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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03 10:47
ㆍIP: 121.xxx.76
슈킹 (66회)

 "동수 형은 그래서 문제야. 사람이 중요하고 심각할 때는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한 거야. 안 그래? 형은 그게 없단 말이야. 맨날 놀

생각만 하고."

 야단치는 듯한 인상으로 동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맞받아쳤다.

 "야, 너 말이면 다하냐! 내가 언제 놀 생각만 한단 말이야.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네가 시키는 거 내가 안 하는 거 봤어. 네가 작업비

대고 이쪽에서 조금 더 안다고 뽐내지 말아.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나하고

현수 없이 혼자 이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

 갑자기 사무실 안의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졸지에 관망자가 된 현우는

어쩔 줄 몰라 난감했다. 그나마 손님이 없어 다행이었으나 언제 은행 간

손님이 들어올지 몰라 그는 얼른 문을 잠갔다. 이 냉랭한 공기 흐름을

깨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동인이 동수를 째려보며

빈정 어린 말투로 내뱉었다.

 "그래, 형 말 잘했네. 그러면 이제부터 난 빠질테니 현수 형하고 둘이서

잘해 보라고."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과 몇 개의 휴대폰을 가방에 넣은 그가 사무실 문을

꽝 닫고 나갔다. 현우가 그를 붙들러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으나 이미

횡단보도를 건너 그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동인은 사무실 가까운 곳에 절대 자기 차를 주차시키지 않은다. 언젠가

그가 1층의 가구점이나 옆 건물의 편의점 등에 주차된 자기 차를 자주 볼

경우 차 종류와 색깔과 넘버가 읽힐 수도 있다고 했다. 또한 근처 골목에

있는 CCTV에 찍히면 나중에 외부인 차량 조회 시 대포차가 아니므로 자기의

신분이 노출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사무실 건너편에서도 거의 300m나

떨어진 개천을 복개하여 만든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다녔다.

 현우는 며칠 전 인터넷 검색하면서 CCTV에 관해 읽은 기사 내용을 떠올리며

그의 판단에 동감했다.

 동수는 속이 부글거려 가만있을 수가 없었는지 계속 담배만 뿜어 댔다.

 "네가 좀 참지 그랬어."

 그의 안색을 살피며 현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현수야, 내 말 틀렸냐? 자식이 말끝마다 명령적이고 무시한단 말이야. 한번

혼자 하라고 해봐."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그는 씩씩거리며 그동안 쌓인 불만을 현우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동수의 기분으로 보아 어떠한 말로도 진정되거나 그칠

것 같지 않아 그는 조용히 경청만 했다.

 현우는 그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화이트보드에 적힌 C423065-H1432620과

11211-1212 숫자의 의미를 머릿속에 그리며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상담전화가 울려 집중하던 생각이 끊겼다. 손님이 당장 사무실로 방문한다는

것을 그는 지금 기분으로 상담하고 싶지 않아서 내일 오전으로 미루었다.

 하루 한 장씩 넘기는 일일 캘린더 메모지에 방금 전화한 손님의 인적사항을

내일 날짜인 12월 14일자 면에 적으려고 무심코 한 장을 넘기려던 그의 눈에

1212라는 숫자가 띄었다. 그것은 어제 날짜로 작은 활자인 12월과 바로 아래

큰활자가 인쇄된 12일의 숫자였다. 순간 조금 전 보았던 화이트보드 위에

쓰인 1212의 숫자가 겹쳐 지나갔다. 이 숫자를 어디서 본듯한 기억이 났다.

 동수야. 비번인 1211, 1212 숫자의 비밀을 밝혀냈어!"

 어느새 인터넷 포커게임을 두고 있던 동수에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현우는 일일 캘린더 메모지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사실을 알았기에

꽤나 흥분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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