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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02 19:50
ㆍIP: 121.xxx.231
슈킹 (65회)

         
              - 첫 암호를 풀다-

 
 12월 13일 (목)

 오전 10시를 조금 지나 3군데서 퀵이 동시에 들이닥쳐 서류봉투를 갖고

오는 바람에 사무실 안이 소란스러웠다. 마지막 퀵이 나가자 어제 오기로

했다가 오늘로 연기한 손님이 왔다. 그는 중년의 남자로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의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다한조명 대표'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는 자기 회사 상호와 똑같아 왠지 친밀감이 느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찾아왔다고 했다. 현우가 필요한 대출 금액을 묻자 그는 3천만

원이라고 말하면서 이번에 대출만 된다면 자기는 분명히 일어설 수 있고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또 말하였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용기에 현우가 무의적으로 물었다.

 "어디에 쓰시려고 대출을 받으시는 거지요?"

 "저는 몇 년 전에 조명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배운 기술이라 지금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허름한 공장에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그는 갖고 온 작은 가방에서 몇 장의 사진을 선우에게 보여

주었다. 그 사진에는 여러 가지 낙엽 모양 장식 안에 알록달록한 조명들이

박혀서 화려한 불빛을 뽐내고 있었다. 조명에 문외한인 그의 눈에도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왔다. 그의 탄성어린 소리에 두 사람도 와서 보고는 감탄하고

놀라워했다.

 "지금 보신 것들이 낙엽 무늬 조명인데 특허청에 실용신안등록까지 받은

것입니다. 시장 반응은 좋은 편인데 기계 설비를 갖추지 못해 저의 두 형제가

온종일 손으로 만들어 봐야 10개 남짓입니다. 기계만 구입하면 하루 7~80개는

너끈한데 그걸 마련할 수 없어 은행 4, 5곳을 찾았지만 신용불량자라 모두

거절을 당했습니다. 담보 잡힐 재산도 없고 그렇다고 똑같이 힘든 형편의 주변

사람들에게 보증을 서 달라기도 어려운 처지입니다. 3천만 원만 대출 받을 수

있다면 2천만 원짜리 철사를 구부릴 수 있는 기계와 천만 원짜리 땜질 기계를

주문 제작할 수 있거든요. 실장님, 제가 신용불량자인데 가능할까요?"

 "저희는 설명 드린 바와 같이 본인 앞으로 실적을 쌓아 대출이 나가므로 전에

신용불량된 은행만 제외하고는 상관없습니다."

 거짓말도 하면 늘 듯이 몇 번의 상담 경험으로 그의 대답은 자연스러웠다.

현우의 말에 힘을 얻은 그는 은행에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고려와 대양금융으로 보낸 서류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였다. 동인이

고려금융의 봉투를 뜯더니 안에 있는 통장의 겉면 한 장을 넘겼다.

 펼쳐진 통장에는 H1432620과 1212가 적혀 있었다. 마찬가지로 대양의

통장도 겉면 다음 장에 0612라는 숫자가 연필로 선명하게 써 있었다. 동인이

잽싸게 벽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의 빈 공간에 고려 C423065-H1432620,

1211-1212와 대양 0611-0612라고 썼다.

 "형들, 지금 쓴 아이디와 비번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뭐라고 짐작해요?

우리가 그저께 고려로 보낸 아이디가 ZAC1234인데 C423065로 어제 보낸

아이디 ABC3672가 H1432620으로 바뀌어서 내려왔어요. 비번도 6421에서

1211로, 1716은 1212로 변경되었지요. 우리가 적어 보낸 아이디와 비번은

제가 임의로 적은 거니까 신경 쓸 것 없고 바뀌어서 내려온 이 2개의 아이디와

비번의 의미를 푸는 것이 숙제예요.

 아직까지 작업용으로 2개밖에 안 보내서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앞으로 어떤

아이디와 비번이 내려올 거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야 작업을 할 수 있는

거지요. 알아낸 그 아이디와 비번을 디데이 때 넣어야 하니까요.

 고려에서도 아이디와 비번을 변경할 때 분명히 무슨 규칙에 의해서 만들었을

거예요. 아이디는 몇 번 틀려도 괜찮은데 확실한 안전장치를 하려고 바꾼

것일 테고, 문제는 비번이 3번 오류나면 출금을 못하고 잔고의뢰인인 본인이

직접 은행에 가야 되지요. 그렇게 되면 그들의 잔고 돈도 묶일 뿐더러 만약

손님이 안 가거나 미적미적되면 잔고증명이 불법이라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는

거지요. 그러므로 아이디와 비번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써서 만들었을

거예요.

 매번 새로운 것으로 그 많은 아이디와 비번을 무작정 만들다가는 자기네도

헷갈릴 수 있고 아마 그런 경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어떤 근거와 규칙에

의해 아이디와 비번을 만들었을 텐데 이걸 알아내는 게 우리의 최대 관건이며

난제지요."

 "아직 고려에 2번밖에 안 보냈으니까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오는 것 보고

그때 다시 생각하는게 어때?"

 동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어렵고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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