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15 08:12

ㆍIP: 121.xxx.10

슈킹 (77회)

동수가 소파 모서리에 걸터앉았다가 벌떡 일어나며 이건 SF영화감이라며

박수를 치다 노크 소리에 멈추었다.

오늘 오전에 상담 약속한 손님이 왔다. 한 중년의 남자 뒤를 따라 비슷한

또래의 사내가 보였다. 나란히 소파에 앉은 사람은 같은 일행이었다. 먼저

들어온 남자는 서글서글한 인상이었으나 뒤이은 사내는 조금 험상궂었다.

"어제 전화 드린 조석규입니다. 이 옆의 친구는 앞으로 저와 함께 일할

사람입니다.

"김두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내가 인상과 다르게 현우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목례를 했다. 마치

현우는 면접관이 되어 두 사람을 심사 보는 분위기였다.

그의 포개진 손가락에 십자가 모양의 파란 문신이 선명하게 보였다. 현우는

문신을 보면서 이 사내의 몸에는 용이나 호랑이가 새겨져 꿈틀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괜한 상상을 해 보았다.

"어제 대출금액이 3천만 원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만약 저 혼자로 안

되거나 부족하면 이 친구도 대출을 받았으면 해서 함께 왔습니다."

조석규가 곁에 있는 사내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띠었으나

강인한 인상으로 웃는 모습이 어색했다.

그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대출방법 등을 설명하였다. 두 사람은 현우가

말하는 동안 거의 질문도 않은 채 약속이라도 한 듯 '예'라는 대답만 연신 했다.

그들에게 거리가 먼 B은행의 통장도 필요하다고 하자 두 사람은 얼른 갖다

오겠다며 씩씩하게 일어섰다.

그들이 나간 후 세 사람은 월요일 고려와 대양과 서울금융에 보낼 서류에 다른

글씨로 보이기 위해 익숙지 않은 글씨체로 쓰느라 무척 고생을 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그는 전화 상담을 하면서 약속을 대부분 월요일로 미루어 오후부터는

한가했다.

현우가 신문을 뒤적이고 있을 때 B은행까지 갔던 두 사내가 들어왔다.

"이 친구의 통장까지 만드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이 친구하고 이야기는 다

되었으니 저 혼자 부족하면 함께 대출을 받게 해 주십시요."

"대출 받아서 어디에 쓰시게요?"

졸리는 듯한 표정을 하고 동수가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느릿한 어조로 물었다.

한 사내의 손에 문신이 있어 아마 도박자금 등의 용도가 아닌가 하는 호기심과

자기 기준에서 물어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동수의 물음에 당황하여 쭈삣쭈삣하더니 조석규라는 사내가 나즈막이

말문을 열였다.

"우리는 얼마 전 교도소에서 8.15특사 가석방으로 나온 전과자입니다. 저는

10여 년을 그곳에서 보냈고 이 친구도 거의 비슷한 시간을 저와 함께 보내고

나왔습니다."

어두웠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창피했던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옆의 친구에게도 권했다.

"저는 인테리어 사업을 했었는데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습니다. 돈을 받지

못한 인부들이 집으로 몰려와 행패를 부렸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저는 그 와중에 씻지 못할 죄를 짓고 징역12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처음 교도소에 갔을 때 몇 번 자살까지 시도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도움인지 두어 번 실패했다가 기독교를 접하여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저를 기다리고 있는 딸들 생각에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손가락 사이에 타들어 가는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끈 그의 눈가엔 어느새 보이지

않을 만큼의 작은 이슬이 맺혔다.

그런 후 자기는 성실하게 재소 생활을 해서 교도소 측은 6명이 함께 쓰는 방에서

컴퓨터까지 놓아 주었고 밤잠을 줄여 가며 기계와 건축 설계 공부에 매달려

11개의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그 결과 모범수로 인정받아 형기를 1년 6개월의

가석방 혜택을 받았고 10년간 한솥밥을 먹은 이 친구와 같은 날 출소했다고 한다.

나온 후 돈 한 푼 없이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하여 출소 전 교도소 취업전담반에서

소개 받은 일자리센터를 찾아갔다고 했다. 센터에서 그들에게 창업교육을 권해

받았고 교도측에 연락해 그의 성실한 재소생활과 자격증 취득사실 등을 확인한 센터

측에서 인테리어 사무실을 준비하고 사업자등록이 있으면 센터에 가입한 기업의

일감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출을 받아 사무실과 설계에 필요한 기계와 컴퓨터 등 최소 꼭 필요한 기본

장비 등을 갖추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센터에서 오는 일거리로 운영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생이 되더라도 경비를 아끼기 위해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가며 생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뛰다 보면 희망이 곧 생길 거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사내는 앞으로 사무실에서 일할 생각을 하면 암울하고 험난한 먼 길을 돌아 긴 꿈에서

깬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자기를 일으켜 세운 가장 큰 힘은 그새 훌쩍 커버린 큰딸과

중학생인 막내딸의 응원이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결혼한 큰딸에게 동생을 맡겨

놓았지만 곧 함께 살자고 손가락을 굳게 걸었다고 했다.

"한 번은 막내가 '사실 나는 아빠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제는 존경할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딸을 만나는

주말이 기다려지고 힘내라는 전화 한 통에 용기가 솟습니다."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경기가 어렵다지만 하겠다는 열정과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친구와 주말마다 자기들이 가진 기술을 이용하여 집고치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덧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숙자 출신 아저씨는 재생자전거를 아동시설이나 저소득층 자녀, 노인들에게 주는

재활용활동을 하고 있고 지금 조한규 씨는 집고치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남들이 볼 때 가장 어렵고 힘든 환경에 처한 자신들이 오히려 낮은 이웃을 도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고 고통 받았던 경험자들만이 느끼는 동병상련인가? 현우는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꼭 찍어 무엇이라 표현알 수 없어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윤혜석 2013-11-15 11:12	이인철작가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시지요^^ 그간 많은 분량이 올라왔네요. 이야기 진행도 많이 되었구요. 밀린 숙제하듯이... ㅎㅎ 쭈~욱 읽어올라왔습니다. 세사람의 인물파악이 이제 어느 정도 되네요. 복잡한 이야기전개에서 현우의 활약 기대됩니다. 작가님, 건필하세요~

이인철 2013-11-16 09:19	《Re》윤혜석 님 , 윤 작가님! 바쁜신 중에서도 이렇게 귀한 발자국을 남겨주신 마음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현우의 독자적인 사건 전개가 펼쳐질 듯 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윤 작가님께서도 멋진 글 많이 탄생하시길 기대합니다,^^

슈킹 (78회)

슈킹 (7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