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24 12:25

ㆍIP: 121.xxx.95

슈킹 (85회)

잔고업자가 자기 돈으로 할 수도 있고 사채업자가 전주를 보호하려고 본인

돈이라고 우기면 끝나는 것이다.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인 사채업자를 굳이

괴롭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잔고업자는 경미한 법을 어긴 것이고

가해자는 사기라는 중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또 동인이 가벼이 넘긴 것이 사건 후 피해자들의 대응이다. 그들은 이런 이유로

절대 사채업자가 신고를 못할 거라고 했으나 현우는 이 점에서도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만약 그들이 카드 손님에게 대납해 준 거액을 사기 당했다면

몇 백만 원의 벌금이 무서워 고소를 안 하겠는가? 하물며 각각의 잔고업체는

10억이라는 거액을 슈킹 당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이 성공한 첫 번째 작업이 운이 좋았던 것이고 두 번째

작업은 미수에 그쳤으므로 조용히 넘어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쩌면 처음 작업이 지금 사건화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그들 쪽에서 확인할 방법이 메스컴 외에는 없기에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구대나 경찰서에 가서 내가 지명수배나 기소중지가 되어

있는지를 조회해 달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현우는 자기가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세운 3가지 철칙 중 그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객관적으로 생각할 것과 상대방의 입장과 바꾸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도 이런 생각을 하고 다방면으로 조사를 하게 된 것은 그들과의 관계가

아군에서 적군으로 바뀌면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피해자인

사채업자가 그들 말대로 당연히 신고를 안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독자노선을 가게 된 시점부터는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고

계획해야만 했다. 또 그래야만 완전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이 작업이 끝나자마자 잔고업자가 사건을 신고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40억의 사기 사건으로 4곳의 잔고업체가

동시에 고소인이 될 것이다.

현우는 명의대여자 구함의 광고를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보지에 내기로

결정했다. 인터넷에서 해당 정보지의 연락처를 찾은 그는 광고 문안을 갖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정보지 회사 방향으로 가자고 말했다.

어느 정도를 가다가 대로변 문구점 앞에서 내린 그는 그곳에서 팩스를 보냈다.

이로써 정보지 회사에 근거로 남을 팩스 용지에 찍힌 전화번호는 문구점의

팩스번호가 인쇄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사무실에서 보낸다면 사무실 전화번호가

기록되어 연결고리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귀찮지만 발품을 팔아 완전하게

끊었다.

그런 후 그는 정보지 회사에 문안에 비어 있는 전화번호는 조금 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팩스를 받아본 담당자는 오늘은 토요일이라 다음 주 화요일자부터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일단 광고를 2주 실어 달라면서 광고비는 월요일 출근하면서 아니면 퇴근

후에 직접 회사를 방문하여 주겠다고 말했다.

A4 용지의 '오늘의 할 일'에서 두 번째 숫자 옆에 '명의대여자 구함 광고 게재'란

글씨 위에 붉은 색으로 두 줄을 긋고 O.K라고 썼다. 첫 번째 '선불폰 구입'은 벌써

O.K로 적혀 있었다.

지갑에서 명함 두 장을 꺼낸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처음 명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 미래금융이지요? 실례지만 전에 고 성수 부장님이

근무하셨는데 혹시 어디로 옮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는데요."

처음 듣는 냉랭한 여직원의 목소리였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1년 전에 근무한 사람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면 김정민 이사님 계시지요. 좀 바꿔 주실래요?"

"예, 김 이사입니다."

굵은 저음을 들으니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음성를 알 수 있었다. 현우는

고 부장과는 선후배라 친했지만 김 이사는 고 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자연히

그와도 관계가 별로였다. 그렇다고 그와 김 이사와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단지

개인적으로 술을 한다든지 등의 친분관계가 없었을 뿐이다.

"김 이사님, 저 강현수입니다. 기억나세요?"

그는 김 이사가 자기의 본명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현수라고 일부러 말했다.

"누구시더라..."

"고성수 부장 후배로 1년 전에 그 사무실에서 두어 달 정도 근무한 적이 있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는 것도 같네. 그런데 웬일이야?"

현우가 진짜 기억나는지 예의상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반기는 기색이었다.

"저, 혹시 고 부장이 어디서 근무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 자네도 알다시피 난 고 부장과 좀 그랬잖아. 그래서 고 부장 그만두고

통화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어."

"그러면 고 부장 연락처라도 알 수 없을까요? 얼마 전에 고 부장 명함 든 지갑을

분실해서요."

"나도 모르는데 어쩌지."

"혹시 고 부장 연락처를 아는 직원은 없을까요."

"아마 없을 거야. 자네도 알지만 이 계통 사람들은 자주 그만두잖아."

다음에 한번 들르겠다고 겉치례로 인사한 그가 쓴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날 현수로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네."

전에 근무하던 사무실과 선배와 연결고리가 없는 것을 그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수사가 개시된다면 동수와 동인이 조사 받는 과정에서 그와의 첫 만남의 계기와

장소 등을 추궁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미래금융의 이름이 나올 것이고 그 가운데

자신과 선배와의 관계가 드러날 것이므로 선배의 소재는 그로서는 매우 중요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선배가 그의 실명폰 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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