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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30 16:19
ㆍIP: 124.xxx.149
슈킹 (91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직 포기하는 건 이른 것 같아. 동인아, 저번에

네가 잔고업체마다 주거래 은행이 있다고 했지. 그래야지만 그 은행에서

VIP대접을 받아 일 처리하는 데 편안하다고 했잖아. 지금 4개의 은행 중

주거래 은행이 분명히 있다면 아이디나 비번처럼 자기네만의 어떤 규칙에

근거해 그 은행과 거래하지 않을까? 예들 들면 잔고금액이 고액이라든가

아니면 업자 서류보다 안전한 개인손님의 잔고증명은 주거래 은행으로

입금시킬 수도 있잖아. 어차피 주거래은행에 실적을 쌓아 주어야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거니까."

 "맞아. 그러면 이번에는 고액과 개인손님으로 대양금융에 보내 보면 답이

나오겠네. 야, 현수 너 대단하다. 나 같으면 꿈에도 생각 못할건데 말이야.

동인아, 현수 말대로 그렇게 한번 해보는 게 어때?"

 그의 말에 동수가 감격한 듯 자기의 무릅을 탁 쳤다.

 "좋은 계획이네요. 오늘 양쪽으로 보내 보지요."

 기뻐할 줄 알았던 동인이 예상 외로 덤덤하게 말했다.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그가 아이디어를 낸 것에 기분이 상한 듯했다.

 현우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동인이 먼저

의견을 물어오거나 해결책을 제의하기 전에는 성급히 말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 퀵이 고려금융의 서류 봉투를 놓고 갔다. 아이디는 S716543으로

주민번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숫자였다. 동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벌리고

두 사람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금요일에 보낸 손님은 이름이 신성기로 주민번호가 632401-1662810이었다.

아이디의 영어 알파벳 S는 성의 SHIN의 첫머리 글자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숫자 716543은 주민번호 어디에도 없다. 신성모 씨의 주민번호에는

7이란 숫자가 아예 없는 것이다.

 이 아이디를 본 그들은 처음에 당황하였으나 이것은 너무 싱겁게 해결되었다.

그것은 신성모 씨의 전화번호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의 휴대폰번호는

010-7165-43**이었다. 이 번호의 국번인 7의 숫자에서 시작하여 여섯 자리까지

쓴 번호였다. 물론 이 폰은 그의 사무실에 있는 선불폰 번호이다.

 "와, 미치겠네. 도데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려올 때마다 아이디가 바뀌니

이거 종잡을 수가 없잖아."

 동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짜증을 냈다.

 "현수 형, 지금부터 형이 고생 좀 해야겠네요."

 동인의 이 말은 고려, 대양, 서울금융에다 그의 사무실에서 보내는 서류가

아니라 개인손님이 의뢰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전화해 달라는 뜻이다. 동인의

목소리는 그들과 자주 통화했으므로 발각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예행연습을 마친 그가 헛기침을 두어 번하더니 전화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눌렀다.

 "잔고증명 해 주시지요. 아파트 샷시 공사 입찰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1억 5천만

원짜리 잔고증명이 필요해서요. 모레까지 입찰서류를 넣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제가 공사관계로 현장에 있어서 사무실로 방문하기가 어렵네요. 서류와

수수료만 보내 드리면 안 될까요? 그래도 된다고요. 곧 퀵을 불러 서류를 보내고

전화 드릴게요. 잔고증명서는 내일 오전 중으로 보내 주세요. 제가 연락드릴테니

그 장소로 퀵을 보내 주시면 돼요. 그리고 그 잔고통장을 계속 사용할 거니까

비밀번호도 알려주시고요."

 현우가 똑 같은 내용으로 고려, 대양, 서울금융에 개인손님인 양 통화를 했다.

그들은 사무실에서 보내는 3부와 개인손님으로 보낼 3부의 서류를 글씨가

다르게 작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단 사무실에서 대양금융으로 보내는

잔고금액은 평소보다 높은 5억으로 했다. 동인이 어차피 작업할 때도 같은

금액으로 할 것이므로 미리 같은 금액으로 해야 정확한 테이터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동수 형, 이 서류봉투를 사용하면 어떻해? 이 봉투는 지금까지 우리 사무실에서

보냈던 것인데 또 이걸 개인손님용으로 쓰면 이미지가 연결될 수도 있잖아. 빨리

문구점 가서 다른 봉투를 사 와."

 그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동수의 덤벙되는 행동과 어리석음에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도 한 치의 오차도 허용 안 하는 그의 치밀함에 현우는

그들의 전 작업이 성공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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