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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11 13:40
ㆍIP: 121.xxx.181
슈킹 (73회)

         
            - 사채업자와의 두뇌 싸움 -


 12월 14일 (금)

 현우가 사무실에 도착하니 동인이 먼저 와서 잔고업체들의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동수 형한테 아침에 전화 왔는데요. 아직 술이 덜 깨서 늦을 거라고 형에게

전해 달래요."

 왜 형에게 출근을 못할 정도로 술을 많이 먹였냐는 원망의 뉘앙스가 풍기는

말투였다.

 보통은 그가 출근하면서 동수에게 들러 함께 차를 타고 왔다.

 어제 동수가 말하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인과 한 집에 살았는데 자기가

배당 받은 돈을 경마로 모두 잃는 바람에 그 일로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집을 나와 근처에 방을 얻어 혼자 있다고 했다.

 현우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그가 동인에게 얹혀살았고 그 사건으로 동인이

형을 정신 차리게 하려고 일부러 쫓아낸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형, 고려금융의 아이디와 비번의 비밀을 생각해 봤어요?"

 "응, 내 생각에는 비번의 1211과 1212는 접수 날짜를 말하는 것 같아."

그는 냉큼 입을 열었다.

 "어, 형! 어떻게 알았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현우가 가볍게 대답하자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이었지만 그 자신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아이디 C423065와 H1432620은 어떻게 만든 것 같아요?"

 현우는 그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어제 나름대로 연구하여 알아낸 사실을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동인의 능력을 알고 싶어던 것이다. 어쩌면

평소 잠재된 라이벌 의식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글쎄, 어제부터 생각해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 너는?"

 그는 시침을 뚝 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했다. 동인이 그의 대답에

실망의 빛이 스치는가 싶더니 곧 밝은 얼굴로 바뀌었다.

 "나도 어제 거의 자정이 되어서 풀었어요. 아이디 영어 알파벳과 숫자는

우리가 접수하는 손님의 이름과 주민번호에서 만든 것이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요. 보세요."

 그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더니 C423065 옆에 최영성 560324-1002431,

마찬가지로 H1432620 옆에 현정복 521212-1432620이라고 썼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앞에 영문자는 접수한 손님 이름의 성을 영어 대문자로 표시한 것으로

우리가 언제든지 쉽게 알 수 있지요. 문제는 최영성 씨의 아이디를 만들 때

주민번호 앞자리 6자리 숫자를 그냥 순서대로 쓰면 편할텐데 왜 굳이

뒤에서부터 썼냐는 거예요. 그리고 현정복 씨의 아이디도 최영성 씨처럼

앞의 주민번호를 쓰지 않고 뒷자리에서 시작했냐는 거지요. 결국 처음

아이디와 두 번째 아이디 사이에 규칙성이 영어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아이디 6자리 숫자를 주민번호 13자리를 이용하여 불규칙적으로

만든다면 그 변화가 무궁무진하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처음에는 앞자리 주민번호로 아이디를 만들고 두 번째는 다시

그 번호를 뒤에서부터 쓰고, 다음은 뒷자리를 앞에서부터 만들고 그 다음은

또 반대로 쓸 수도 있겠지요. 최악은 앞에서 3자리 숫자를 쓰고 뒤에서 3자리

숫자를 갖고 와 붙인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이런 식이면 디데이 때

그쪽에서 어떤 방법으로 만든 아이디를 쓸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전화번호의 숫자까지 이용한다면 그야말로...

 그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끝을 흘렸다. 그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있던 현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난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네가 전에 말했듯이 분명히 어떤 규칙성이

있을 거라 봐. 왜냐하면 그런 방식으로 아이디를 계속 만든다면 최소한 수십

개가 넘을 거야.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들도 헷갈릴 것을 계산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대여섯 개로 만들어 어떤 규칙성에 근거해 돌릴 거라 봐.

그쪽도 기억이 안나거나 잊어버렸을 경우를 대비해 비번을 날짜에 맞추듯이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동인의 예리한 관찰과 추리력에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다만 그가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아이디의 비밀을 풀었다는 말에 자기는 십여 분

남짓 걸린 것이 위안 아닌 위안이 되었다.

 "그러면 조금 있다가 오늘 오는 것을 봐서 다시 회의 하기로 하지요."

 그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0511, 0512 숫자 옆에 0513을 썼다.

 "형, 0511, 0512는 대양금융에서 내려온 비번인데 이제 형도 감이 잡히지요.

05의 의미만 알면 되니까요."

 당연히 현우가 알고 있으리라는 말투였다.

 잠깐 뜸을 들인 그가 대답했다.

 "올해 2005년을 뜻하는 것 같은데?"

 "맞아요. 변하지 않는 고유의 숫자지요. 만약 오늘 고려에서 1213이, 대양에서

0513이 내려온다면 고려와 대양의 비번은 완전히 해결됐다고 단정 지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런데 대양의 입금은행을 확정짓기가 쉽지 않아요."

 그의 표정이 짧은 한숨과 함께 다시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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