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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07 13:24
ㆍIP: 121.xxx.34
슈킹 (70회)

 "현수야, 오늘 3시에 방문하기로 한 손님이 내일 오후에 온다고 연락 왔어."

현우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동수가 게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스피커 사건 이후로 소리를 거의 죽여 그가 게임하는

것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연기한 손님의 미팅시간을 일일 캘린더 메모지의 내일 날짜에 다시

옮겨 적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지금까지 적은 메모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봤다.

 거기에는 희망대출금액, 주소, 나이, 은행 등 여러 가지가 휘갈겨 쓰여 있었지만

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 이 세 가지만은 공통적으로 어느 상담 손님에게나

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상담 마지막에 예상 대출금액을 알기 위해

은행에 조회해야 한다며 이름과 주민번호를 물어보고 그 결과를 연락하려고

전화번호를 물어 보기 때문이다.

 아이디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영어와 숫자 두가지다. 그 영어와 숫자로 손님마다

구별하고 특정 지으려면 우리가 접수하는 서류에서 즉 각 손님의 인적사항의

정보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 아이디를 잊어버릴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손님의 서류에서 고유성이 있고 바뀌지 않는 것은 이름과 주민번호와

전화번호이다. 그 중 숫자로 된 것은 주민번호와 전화번호이고 영어는 이름의

성에서 변형했을 가능성이 많다. 흔히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가. 김씨를 K,

이를 L로, 박을 P로 표시하듯이... 이 셋을 조합으로 해서 만들어야 편하고 나중에

기억이 안 나더라고 쉽게 찾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우는 동수의 책꽃이에 꽂힌 서류철에서 11일과 12일에

고려금융으로 접수된 카센터 사장과 트럭아저씨의 서류를 뺐다. 이 서류들은

잔고업체에서 보내준 열 장에 가까운 서류양식이다. 원본을 업체에 보내기 전에

한 부씩 복사하여 철해서 보관하라고 동인이 동수에게 지시한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동인이 혹시 잔고업체에서 불시에 의뢰인의 인적사항

등을 물어볼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거기에는 당연히 두 사람의 이름과 주민번호와 연락처가 적혀 있다. 물론 연락처는

사무실에 있는 대포폰 번호이며 일부러 휴대폰 번호 하나만 적었다. 다행히

잔고업체서 집과 직장전화번호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두 사람의 이름에 눈이 갔다. 카센터 사장의 이름은 최영성이고

트럭아저씨는 현정복인 것을 본 순간 그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역시 아이디

C423065의 앞 글자인 C는 이름 최영성에서 최의 영어 알파벳 CHOI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마찬가지로 H1432620의 H는 현정복의 현의 HYUN에서 만든 것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윤곽이 좀 잡히는 것 같았다.

 다음은 주민번호와 전화번호에서 숫자 6자리의 비밀을 찾으면 된다.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얼른 주민번호를 확인하였다.

 카센터 사장의 주민번호는 560324-1002431이었다. 423065란 번호를 560324-

1002431에서 찾기란 너무나 간단하여 픽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560324-1002431

에서 앞 자리 6자리 숫자를 뒤에서부터 배열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면

1432620은 트럭아저씨의 주민번호 앞자리 숫자만 알면 되는 것이다.

 트럭아저씨의 주민번호는 521210-1432620이었다. 1432620의 숫자도 카센터 사장의

경우처럼 521210을 뒤에서부터 쓴 012125이어야 하는데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 자체도 아니었다. 1432620은 단지 주민번호 뒷자리 7자리 숫자를

앞에서부터 6번째까지의 번호였다. 두 아이디가 다른 것은 아마도 서류 접수일의

차이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정보요원이 되어 중요 문서의 암호를 해석한 것 같아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허탈했다. 그러면 내일은 P705048이나 P217321의 숫자가 내려올 것이다.

왜냐하면 유학비자 용도로 보낸 박선영의 주민번호가 840507-2173214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동수에게 이 사실을 말하려다

멈추었다. 내일 내려오는 아이디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아직 완전하다고 단정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파악한 것만도 대단하다고 여겼다. 그는 이만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내심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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