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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19 13:32
ㆍIP: 121.xxx.166
슈킹 (81회)

 택시를 타자 술집은 사무실에서 그리 멀리 않았다. 룸살롱은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홀도 넓었고 룸도 꽤 많았다.

 조금 후 문이 열리더니 그녀들과 처음 보는 아가씨 한 명이 들어와 인사를

했다. 동수 옆에는 선영이 앉고 현우 곁에는 시영이 앉았다.

 다른 아가씨가 날름 동인의 옆에 가서 찰싹 달라붙었다. 선영이 동수에게

온다고 말만 하고 이제 오면 어떡하냐고 투정 부리는 것으로 보아 전화 통화는

전부터 자주 한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아가씨 성은 황으로 하는데 이름은 잘 기억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먼저 현우가 말문을 열였다.

 "시영이잖아요."

 서운한 말투였다.

 "저는 실장님의 이름이 강수현이라고 똑똑히 기억하는데 실망이에요."

 그녀는 명함에 적힌 수현으로 말하며 입술을 삐죽거리고 토라져 돌아앉았다.

그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자기는 수현도 현수도 아닌 강현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사무실에서의 조용하고 얌전했던 모습과는 달리 만면에 미소를 띠고 귀엽게

재롱을 떠는 그녀에게 왠지 정이 갔다.

 "제가 실장님 전화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시지요. 박 부장님은 선영이와

자주 통화하는데 실장님은 한 번도 전화 안 주시고 너무 섭섭해서 울 뻔했어요."

 "미안해요. 그런데 선영 씨에게 질투한 건 아니고요?"

 "실장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사실 그런 마음도 있었어요."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녀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시영 씨, 오빠라고 불러요. 실장님 보다 그게 듣기 편할 것 같아요."

 "그래도 돼요? 진작부터 오빠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눈치만 봤는데 고마워요, 오빠."

 "아니에요. 그렇게 불러주니 도리어 내가 고맙지요."

 그녀는 마치 엄한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은 학생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의

어깨 위로 살며시 얼굴을 기댔다.

 어느덧 룸 안은 노래방 분위기로 돌아가 현우와 그녀를 빼고는 마이크를

돌려가며 광란의 밤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새 동인의 파트너는 그의 품에

안겨 애교 섞인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동수의 반강제적인 협박으로 시영과 듀엣으로 몇 곡의 노래를 부르고

자리로 돌아왔다. 언제부턴지 노래를 부를 때도 앉아 있을 때도 그녀는 현우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오늘 그는 소주도 양주도 평소 주량보다 초과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정신은 더 맑아져 가고 있었다.

 '이것은 아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동수가 부르는 노래가 고음에서 점차 찢어질 듯한 소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동인은 파트너가 마음에 들었는지 구석진 소파에 파묻혀 밀회를 즐기느라 바빴다.

그런 동인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그는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을 억누르려 연거푸

스트레이트 잔으로 마셨다. 깜짝 놀란 시영이 얼른 안주를 집어 입으로 넣으며

말했다.

 "오빠, 오늘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저는 오빠를 만나서 너무너무 좋은데..."

 시영이 시무룩한 그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러더니 그의 허리를 꽉 안앉다.

 "아니, 괜찮아. 오늘은 좀 취하고 싶은데 안 취해서 그래."

 "만일 오빠가 외로우면 오늘 시영이가 같이 있어 줄 수 있는데..."

 그녀는 자기가 한 말이 부끄러웠는지 빨개진 얼굴을 얼른 그의 가슴에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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