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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3-11-17 14:24
ㆍIP: 121.xxx.8
슈킹 (79회)

 "형은 저번 작업할 때 영민이 놈 하는 거 못 봤어. 작업 끝나고 배분해 주니까 바로

잠수 타서 연락도 안 되잖아. 잘 해줘봐야 다 소용 없다구. 어차피 현수 형도 이 일

끝나면 우리하고 관계는 끝이야. 형은 친구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현수 형하고

우리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달라. 어울릴 수 있는 부류가 아니란 말이지. 이 작업에서

우리도 현수 형이 필요해서 부른 거고 그 형도 돈이 탐나서 동참한 거니까 일한 만큼만

주면 돼."

 "그러면 너는 현수에게 얼마를 줄 생각인데?"

 "40억이라면 5억, 반이면 2억 5천."

 그의 차갑고 냉정한 두 마디가 떨어졌다.

 "너무 작지 않겠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동인의 얼굴을 멀거니 쳐다봤다.

 "무슨 말이야. 이 일의 가장 중요한 작업비를 내가 다 대고 있어. 그리고 작업방법과

아이디어는 모두 내가 짜며 지휘하고 있잖아. 현수 형에게는 그 돈도 엄청 큰 거야.

아마 월급쟁이로 평생 벌 돈을 우리 때문에 만지는 거잖아. 또 가만 안 있으면 어떡할

건데. 형은 그래서 답답하단 말이야. 현수 형도 어차피 한 배를 탔는데 나발을 불어

자기 무덤을 팔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야? 현수 형이 어떤 사람인 걸 아직 파악 않데?

작업 끝나고 배당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은 그때까지 무조건 가만히 있으면 돼.

알았지?"

 명령조로 말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동수의 머리가 문틈 사이로 반쯤 보였다.

 화장실을 가려던 걸음을 살며시 뒤로하고 현우는 급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떻게

옥상까지 왔는지 숨이 가빴다. 그는 숨을 돌리고 나서 담배갑를 꺼냈다. 담배를 피워

무는데 손끝이 가늘게 떨려 왔다. 이럴수록 냉정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타이르면서

연기를 빨아 댔다. 마치 자신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는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지그시 눌렀다. 돈 앞에서 사람이 변한다고 하나 설마

너가 이럴줄 몰랐다! 옥상 구석진 모서리에 선 그가 그동안 참았던 소변을 벽을

향해 누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냈으나 왠지 개운함을 느낄 수 없었다.

 뿜어 대는 연기를 차가운 바람이 휘감으며 자기 쪽으로 불어오는데도 그는 추운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럴 때 자판기 커피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 그는 바로 밑

사무실 커피가 그리웠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가로수의 빛바랜 잎사귀는 겨울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었다. 반코트 바깥 주머니 속의 휴대폰을 손에 든 그가 버튼을 눌렀다.

 "나야, 혼자서 바빴지. 이제 누나 배웅하고 곧 들어갈게. 동인이 왔어?"

 "응, 응. 조금 전에 왔어."

 동수의 미세한 떨림의 대답이 돌아왔다.

 피다 만 꽁초를 옆 건물 옥상으로 퉁긴 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사무실 앞에서

잠시 표정을 고친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쇼핑백에 든 반찬통을 꺼내 냉장고에

넣으며 가능한 자신의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말없이 그는 종이컵에 커피를 타 자기 자리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커피 맛이

옥상에서 기대한 만큼 그리 맛있지는 않았다.

 포털 사이트의 화면에는 늘 그랬듯이 뉴스와 정보들이 서로 자기를 먼저 클릭해 달라고

별빛을 반짝이고 있다. 내용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고 머리속은 혼란스러웠다.

 "현수야, 너 누나 만나서 안 좋은 일 있었어?"

 감정을 감추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무룩한 표정이 동수에게 들켜 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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