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7-09-19 19:12

ㆍIP: 58.xxx.141

한 통의 편지
한통의 편지
김경렬

글발이 막혀서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책장을 펼치는 습관이 며칠째 계속 되고 있다. 날씨마저 장마로 인해 집안에 습도가 가득하다. 눅눅하고 후덥지근한 불쾌지수가 꼭지 점에 달해, 평소 잘 틀지 않던 에어컨까지 틀어 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영문학 박사인 모 작가의 저서‘내 생애 단 한번’을 펼쳤다. 52세의 아까운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그는 자신에게 녹아든 많은 지식을 저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영양제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었다. 작가의 해박한 지식에 빠져들어 벌써 그의 저서가 세권 째, 책꽂이에 꽂혔다. 필요할 때 마다 언제나 열일 젖히고 책을 사러 나가는 남편, 폭염도 마다않고 서점을 돌며 절판된 책을 찾아내, 안고 들어오는 남편 덕이다. 작가는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체험했던 이야기를, 해박한 지식들을 접목해서 구사하는 독특한 재주가 있다. 어느 날은 제자들에게 가상 연애편지를 영문으로 써내도록 과제를 주었다. 제자들은 교수인 작가에게 연애편지를 쓰거나 받아 본 일이 있는지 물었다. 작가는 이때 잠시 고민을 했다고 했다. 덕분에 문득 세월 속에 묻혀버렸던 몇 통의 편지가 생각났다.
수신인이 뒤바뀐 편지를 받았다. 우연히 지인의 친척인 모 고등학교 교사를 만났었다. 아직 배우자에 관해 생각해 본 일이 없던 때라서 별 호감이 없었다. 노총각이었던 그 교사는 그냥 옆집아저씨 같았다.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나를 만나러 찾아 왔다기에 한 번 만나 차 한 잔을 대접했었다. 그분은 자기 부친에게 편지를 썼고 내게도 편지를 써서 내용물을 뒤바꿔 보내는 실수를 한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차 한 잔 했을 뿐인데 난데없이 편지가 왔으니 의아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내게 날아온 내용은,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는 맏아들 혼사는 성사될 것 같으니 안심 하라는 내용 이었다. 그 당사자가 나였다는 것도 모르고 지인이 알려준 주소로 그 편지를 봉해 우체통에 넣었다. 일주일후 어떤 신사분이 은밀히 나를 찾으며, 옆 사무실에서 유리창으로 관찰을 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교사의 부친이었다. 즉시 그에게 반박하는 글을 써서 ‘착각을 하신 것 같다’ 더는 만날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그 후 지인을 통해 사과를 해오고 만나길 원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 후 삼년이 지나자 차츰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눈에 차지 않았다.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 중앙부서로 올라가면서 편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좋고 착하다는 것 외엔 이 사람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 시큰둥했다. 성격이 급한 그는 장가들라는 부모님 성화에 마음에 둔 처자가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얘기를 해버렸다. 그의 어머니가 우리 집에 득달같이 선을 보겠다고 찾아 오셨다. 무망 결에 당한 황당함으로 어안이 벙벙했다.‘누구 앞날을 망치려하냐’며 거세게 화를 내는 편지를 보냈다. 당장 내려와 사과를 할 줄 알았는데 답장조차 없이 잠잠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는 모친이 직접 찾아 가실 줄 몰랐다면서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화를 풀어줄 수 있을까 많이 고민을 했다고 썼다. 뒤미처 한통의 편지가 또 날아들었다.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이 아니라면 영원히 내 마음의 창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요.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살 이유도 없습니다.”
이 한마디에 가슴이 후당당 거리고 미지근했던 순박한 아가씨의 마음을 휘어잡아 지금껏 옆을 지켜주는 필연이 되었다.
직장 생활을 은퇴한 후 모 대학 병원에 봉사를 다녔다. 상담사로 일했던 경력이 있어 말기암환자 상담을 하게 되었다. 암 판정이 나오면 환자나 가족들은 대다수 충격을 받으며 비탄에 잠겨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수녀님이 특별상담이 필요한 환자라며 일인실의 명단을 건네주셨다. 잔뜩 궁금한 마음으로 병실을 노크했다. 넓은 병실은 냉기류 가 감돌아 긴장을 했다. 50대의 환자는 부인과 함께 있었다. 간암 말기였으나 혈색이 좋았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무슨 이유 인지 아내마저 쌀쌀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첫 방문 때는 흔히 있는 일이거니 했는데 인사를 해도, 상태를 물어봐도 반응이 없었다. 머쓱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간단히 내 소개를 했으나 말없이 잠깐 쳐다보기만 했을 뿐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이었다. 다음 방문을 기약하고 치료 잘 받으시란 인사를 하고 나왔다.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신문을 보다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얼굴에 신문을 푹 덮고 무언으로 거부했다. 한술 더 떠 부인은 입에 손가락을 대고 그냥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돌아오는 기분은 소태를 씹은 기분이었지만,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날 밤은 잠도 오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은 고마워하고 반기는데, 유독 이 환자에게 이런 수모를 당해야하나 한편 슬그머니 화도 났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새벽에 한통의 편지를 썼다. (본문 중 후미)~ 지금은 새벽 세시입니다. 세 번째 방문 이었지만 네 번 다섯 번 끊임없이 방문할 것이며 짝사랑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단순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봉해 속달 우편으로 보냈다.
병실에서 의외의 편지를 받은 부부는 누구인지 궁금했다. 방문하는 봉사자마다 물어 보았다. 그저 한 번씩 스쳐가나 보다 했는데 이렇게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밤새워 손 편지를 써 주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덕분에 만나면 반가운사이로 반전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씩 봉사 오는 날을 기다려주었고 만남이 헛되지 않아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게 되었다. 임종 준비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였다. 다른 환자들은 어떻게 준비 했는지도 자세히 물었다. 6개월 동안 삼십여 차례 만남을 마감하며 환자는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에 들었다.
사별가족 모임에 참석한 고인의 아내는, 나를 보자 달려 나와, 와락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미망인은 가장 힘들고 답답했을 때 편안하게 이끌어준 은인 이었다면서, 남편은 자기가 떠나고 없더라도 찾아가 감사인사를 드리고 식사대접을 하라고 했단다.
암 선고를 받은 충격으로 주치의 외엔 심지어 간호사에게도 말을 섞지 않았던 다루기 힘든 환자였다. 이런 경우 보호자는 환자마음을 헤아리며 함께 노력하는데 보호자인 아내마저 입을 닫고 있으므로 수녀님도 손을 들었던 것이었다. 그 환자 부부는 뜻밖의 속달편지 한 통에 감화 되어 비로소 얼어붙은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렸던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게 되었고 봉사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었다. 행사이후 이후 미망인과 몇 번의 안부전화가 오갔으며 사별가족 모임에 사례발표도 흔쾌히 해주었다. 대다수 사별가족들은 가슴 아픈 기억들을 펼쳐내야 하는 어려움으로 사양을 하거나 거절을 하곤 했었다. 그러므로 신경을 써서 조심스럽게 부탁을 해야 했다. 그날은 미망인의 사례를 들으며, 새삼 보람을 안겨주었던 잊을 수 없는 귀한 만남이었음을 실감 하였다.
마음을 전하는 한 통의 편지, 그 위력은 일생의 삶을 가름하기도 하였으며, 죽음의 세계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변화를 낳았다.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웅크린 마음도 부드러워지는 변화의 꽃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꽃들이 사방에 피어난다면 서로 웃으며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겠는가. 용광로 같이 뜨거운 무더위도 고개를 꺾고 조석으로 서늘한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오늘은 열정적인 청혼의 편지를 보내주었던 옆지기에게 한통의 편지를 써야겠다.

김종덕

2017-09-19 19:50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불편없이 귀가 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한통의 편지로 사람의 마음을 푸셨다는 실제의 이야기는 가슴 따스히 다가옵니다. 그래서 사람을 글을 써야 하나봅니다. 원래 저는 말을 잘 하지 못하여,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들곤 햇읍니다. 꼭 말로써 되지 않을 경우에는 글을 써서 전달하기도 했읍니다. 지금도 주제없이 토론하거나 서로 말ㄹ을 해야 할 경우에는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가르치는 일이야 주제가 정해져있고 끌고 나가면되는데, 사람과 같이 평소의 대화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어려움이 있음니다. 머리가 안동라가서 지어내지도못하고 했던것, 경험에 익었던것, 지금하고 잇는 것 외는 참으로 대화하기 어려움을 겪고 있읍니다. 오늘 작가님의 글을 읽고 그래 꼭 사람을 입으로 이해 시킬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읍니다. 이렇게 글로서도 충분히 의사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도 생각합니다. 진실은 최고위 수단이라는 것으로민 말하고 있읍니다. 그렇게, 그렇게 글을 쓰게 되었나봅니다.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잇다는 그 자체가 감사하고 스스로도 지켜가려합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김경렬	김종덕 작가님 옳은 말씀입니다. 직접 대면하기 어려울때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글이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공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9/20 00:17

백낙은

2017-09-19 20:43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한통의 편지가 길기도 하구나 했는데 세번이나 올라 왔군요.
그래서 또 보고 또 읽었습니다.
전에도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작가님은 훌륭한 상담자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에 이 한통의 편지에서 더욱 그 생각이 굳어 졌습니다.
요즘은 편지를 잘 쓰지 않는 시대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고 보니 자주 편지를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 관계는 무엇보다 관심과 사랑인 것 같습니다.
한통의 편지를 통해서 인생살이의 한수를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경렬	치하의 말씀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하라시는 당근이라 생각합니다. 위염은 시간이 좀 걸린다하오니 식생활에 신경을 쓰셔야할 것 같습니다.요즘엔 질 좋은 약이 잘 나오는 시대이기에 옛날과 다르리라 사료됩니다마는 치료 하시는김에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쾌차하시길 두손 모읍니다. 감사합니다.	9/20 00:24

김종근

2017-09-20 08:41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반갑습니다.
한 통의 편지 감동있게 배독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치면
눈과 귀를 닫고 자기 방어적인 세계에 갖히게 됩니다.
현덕의 삼고초려하는 마음을 보았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오늘도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감사합니다.


김경렬	감사합니다. 편지 한통의 반전이었지요. 안녕 하시지요. 김작가님! 가을 걷이로 바빠 지시겠습니다. 건강도 살피시며 수고 하시기 바랍니다.	9/22 13:54

이석희

2017-09-21 19:52

김경렬 작가님~~~
뵙게 되어 행복합니다. 저는 작가님의 글을 배독하면서 귀한 보석 한 점을 획득한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림을 바라봅니다. 저는 본래 '글짓기'로 알았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시간표에 '작문' 또는 '글짓기' 이런 문구가 있지 않아요. 교직을 마칠 때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답니다. 부끄럽게도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마치 섬광이 번쩍! 하는 것처럼 머리를 스치는 거예요.
'그래, 맞다! 글짓기가 아니야. 글쓰기지 이 바보야!' 그래서 그 순간부터 내가 경험하였던 사실들을 그냥 써 내려갔어요. 고모네 집에가서 있었던 사촌들과의 이야기 아침에 문을 연 닭장 속에서 나온 많은 닭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자유, 그 처절한 날갯짓'을 비롯한 이야기들을 들고 외람되게도 대한문인협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지금도 제 글은 솜씨가 모자라고 다듬어지지 않아 단순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글을 읽고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많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안녕 하셔요 이석희 작가님! 작가님의 글을 배독하면서 역시 선생님이시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감기 조심하사기 바랍니다.	9/22 14:03

정찬열

2017-09-21 21:56

김경렬작가님! 행사때 옆자리를 지켜주시고
무사히 잘가셨느냐고 전화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작가님의 천사같으신 마음은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로 느꼈습니다.
저와 깊은 인연도 없고 그냥 대한 문인 협의회에서 무명시인으로
인사만 몇번 행사때 그리고 서재에서 했을 뿐인데 5년동안 전기화상으로
고통끝에 절단해야하는 제가 입원중인 서울에 한강성심 병원에 자세한 입원 소식도
드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직감의 판단을 하시고 문안을 와주신 천사이셨습니다.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만 했을뿐 저는 거기에 비해 백분의 일이라도 그정을
갚지를 못하고있어서 이글을 읽는 동안 내내 깊은 감명으로 배독했습니다.
진정 작가님은 글쟁이의 글이 아닌 참신한 사랑의 천사이옵기 어려운 병환에도
아드님이 건강을 되찾은 아름다운 마음의 보답이였다고 생각해 봅니다.
"한통의 편지" 많은 것을 일깨우고 글쓰기란 이런것라 라며 자충하면서
항상 편안 하시고 가정에도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김경렬	작가님! 소례를 대례로 받으시는 작가님의 훌륭하신 마음 늘 본받고 싶습니다. 집필해 주신 수필집 잘 읽고 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을 승화하신 귀한 작품이기에더욱 소중한것 같습니다. 감기 조심 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9/22 14:08

박목철

2017-09-26 09:26

사람은 만나면 이별이 반드시 따르게 되지만,
영원한 사별과 마주치면 받아드리기가 정말 어렵겠지요,
제가 모시던 분이 그러시더군요,
공동묘지 근처에 비석을 다듬는 분이 계신데 얘기 해보니
배운게 없지만 상당히 생을 터득한 경지에 있더라고,
아마 주검을 많이 대하다 보니, 하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가는 분을 돌보시는 일을 오래 하셨으니 작가님께서도
생사의 경계를 오고 가시는 경지에 가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ㅎㅎ
좋은 글 많이 느끼고 갑니다. 오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감사합니다. 늘 용기를 주시는 덕담으로 힘을 냅니다. 즐거운 추석 명절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10/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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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의자(기적 종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