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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2-03 15:35
ㆍIP: 124.xxx.149
슈킹 (94회)

 "동인아, 오늘 고려로 사무실에서 하나, 개인손님으로 하나 해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내면 안 될까?'

 현우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형, 가능하겠어?"

 "장담은 못하지만 왠지 내일 내려오는 아이디를 보면 고려에서 암호를

만드는 규칙성을 발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럼 그렇게 하지요."

 그동안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그건 안 돼요'하고 단호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순순히 대답하는 바람에 오히려 현우가 의아해했다.

 사실 그가 한번만 더 서류를 보내자고 제의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고려의 비번이 날짜에 근거해서 만든 것처럼 아이디도 일주일 단위를

두고 만들어 계속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다른 아이디가 내려왔다. 그러면 내일은 일주일 전에

사용한 앞자리 주민번호를 거꾸로 나열한 번호가 다시 내려올 확률이 많다.

만약 맞는다면 요일별로 이 다섯 가지 규칙으로 만든 아이디를 정하여 돌린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야지만 그들도 기억이 안나거나 헷갈릴 때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내일 고려금융에서 내려오는 아이디를 보면 정확히 알겠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만 두고 말을 삼켰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동인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현우가

경험자인 그를 선의의 라이벌로 느꼈는데 이제는 반대로 동인에게서 그 감정이

나타나곤 했다.

 그들은 회의한 끝에 대양은 하루 이틀 쉬었다 마지막으로 고액을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도 며칠 있다 재확인 차 하나 보내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비록 고려, 대양, 서울금융의 정보를 완전히 파악했더라도 디데이를 앞당길 수

없는 것은 한양금융 작업에 필요한 바지를 아직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후 첫 상담 손님으로 방문한 사람은 회사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중년의

남자와 그의 친구였다. 그는 목요일인가 현우와 전화상담한 손님으로서 유난히

사투리의 악센트가 강해 기억하기가 쉬웠다.

 그는 손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탁자 위에 놓더니 옆의 친구에게도 빨리 꺼내라는

듯 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친구는 그의 눈치를 보며 서류를 내놓았다.

 선우는 이런 두 사람을 보며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친구 관계인 것이 분명한데 행동하는 겉모습은 주인과 하인처럼 구별되었다.

그런데 함께 어울리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역시 말도 사투리 남자가 다

했으며 친구는 그가 물어 볼 때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는 회사택시를 해서는 입에 풀칠만 하고 희망이 없다면서 자기 회사의

노사관계까지 들먹였다. 그리고 이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발전이 없다며 거시적인 표현과 비판을 해가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남자는 요사이 하루하루 사납금을 채우기도 버거우며 지금 중학생과 내년에

대학가는 고3인 자녀의 뒷바라지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수입으로는 가족의 생계만 겨우 책임지고, 학원비와 용돈을 충당하기

위해 아내가 시간제 파출부를 다니고 있다 했다.

 그런데 다행이도 이제야 개인택시 면허 자격조건이 되는데 문제는 차 살 돈

4천만 원이 부족하여 대출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그나마 개인택시를 몰아야지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회사택시로서는 어림도 없으며 결국 자기처럼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밑바닥 인생의 삶을

더 이상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남자는 친구도 운전하는데

매우 성실한 사람으로서 자기와 비슷한 처지로서 함께 대출을 받고 싶어 같이

왔다고 했다.

 처음에 현우는 사투리 남자가 친구를 기죽이고 무시하는 것 같아 그를 안 좋게

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끼리 대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 깊은 우정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느꼈다.

 "뭐해, 빨리 일어나. B은행까지 갔다 오려면 지금부터 서둘러야 돼."

 벌떡 일어난 남자가 그의 어깨를 잡아당기고는 문을 나섰다. 친구는 거의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질질 끌려 나갔다. 그러더니 어느새 어깨동무하며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곤 그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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