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9-04-06 11:00

ㆍIP: 116.xxx.199

외 사랑
외 사랑
김경렬

봄이 오면 고향 집 골목은 흐드러진 살구꽃이 가득 피어났다. 집집마다 살구 나무, 우리 집엔 울타리처럼 커다란 살구나무가 네 그루나 앞뒤로 있었다. 여름이면 누렇게 잘익은 살구를 따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밤이되면 동네 개구쟁이들이 살금살금 살구를 털어가도 엄마는 가만 두라고 하셨다.
큰 살구나무가 대문 옆에 서 있던 옆집은 약국을 하는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가 살림을 하시며 손자를 돌보셨다. 그 집에 사는 효순이는 항상 할머니 손을 잡고 산책도 다니고 시장도 다녔다.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친구 효순이가 몹시 부러웠다. 할아버지가 사준 사탕을 볼이 볼록하도록 물고 다니며 자랑하는 친구도 있었다. 역시 부러웠다. 소녀는, 고모 집에만 살고 있는 할머니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버지 일곱 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더더욱 얼굴을 몰랐다. 매몰차게 몰라라하는 할머니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더 그립고 보고 싶었다.
방학 때면, 작은댁으로 두 분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성격이 사뭇 다른 깐깐한 둘째할아버지 댁에는 인사만 드리고, 어질고 인자하신 셋째 할아버지 댁에서만 지내다 왔다. 할아버지 방에는 항상 멍석이나 자리를 짜는 틀이 있었다. 손질된 볏짚을 가지런히 얹으시면, 할아버지 손은 금새 마술사가 되었다. 여러 개의 무거운 찌를 앞뒤로 번갈아 감아 넘겨주면, 말끔하고 예쁜 자리가 만들어졌다. 자리틀 옆에서 자리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재미있었다. 할아버지는 뚫어지게 바라보는 손녀에게 자리를 짜는 방법을 자상하게 설명해주셨다. 손이 아프도록 찌를 꼭꼭 잡아당겼더니, 정말 자리모양이 만들어졌다. 신기하고 신기했다. 할아버지는 손끝이 야물다고 칭찬해 주셨다. 셋째 할아버지는 늘 웃음 띤 얼굴로, 철없는 손녀를 귀히 여기시며 살갑게 대해 주셨다. 반면, 둘째 할아버지는 매서운 눈매의 까칠한 어투가 두려워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언제나 길다란 장죽을 들고 다니셨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죽을 무기삼아 휘드르시곤하여 더 무서웠다. 셋째 할아버지를 많이 좋아했던 소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셋째 할아버지 같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셋째 할아버지가 마냥 좋았다. 어린 마음에도 방학이면 셋째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조부모의 사랑에 목말랐던 소녀는, 가정을 이루고 어린남매를 키우던 30대에 지병으로 부모님마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 그 후로는, 살아계신 시부모를 비롯하여 노인들이 유별나게 이뻐 보였다. 목욕탕에 혼자오신 노인을 보면 등도 밀어드리고 냉커피도 나누워 마셨다. 칠년 동안 이웃사촌이었던 노부부가 계셨다. 전을 부치거나 특별한 요리를 할때는 항상 나누워 드리며 말동무도 해드렸다. 어느 날, 청소 하기도 힘들다며 집을 줄여 안양으로 이사를 가시게 되었다. 박정희대통령 휘호가 새겨진 키 작은 병풍을 선물로 주고 가셨다. 전달하시던 할머니는 “대그룹의 이사였던 맛사위가 탐을 내도 모른 체 하던 영감이, 애기엄마를 귀히 여겨 기쁘게 선물 한 것” 이라 했다. 담아두었던 솔방울 술을 한 병 답례로 드렸다. 아끼시던 군자란도 분양해 주셨는데, 벌써 30년이 되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별이 되셨지만, 해마다 이른 봄이면, 우리 부부를 기쁘게 해주는 군자란의 화사한 꽃 속에서 노 부부의 정다운 미소를 본다. 그동안 분양도 여러 집, 곳곳에서 그 어른의 사랑이 피어나 집안을 밝혀주는 기쁨을 안겨 주리라.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눈 깜짝하는 사이 다섯 명의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파뿌리 노년이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이 고팠던 소녀는, 손자들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안겨 주고 싶었다. 이쁜녀석, 귀여운 녀석, 듬직한 녀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는 것 조차 아까운 녀석들이 아닌가.녀석들이 초등학생 때는 여행도 자주 가며 캠핑도 많이 다녔다. 밤골로 캠핑을 갔을 때는.후드득 떨어져 반들거리는 밤알에 칼집을내어 모닥불 속에 구으면 녀석들은 이리저리 찝게로 뒤적이며 깔깔 대곤 했다. 여름이면 숲속 거목에 붙어있는 매미 허물을 찾아다니며 한봉지씩 따와서는, 요리를 해달라고해서 한바탕 웃기도했다. 계곡에 어항을 놓고는 수없이 들여다보느라 옷을 적시고, 어쩌다 잡힌 송사리로 튀김을 해주면 맛나게 먹던 녀석들, 여일 재잘거리던 녀석들은 학원 다니기 바빠 식탁에 모이는시간은 아침뿐이다. 쪽 시간이 나면 핸드폰 하나씩 들고 게임 마니아가 된다. 하여, 살갑게 대화 할 틈조차 없다. 편리한 핸드폰이 대화의 장벽이 될 줄이야. 녀석들 어릴 적의 함께한 추억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청소년이 되면서 주말에도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다. 시간 맞추기 힘들어 외식조차 함께 하기 쉽지 않으니, 짝사랑으로 끝날 것 같은 노년의 외 사랑이다. 노구이지만, 맛난 간식챙겨주며 게임에 취해 학원 차를 놓치면, 태워다 줄수 있으니 다행이다. 오늘따라, 자신의 꿈을 키우려 멀리 카나다로 떠난 살가운 장손녀가 그립다. 화상 통화로 안부를 주고 받는 유일한 낙으로 아침을 연다. 햇살이 눈부시다.

김상화

2019-04-08 07:28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존경하는 김경렬 작가님
이젠 꽃샘추위도 멀리 가고 화사한 봄입니다
제가 살고있는 잠실 석촌호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어제부터 벚꽃 축제하느라 야단법석입니다
작가님
소녀 시절을 자매 있게 그려내셨네요
할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자리 짜는 이야기 등
마치 제가 그 자리서 함께하는 듯했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이 한 주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일등으로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명산 순례로 많은 지식을 전파하십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 잘 돌보시고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4/8 19:36

정찬열

2019-04-10 18:21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
"외사랑" 귀감에 글을 단숨에 읽으니
" 다섯 명의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파뿌리 노년"인
작가님처럼 저역시도 5섯명의 귀여운 손자 소녀
때문에 얼마전에는 강원도를 엇그제 일요일 바쁜시간을
쪼개에 2박 3일 내가 안내인이 되어 거재도를 다녀 왔습니다.
공감에글 잘 배독 했습니다.
고르지 못한 꽃비 내리는 4월에 가내 건안 하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자상한 할아버지시네요.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은 다른 어느 여행보다 즐겁고 행복하지요. 다복함을 보는듯하여 흐믓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감사합니다.	4/11 06:14

김상훈

2019-04-13 16:23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제 손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저의 할아버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글 속의 할아버지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또 할아버지가 된 저 역시 과연 내 손자들에게
저런 사랑을 주고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막내딸이 아이 없이 사는 부부인데
만약 그들까지 낳았다면 지금쯤 최소 7~8명은 되겠네요.
현재 6명의 손자들 가운데 사내 놈이 딱 한 녀석인데
시대적 풍조 때문인지 외사랑 따위도 안 되더군요. ㅎㅎ
(아들 놈한텐 미안하지만)
다 성장하고 결혼까지 했지만 역시 딸들이 좀 더 났습니다.
기를 때도, 결혼을 해서도.....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몸이 불편하시다면서 시간을 내셨네요. 감사합니다. 여기는 곳곳에 눈이 부시도록 벗꽃에 목련이 흐드러졌습니다. 봄의 생기 가득 받으시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4/14 16:19

김종덕

2019-04-23 12:52

김경렬 작가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봄 농사 좀 짓느라 생각했는데 거의 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일은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일년 내내 굶고 살아야하는 처지라 많은 시간을 투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봄을 알리던 많은 꽃들은 자손을 남기려 떠났고 마음엔 허전한 회색 구름만 떠도는 것 같습니다. 다시 들판엔 모내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활기를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작가님, 외손 사랑도 세월이 답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움이란 꼭 그 대상이 지나간 연인아 아니어도 손자, 손녀의 사랑으로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경렬	반갑습니다. 김작가님이 뜸 하시니 서재가 썰렁 합니다. 안녕 하시지요. 방문해 주시니 서재가 그득합니다. 감사합니다.	4/26 06:03

장춘희

2019-05-11 18:52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고향앞에서는
늘 어린시절의 나로 돌아가나봅니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던 선생님의
어린모습이 그려집니다.
아주 어렸을 때도 지금처럼
의젓하셨겠지요?
늘 쉬지않고 정진하는 모습
존경합니다.
건강하십시요.


김경렬	한참동안 집을 비운사이 다녀 가셨구려! 상처! 잘보고 왔슴다. 그제부터 목감가 기운이돌더니 밤새 목이 부어 지금은 말소리가 나오지 않네요 황금 같은 주말을 또 이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5/19 08:36

이길선

2019-05-14 05:35

건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라 했던가요.
이번 주말에 또다시 개최되는 차의 날 기념행사가 국회 의사당 잔디밭에서 열립니다.
제가 환경의 변화로 작가님을 초대하지 못하고 알림장만 기록하는 무례를 범합니다.
왜냐면 그 날의 고마움이 되새김 하듯 잊지 않고 있다고 전합니다.
이사를 하고 한참인데 지금 껏 헤매이다 겨우 마음의 여유를 갖습니다.
차 한잔 함께 나누어도 좋은 김경렬 작가님!
올 해는 한 번쯤 뵐꼭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는 마음입니다.
한 밤 중에 작가님의 작품 속에서 자연의 순리와 외손들의 일상을 공감하며.
외할머니의 슬픈 이야기는 결코 아니기에 미소가득 머물다 갑니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의 여권을 만드는 딸아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세대차를 크게 느끼는 제 일상도 살짝 내려놓고 갑니다.
오직 하나 염원은 아프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랍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김경렬	에고! 이일을 어쩌나! 아침에 들어 와서야 다례의 귀한 모습을 놓친게 속이 상합니다. 전화 한번 주셨다면 달려 갔었을 걸요. 아쉽습니다. 저는 간밤에 목감기로 말을 할수 없을 정도입니다. 행사 잘 치루고 무사히 가셨겠지요? 정말 아쉽습니다. 기다리셨을 마음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미안 합니다. 몸살 나지 않게 푹 쉬시기 바랍니다.	5/19 08:41

박목철

2019-06-09 12:15

김경렬 작가님 간만에 찾아 뵙습니다.
지난 겨울에 몹시 아팠었는데 그 이후로는 미각도 떨어지고
글을 쓰려 하면 마땅한 단어가 빨리 떠 오르지 않아 글쓰기도 시들해
졌답니다. 평생을 놓지 않았던 글쓰기 대신에 막내 손주 보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집안은 단명 한 편이라 저는 친가는 물론 외가 쪽 까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뵌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있는 애들을 무척 부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있었던 탓인지 손주들에게 좋은 할아버지가 되려 노력 합니다.
좋은 글에 많이 느끼고 갑니다. 김경렬 작가님,


김경렬	그러셨군요. 나이들어 한번씩 서리를 맞으면 눈에 띄게 퇴행을 하는것 같습니다. 저도 한번 앓으면 한달여 빌빌 거리며 회복이 더딥니다. 건강 지키시고 아프지 마세요. 건강하시고 늘 편안 하시기 기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바쁜일상이다보니 한참을 들어와 보지 못했습니다.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6/28 05:53

나들이 ( 기행시 )

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