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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13 15:43
ㆍIP: 121.xxx.88
슈킹 (75회)

 첫 번째 퀵서비스가 고려금융의 서류봉투를 주고 돌아서는 동시에 눈이

충혈된 동수가 들어왔다.

 동인이 봉투 속에서 꺼낸 통장을 향해 모두의 눈이 쏠렸다. 급히 펼친

박선영의 통장에는 P412371이 적혀 있었다. 현우가 생각한 아이디

P705048이나 P217321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디 P412371의 비밀을

푸는 것은 너무 간단했다. 그것은 박선영의 주민번호 840507-2173214의

뒷자리 맨 끝자리부터 6자리 숫자까지를 나열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바로 전날 내려온 현정복 씨의 아이디 H1432620이 주민번호

뒷자리를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썼다면 지금 세 번째 내려온 아이디는 그

반대로 만든 것이다.

 "음, 이러면 안 되는데..."

 동인이 가늘게 신음소리를 냈다.

 이 신음소리의 의미를 현우는 안다. 어느새 확률이 50%에서 33%로 줄었다.

그의 고민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5%, 20%, 16.6%...로 점점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시험에서 4지선다형과 5지선다형의 차이도 크지만 여기서의 작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시험은 최대 5개라는 제한된 보기에서 고를 수가 있다.

즉 최하 20%는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고려에서 이런 식으로

아이디를 만든다면 그의 말대로 작업은 불가능한 것이다. 디데이 때 이체작업은

늦어도 은행 영업시작 전에 끝내야 한다. 그 이후로는 입금된 40억을 찾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대양금융에서 온 서류봉투는 동수가 뜯어서 통장을 동인에게 건넸다. 통장의

겉면을 보는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양에서 입금시킨 은행이 또 우리의 예상을 빗나갔어요."

 "어떻게?"

 아직도 술기운이 풀리지 않아 흐리멍텅한 눈으로 동수가 물었다.

 "이번에는 W, K, J은행을 손님이 거래하는 은행으로 적어 보냈지요.

그러면 전처럼 거래 안 하는 S은행으로 입금시킬 줄 알았는데 이것은

거래하는 은행 중 하나인 K은행 통장이잖아요. 처음은 W은행, 두 번째는

J은행, 요번에는 K은행이에요."

 "동인아, 대양에서 은행을 자주 바꾼다는 것은 우리들 의심한 다는 것이

아닌가? 혹시 전에 당한 경험이 있다거나 벌써 우리의 소문을 들은 것은

아닐까?"

 붉은 눈을 비비며 동수가 말했다.

 "그건 형 말이 맞을 수도 있어. 잔고업체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명동에

밀집해 있어 웬만한 정보는 그들도 다 갖고 있을 거야. 그리고 동병상련이라고

서로 정보를 교류할지도 모르지.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이 계통의 업자를 특히

더 조심하라는 것은 불문율이야. 오늘 고려와 대양에 서류 접수해서 월요일에

내려오는 것을 보고 다시 판단해야겠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너무 그렇게

조급할 필요는 없어."

 처음으로 작업용 서류를 보낸 서울금융의 서류봉투가 도착했다. 잔고업체에서

온 서류봉투를 한두 번 받는 것도 아닌데 그 봉투를 뜯을 때는 모두가 늘 긴장했다.

 서울도 대양금용과 마찬가지로 현우 쪽에서 의뢰인의 서류를 보내면 그쪽에서

통장을 만든다. 동인이 서울금융에서 온 서류봉투에 있는 내용물을 책상 위에 급히

쏟아냈다. 통장에는 0248이라는 비번이 적혀 있었다.

 "왜, 그래?"

 그의 표정을 살피며 동수가 불안한 듯 물었다.

 "어, 어, 수표로 입금됐어."

 "뭐라고!"

 휘둥그레진 그들의 눈이 통장으로 집중되었다. 통장에는 어제 날짜로 1억의

자기앞수표가 입금되었다가 오늘 출금되어 잔액 0원이 찍혀 있었다. 세 사람은

얼떨결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서로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며 잠시 동안

멍하니 있었다.

 하나같이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통장에 적힌 아이디와 비번의

비밀을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지금은 할 일이 없다.

 동인도 수표로 입금될 줄은 전혀 예측을 못한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상상조차

못했기에 그만큼 그에게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수표로 입금되었다면 더 이상 작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할 수 없다는 말이 옳다.

 "그래서 통화할 때 손님이 사무실을 방문 안 해도 되고 잔고증명을 무제한으로

받게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동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야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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