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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2-04 16:38
ㆍIP: 124.xxx.149
슈킹 (95회)

 "명의대여자 광고 보고 전화하셨다고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그쪽으로 나오시면 커피숍이 있어요. 거기서 뵙기로 하지요."

 전화를 끊은 동인이 가방에 몇 가지 서류를 챙기고선 바쁘게 밖으로 나갔다.

 동인이 낸 '명의대여자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생각보다 문의전화가 많이

오는 것에 그는 내심 놀랐다. 오히려 동인이 그 사람들을 만나서 평가하고

선택하는 데 고민할 정도였다. 이것을 곁에서 지켜본 현우는 돈 찾을 사람을

구하는 문제는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동인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의자 뒤에 걸쳐 놓은 자기의 가방을 무심코

보았다. 그 가방은 간단한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가죽으로 된 어깨걸이

가방이었다. 지금 가방 속에 있는 휴대폰에 그가 낸 광고를 보고 전화한

사람들의 연락번호가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갔던 동인이 인출할 여자가 믿음이 안 간다며 괜한 헛걸음을 했다고

투덜댔다.

 그의 불평을 들으며 이제부터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일이고 그것도 몇 시간

지나 닥칠 일이라 생각하니 머리가 찌근거렸다. 그리고 자신은 명의대여자들과

직접 대면하거나 상담한 적이 없어 그들의 심리파악에도 어두울 것이며

잘못하면 불상사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침착하고 빈틈없이 대처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상대방이 여자라는 것과

자기 명의를 빌려줄 만큼 돈이 급히 필요한 약자라는 것이다.

 사무실을 나와 횡단보도 앞에서 두 사람과 헤어진 현우는 길 건너편 골목으로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사무실 문손잡이의 잠금장치를 누르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인터넷바둑

게임에 접속하여 다른 사람들의 대국 장면에다 모니터 화면을 고정시켰다.

혹시 그들이 사무실로 되돌아와 문이 잠겨 있는 상태서 그가 있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면 단순하고 경미하게 보이는 이 사건이 나중에 눈치빠른 동인에게 의심의

빌미를 줄 수있다. 사무실에 혼자 있다가 그들과 마주치더라도 '집으로 가던

중 지인에게 연락이 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남아 인터넷 바둑이나

두며 기다리던 중이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는 얼른 가방 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에는 5개의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었다. 숨을 크게 들어마시고는 첫 번째 번호를 지그시 눌렀다.

 "여보세요."

 고음의 맑은 중년여자의 목소리였다.

 "저, 혹시 명의대여자 광고 보고 전화하신 분이세요?"

 "예, 제가 전화했는데요. 명의대여자가 무슨 뜻이에요?"

 "그것은 저희가 사정이 있어 전화 거신 분 명의의 통장을 잠깐 이용하는 거지요."

 "그러면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되는데요?"

 "은행통장을 만들면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듯싶네요."

 그는 돈 찾는 등의 일은 일부러 빼고 말했다.

 "광고 보니까 고수익 보장이라고 적혀 있던데 얼마나 주는데요?"

 무슨 종류의 일보다는 수고한 대가가 얼마냐에 초점이 맞춰진 호기심의

목소리였다. 순간 현우는 그 금액을 말해야 하느냐, 한다면 얼마를 제시해야

하는지를 놓고 갈등했다. 만약 전화를 건 쪽에서 수사기관의 함정수사라면 그가

제시하는 금액이 터무니없이 높을 경우 의심하여 내사할 수도 있다. 수사기관이

아니라도 수수료가 너무 크면 명의대여자가 불법이나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작으면 흥미를 못 느낄 것은 뻔한 일이다. 양쪽을 의식하여

적당하게 표현해야 한다. 단단하게 마음을 다져 먹은 그가 대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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