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09-21 16:30

ㆍIP: 115.xxx.86

베팅 (70회)

10. 두 번째 아군을 탐색하다.

다음 날 일요일, 선우는 첫 경주가 열리기 훨씬 이른 시간에 어제의 장외발매소를 찾

았다. 이번에는 일반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1경주 30분 전에 자리표를 나누어주는데 이 표를 받지 못하면 마지막 경주까지 장장

7~8시간을 서서 관람을 해야 한다. 힘들면 통행하는 사람들 틈에서 경마지를 깔고 바

닥에 앉아야 하는데 이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두세 경주가 끝나자 이미 객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VIP층에 비해 여기는 말 그

대로 닭장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체력이 고갈되어 바닥에 앉게

되었다. 경마장 아닌 곳에서 저런 자세로 땅바닥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

이나 될까라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불현듯 며칠 전 과천경마장에서 한 경소연 회원이

외친 소리가 번뜩 떠올랐다.

"과밀하고 비좁은 장외발매소로 인하여 피로를 풀고 레저로 즐겨야 할 경마가 오히려

엄청난 스트레스와 오염된 공기와 앉을 자리가 없어 시멘트 맨바닥에서 경마를 하고

있는 경마고객들이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그는 이제야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의미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더 당겨 새끼야. 버텨 새끼야. 확 떨어져 죽어버려라."

그의 앞자리에 복부인 행색의 아주머니가 입에 걸레를 물었는지 경주 내내 연신 욕

을 남발했다. 매 경주가 끝나 자신이 찍은 마번이 안 들어올때마다 말꼬리를 댕겼다

느니, 채찍을 안 치고 누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니, 일부러 외각으로 빙돌았다느니,

결승선에서 코승부할 때 마사회에서 선을 안쪽으로 그어서 저 말이 이겼다는 등 구구

절절 늘어놓는 괴성에 선우는 신경이 쓰여 도저히 가까이 있을 수 없었다.

5경주에서 여자가 응원하던 말이 4코너까지 선두였는데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그러

자 달리던 속도에 못 이겨 기수가 낙마하고 말았다. 말은 다리가 부러졌는지 외곽으

로 절뚝거리며 나가고 조금 후 기수가 겨우 몸을 가누며 일어났다. 그러자 여자는 기

수가 안 다쳤나를 걱정하기는커녕 "저 새끼 말굽에나 밟혀 뒤져버리라" 하고 부상 당

한 말에게도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고보니 그 여자 옆에는 다른 남자들이 얼씬도 않

는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도 다리 한번 부러져봐야 정신 차리지. 경주마는 도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엄

연히 한 생명체야. 이 주둥이가 시궁창인 아줌씨야.'라고 차마 직접 말하지는 못하

고 속으로 여자의 뒤통수에 날렸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버리는 그녀의 마권을 확인

한 그는 피식 헛웃음이 났다.

그는 경주마다 욕설을 난무하는 여자를 보며 고액을 베팅하는데 미적중되어 원망하

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녀가 베팅한 금액은 1천 원 3구멍으로 3천 원이

었다. 여자는 요란한 빈 수례였던 것이다. 만약 여자의 베팅액이 구매권으로 한두 장

이었다면 아마도 그녀는 과천경마장 트랙 한가운데로 윤봉길 의사처럼 폭탄을 투척했

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선우는 이 여자 곁에 계속 있다가는 자신도 곧 정

신병자가 될 것 같아 아깝지만 지정석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건너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경마 정보를 교환하며 왁자지껄했다. 선

우가 그중 꾀죄죄한 차림이지만 후덥한 인상에 유난히 목소리 톤이 높고 털보인 중년

사내를 주시했다. 왜냐하면 대화 중 털보가 말을 하거나 제스처를 취할 때는 주위

사람들이 경청하고 긍정적으로 맞장구를 치는 것으로 보아 그 무리의 리더라는 느낌

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일장 연설에 주변 사람들 표정을 보니 교회에서 설교를 듣

고 은혜 받은 사람들의 얼굴이 연상될 정도였다. 그의 맞작업에 두 번째로 필요한 사

람이기도 했다.

이때 "마감 30초 전입니다. 마권 구매를 서둘러주십시요’라는 방송 멘트가 흘러나왔

다. 이어 "금방 마감됩니다. 빨리 마권을 구매하세요."라고 외치며 사람들 사이로

분주히 다니는 알바청년들도 덩달아 바빴다. 잠잠했던 창구는 다시 불난 호떡집이 되

었다.

선우 옆에 있던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내가 볼멘소리를 냈다.

“저 마감 30초 전이라는 소리에 우리는 약에 취한 듯 빠져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요. 저 방송은 빨리빨리 팔아야 파는 만큼 남는 마사회가 경마팬의 중독성 심리를 이

용한 아주 고단수적인 강매 방법입니다.”

그리고 알바 청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바비 받고 있으니 거들어야 하는 저 젊은 친구들은 늦은 밤 술집 골목에서 손님

호객하는 삐끼와 다를 바가 뭐가 있나. 저것도 아마 교육시키겠지. 참으로 마음이 아

파!”

사내의 말에 친구인 듯한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정찬열 2015-09-24 15:44	경마장의 풍경이 잔잔하게 그려집니다. 그중에 도 빈수례가 요란한 볼상 사나운 아줌마의 연상에 마냥 즐감하고 갑니다. 늘 편안하시고 온가족이 함께하는 행복이가득한 명절이 되세요

이인철 2015-09-30 17:03	《Re》정찬열 님 , 정찬열 작가님! 추석 명절은 즐겁게 잘 지내셨겠지요. 경마장의 속내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과 사연들이 많은 듯 합니다. 정 작가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로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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