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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8-31 19:34
ㆍIP: 115.xxx.86
베팅 (66회)
 
 선우는 허기를 느껴 근처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장외발매소 옆이라 경마를 끝내고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대화도 오늘 있었던 경마 이야기가 주제였다. 그리
 
고 거의 선우처럼 설렁탕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탄식과 한숨소리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

 맞은편 노인 중 한 사람이 푸념과 원망 섞인 음성으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얼핏 보아도 남루한 차림으로 머리가 희끗했다.

 “내 실업자 된지 벌써 10년차이고 경마 시작한 지는 12년인데 그래도 한 닢이라고
 
벌때는 그렇다치고 지금은 연금이라고 코딱지만큼 받는 처지에 금, 토, 일 경마하면
 
서 입장료 1만 원에서 1만 4천 원으로 인상하니 절약한다고 6천 원에 입장하잖소. 경
 
마지 1천 원에 3일이면 입장료, 책값 2만 1천 원으로 한 달이면 8만 4천 원을 고정으
 
로 쏟아 붓지.

 경마일이면 말 체중 체크하고 조교는 어떤가 보고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해서 마
 
권을 사 2~3분이면 휴지조각이 되잖아. 이렇게 해서 매일 마장에 수십만 원씩 말밥
 
주고 어쩌다 봉사 문고리 잡아 한 푼이나 만지면 술값으로 낭비하고 주머니에 남는
 
건 싸인팬 한 자루 뿐이야. 또 마장을 오가며 교통비는 어떻고. 생각할수록 한심한 노
 
릇인데 이래서는 안 되지 하면서도 경마일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지는 것은
 
분명 병중에 중병일 거야. 자네가 이 치료 방법 좀 알려주게나.“

 “이 사람아, 그걸 알면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자네와 있겠는가.”

 “그건 그러네. 그려.”

 두 노인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웃고는 나갔다.

 그때 선우 옆자리에서 50대 중반의 남자가 연하로 보이는 두 사내에게 경마에 관해
 
진지하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집중하여 경청하고 심지어 한 사내는 그의 말
 
을 열심히 메모하기까지 했다. 그의 자리와 거리가 가까와 남자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경마에 이기려면 버려야 할 네 가지가 있는데 꼭 명심해야 할 거야. 첫째, 경마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가끔 경마공부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야. 다른 도박과는 달리 경마는 공부를, 그것도 무지막지한 노력
 
을 필요로 해. 이 무용론을 펴는 사람들의 말은 공부해도 별 수 없더라지만 만약 않는
 
다면 더 크게 더 빨리 더 씩씩하게 죽는다는 거야.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공부 하냐가 중요하지. 무용론은 경마에 참여하는 자를 두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야. 우리는 공부의 중요성은 알지만 대체적으로 그 방법에 대해
 
서 모를 뿐이야. 영어시험 공부를 하는데 일본어 책을 뒤적이는 것과 같은 공부를 한
 
다는 거지.

 둘째, 경마를 소액으로 하라는데 얼핏 들으면 건전하게 들리지. 돈이랑 무관하게 취
 
미나 레저로 즐기려면 이것이 정답이야. 그러나 경마는 즐기는 것이 아니야. 피같은
 
재산을 들여가면서까지 경마가 즐길 만한 오락인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쌍욕이
 
난무하고 눈에 핏발이 서는 전쟁이지. 경마는 소액으로 하면 안 돼. 그렇다고 수백 수
 
천을 들고 붙으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야.

 일주일에 1만 원을 들고 경마하는 사람이 이길 수도 있어. 그러나 이긴다 한들 얼마
 
를 이기겠나. 또한 질 때가 더 많으니 소액 승부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아. 일주일에
 
1만 원 갖고 하는 사람은 10만 원을 만들 때까지 저축하고, 5만 원 갖고 하는 사람은
 
100만 원 만들때까지 허벅지 꼬집어가면서 참아야 돼. 그런 후에 진검승부를 펼쳐야
 
되는 거야. 단돈 1만 원을 들고 승부하는 사람이나 100만 원을 들고 승부하는 사람이
 
나 절박한 심정은 똑같아.

 그러나 같은 승부라면 그 결과에 따라 한 사람은 몇십만 원에 기뻐하고 다른 사람은
 
몇백, 몇천만 원의 희열을 느낄 수 있지. 몇만원을 그것도 구멍당 몇천 원씩 찢어 발
 
기는 소액승부는 피하라는 거야. 경마에서 얻고자 하는 기대치만큼 인내도 배우면서
 
악착같이 모은 후에 승부하라는 거지.“

 남자는 여기까지 말하고선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어느새 선우 자신도 그의 열강에
 
빠져들어 다음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
 
름 아닌 맞작업에 필요한 인물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장외발매소에
 
온 것이 아니던가. 아직 이 시간까지는 확실한 성과가 없었다.

 “세 번째는 뭐예요?”

 부지런히 필기하던 사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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