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23 13:26

ㆍIP: 121.xxx.178

슈킹 (84회)

결코 그들은 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 현우가 개입한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이 작업은 성공할 것이므로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그들이 모른 상태에서

서로가 웃으며 돌아서야 한다.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먼 훗날이라도

그에게 후환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금 현우는 스스로 악인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40억에서 5억, 20억 중 2억 5천

이라는 터무니없는 배분으로 원인 제공을 한 것은 그들이다. 이것이 어찌

상식선이란 말인가! 그는 이런 결심을 하게 한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며 자기를

합리화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이 돈을 유흥비나 도박 등으로 모두 탕진하여 결국은 무일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별로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며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이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지금 생각만 해도 두렵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작업을 하기 전에 그들은 K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는 낯선 사내가 도망갈지도

모른다며 현우에게 단지 감시만 해달라고 했었다. 그때 그는 정말 비자금을

세탁하는 줄로만 알았기에 크게 죄의식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비자금

세탁이라는 일이 매스컴 등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고 그는 그 과정에 직접 개입한

것도 아니며 잠깐 감시만 할 것이므로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일도 이 작업의 과정 중 하나란 것이다. 다행히 그 작업이

미수로 그치고 당한 사채업자가 신고는 커녕 도리어 사건을 무마하려고 해서

조용히 지나간 것일 뿐이다. 만약 그 작업이 사건화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행여 그 작업이 성공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들은 수고비를 나에게 얼마나

주었을까? 동인이 "잘 됐으면 형 몫도 생각하고 있었는데..."라고 말한 여기서의

형 몫은 얼마를 뜻하는 것이었을까? 짐작건데 아마 천만 원 정도를 주면서 더없는

생색이 따라왔을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현우는 그 돈이라도 감지덕지하고 받았을 것이다. 그의

수고에 비해 그 돈은 엄청나므로 매우 고마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천만 원에

사기금이 4억인 사건의 범인이 되는 순간임을 모르고 말이다. 내용도 전혀

모른 채 단지 천만원 정도를 받고 4억 편취사건의 공범이 된 것이다.

이것이 말이나 되는 것인가! 그들은 처음부터 자기를 소모품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며 괘씸하고 화가 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또 그는 동인에게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재 이 작업을

준비하며 실행하고 있는 것과 그때의 작업 처리하는 방법이 너무 차이가 나고

무모했다는 것이다. 언뜻 동수에게 들은 말로는 그도 작업비가 부족하여

서둘렀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보 보니 그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는 통화내용을

들은 것도 같다.

그렇다고 이 작업이 서두른다고 되는 일인가. 오히려 급하게 행동하는 만큼 실수와

허점이 비례되어 실패할 것이 아닌가. 여기서의 실패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동인이 몰랐단 말인가. 그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 현우는 CCTV에 찍히는 것도 몰랐고 그것이 그렇게 무서운 줄도 몰랐다. 어쩌면

자기와는 별개로 여겼으며 의식하지도 않았다.

동수와 낯선 사내를 만나 상가 건물 2층에 있는 K은행에 갔을 때 비록 현우는 은행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무심코 바라본 복도 천장 한쪽 구석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하물며 그보다 번화가에 있고 규모가 큰 K은행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CCTV가 그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개선장군처럼 은행 안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 안을 내 집 드나들 듯 휘젓고 다녔으니 각도별로 찍힌 사진이

수십 장은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시디를 교환하러 간 사채사무실의 복도에도

실내에도 CCTV는 설치되어 있었다. 그때 동인은 무슨 생각으로 신분노출에 그렇게

무방비였으며 허점 투성이었느지 지금에와서는 한심할 뿐이다.

우리에게 당한 사채업자가 결코 신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얼마나 확신한단 말인가.

또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한단 말인가!

사람의 성격은 각기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도 같을 수 없다. 아마도 돈에 가장 애착을

갖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사채업자가 아닐까? 과연 우리가 작업하는

사채업자 모두가 자신이 하는 잔고증명이 불법이라고 하여 그렇게들 무서워할까?

잔고증명 업자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연체된 카드금액을 대납해 주고 카드가

살아나면 대납금과 고액의 수수료를 받는 카드대납업자와 비슷한 직업이다. 전에

선배의 사무실도 카드대납을 했었고 동수의 사무실도 카드깡이 주 업무였지만 친한

손님에게 대납을 해 주었던 것 같다.

카드깡은 엄연히 여신전문금융법위반이라는 실정법을 위반하여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카드대납과 잔고증명은 상대방이 먼저 돈을 빌리자고 의뢰하여 서로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민사적인 성질이 강하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엄청난

수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 법에서는 대부업의 이자가 연 49%를

넘지 못하게 규제한다. 이 법을 위반하면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이 처벌이라는 것이 물론 매출액에 따라 다르지만 몇 백만 원의 벌금에

그친다. 그것은 쌍방이 고액의 수수료를 인정하고 묵인 하에서 행위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카드대납 업자나 잔고증명 업자도 아마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현우는 이 사실을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수사기관

사이트 게시판에 자세한 내용으로 글을 올렸고 유명 변호사의 사이트에도 질의하여

돌아온 응답이었다. 동인은 이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대로

전주와의 관계도 있고 그 계통에서 무능력자로 취급 받을 수 있어 사고신고를

꺼린다 하나 그것은 단정 지을 수 없다. 단지 자신의 추측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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