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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0-20 15:33
ㆍIP: 222.xxx.162
슈킹 (59회)

 이와 다르게 대양금융은 자기들이 직접 손님의 서류를 갖고 은행 가서

통장을 만들면서 입금시킨다. 손님의 주민증과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

위임장이 있으므로 대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대양에서는 통장 발급용으로

인감증명서 한 통을 더 요구한다.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통장 발급하는

시간을 은행 마감 시간에 가까운 4시 이후에 만든다. 본인이 아니기에 인터넷

뱅킹 신청은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주민증이 없기에 통장분실 신고를 하여

재발급을 받아 인출하려는 이상한 생각을 가져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

동인이 대양에게 아이디는 묻지 않고 비번만 알려 달라고 한 것이다.

 전화를 끊은 동인이 방금 대양에서 온 카센터 사장 서류를 동수에게 주며

이 서류를 다시 고려금융에 보낼 거니까 작성해 놓으라고 했다.

 동수가 대신 상담전화를 받아 오늘 오전에 예약한 손님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남루한 잠바와 낡은 청바지를 입고 까칠한 얼굴이지만 눈빛이 빛나는 중년의

남자였다. 안주머니에서 등본과 인감을 꺼내 전해주는 양 손바닥과 손톱 사이에

낀 검은 기름때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현우에게 대출방법 등을 들은 그는 은행을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형, 저 사람 오면 발급은행이나 다른 은행에 신용불량이 걸려 있는지 물어보고

그러면 서류를 받지 말아요. 작업용으로 쓸 수도 없고 이체통장도 불안하네요.

잔고업체에서 돈을 넣기 전에 입금은행에다 연체내역 조회나 신용정보회사에

의뢰해서 손님의 신용상태를 확인할 거예요. 그래서 그런 내용이 있으면 서류를

돌려보낼 확률이 많아요.

 잔고업체 입장에서 입금은행에 연체 중이면 자기 돈이 묶이고 신용불량인 사람이

비싼 수수료를 주면서 잔고증명 한다는 것도 꺼림직하게 생각할 수 있지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우리도 몰랐다고 하면 넘어가겠지만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와 의뢰인이 짜고 작업한다고 분명히 의심할 거예요.

그러니 연체 중인 은행과 신용불량이 있으면 은행 종류와 금액을 대출자 신상확인서에

적어 나에게 주세요."

 그가 말하는 대출자 신상확인서란 손님이 사무실에 처음 왔을 때 그의 인적 사항과

연락처 등을 적은 서류로 나중에 손님과 연락을 취할 필요가 있을 때를 대비해 동인이

만들라고 해서 현우가 임의로 만든 서류였다.

 동수가 업체에 보낼 서류가 끝났다고 하자 동인이 고려금융에 전화를 걸었다.

 "잔고 1억 5천짜리인데요. 관공서 식품납품 입찰 건이에요. 퀵 오면 바로 보낼게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옆에 있는 수화기를 들더니 방금 한 말과 똑 같이 대양금융에도

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일반 전호가 4대나 있다. 한 대는 사무실을 입주하면서 처음 설치한

것으로 부동산 담보대출과 잔고증명 광고 전화이고 3대는 저번과 같은 방식으로

더 설치한 것이다.

 동인은 고려금융과 대양에 각기 다른 일반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고 그들과 통화할 때는

되도록이면 유선전화를 사용했다. 휴대폰보다는 유선전화가 더욱 신뢰를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이 두 대가 잔고업체로부터 벨이 울린 것은 개통 후 딱 1번씩이었다. 그것은

고려금융과 대양이 그의 사무실이 유령업체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걸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동인의 예상이 적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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