 번 더 민재에게 분명한 뜻을 밝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영미는 민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친구로 남아요,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 친구가 되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을 것 같아요.”
순간 민재의 실망하는 모습을 영미는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영미씨도 나를 사랑하고 있잖습니까? 그러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십니까?”
“민재씨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민재씨 만을 바라보며 해바라기하고 있는 영아씨가 있잖아요. 돌아가세요. 부탁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친구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민재는 더 이상 영미를 설득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실의에 차있는 힘빠 진 어깨를 바라보는 영미는, 순간 울컥 했지만 꾹 참고 한마디 더 했다.
“민재씨 내 진심을 받아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해질 수 있어요.”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민재는 떠나올 때와 달리 무거운 마음을 안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막차를 타기위해 역으로 향했다.
영미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가 놓고 간 화선지에 난을 치며 스스로 마음을 갈아 앉히기 시작했다. 틈이 날 때마다 묵향에 취해 어느 때는 민재가 선물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기도 했다. 영미는 그렇게 난을 치며 정서적 안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김상화

2018-08-20 18:11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민재와 영미의 사랑이 아름답게 펼쳐지네요
민재는 영미를 사랑하는데 영미는 친구 언니가 민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여기서 얄밉게도 헤어지자 하는 군요
이런 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사랑은 너무도 향기롭고 달아서 때론 쓰기도 한가 봅니다. ㅎ
아름다운 글 다음 호가 기대됩니다


김경렬	김상화 작가님! 작가님 덕분에 20년전의 즐거운 추억에 잠겼습니다. 6회로 마지막 단원을 내릴까 합니다. 늘 잊지않고 찾아주시고 함께해 주져서 감사합니다.	8/25 14:37

백낙은

2018-08-23 10:03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이제사 제목이 왜 화선지일까 하는 의문에 풀렸습니다.
하이얀 화선지에 묵향 가득한 먹물로 난을 치는 모습이 아름답게 연상됩니다.
작품이 다 완성된 후에 연달아 읽어야 진짜 감동이 다가 올 것 같아서
완결판이 속히 나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렬	네. 위원장님! 끝자락이 가까워졌습니다. 늘 함께해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포항도 태풍 피해가 컸을텐데 어떠신지 궁금 합니다. 감사합니다.	8/25 14:39

정찬열

2018-08-26 17:30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존경하는 김경렬 작가님!
그동안 제가 서재방문이 뜸 했습니다.

제5화 "화선지" 안 쓰럽기 까지 하는 감동에글
다음 호가 기다려 집니다.

머더위도 한발짝 물러선 8월의 끝자락에
늘 편안하시길 손 모읍니다.^*^


김경렬	자녀들의 사랑어린 효도선물! 유럽 여행을 다녀 오셨구려! 부럽습니다.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글까지 올리셨네요. 감사합니다.	8/26 20:24

김종덕

2018-09-10 17:56

김경렬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그래서 작가를 하는 모양입니다. 가보지 못한 삶을 , 희망을, 추억을 이렇게 뜻대로 그릴 수 있고 그 마은을 그대로 실현시틸 수 있는 어마무시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작가가되는 이유인것 같기도합니다. 어쩌면 삶을 보상 받을 수 있는 좋은 길이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정말 위대 하십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경렬	김종덕 작가님! 작가님의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매진하여 좀더 나은 글을 쓰기에 노력해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10 21:17

화선지 ( 6 )

화선지 (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