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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10-14 17:18
ㆍIP: 115.xxx.86
베팅 (73회)
 
 그는 미적중 마권을 무심히 보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휴지통에 버렸다. 지그시 깨무
 
는 입술에서 곧 피가 흐를 것만 같았다.

 ‘처음 생각한대로 단식이 높았던 말은 앞에서 뛰는 척만 하고 뒤에서 올라왔다. 내가
 
보기에 말을 억지로 제어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것도 잡아내서 배팅을
 
해야만 하는 내 입장에서는 속만 터질 뿐 어찌할 방법이 없다. 평소대로라면 그 경주
 
는 안 하는 경주였다. 확실하더라도 벌써 들어온 듯한 경주라도 결정을 못하면 안 하
 
는 게 내 스타일인데 전 경주에서는 그런 것들이 완전히 무시됐다.

 갑자기 자신에게 짜증이 밀려온다. 오늘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기본 수칙들을 스스
 
로 내팽개쳤다. 아마추어도 이런 아마추어적인 발상이 없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인
 
가. 마음이 쓰리다.

 이번 경주에 다시 한 번 집중해서 보자. 직전 경주에 입상을 했어야 하는 말이 있었
 
는데 졸전을 펼쳤다. 이 경주에 다시 그 소속 조의 말이 나오는데 그 말로 승부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주에 승부를 걸어야겠다.

 내가 배팅하기로 마음먹은 말과 기수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저 기수와는 어느 정도
 
인연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수의 습성을 알고 있었고 그 마방의 스타일을 파악
 
해 놓은 게 도움이 된다.

 경마장의 모든 마방은 희한하게 안 팔릴 때 가려는 습성이 있다. 자기 말이 축으로
 
잡히거나 하면 부담스러운지 덜 팔리고 관심이 많이 약해졌을 때 기습적으로 착순을
 
대는 경우가 많은 건 왜 그럴까. 그렇게 함으로써 마주나 조교사는 희열을 맛볼지 몰
 
라도 일반 배터들은 억장이 무너진다는 걸 알기나 할까. 혹 그 맛에 하는 걸까.‘

 털보는 흡연실을 나와 파출부와 같은 중년 여자의 자리 옆으로 가서 자연스레 앉았
 
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웃기도 하고 가벼운 터치도 주고받는 것으로 보아 평소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하긴 이 지점에 터줏대감이며 왕고참 경마꾼을 모른는 것이 더 이
 
상할 수도 있다. 선우는 두 사람의 뒷좌석에 서서 가만히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진숙 씨, 전전 경주에 많이 산거 아녜요? 분명히 들어오는 말이었는데.... 이거 미
 
안해서 어쩌지요.”

 “아뇨. 별루 안 샀어요. 괜찮아요.”

 여자의 힘없는 대답과 함께 어두운 얼굴이 살짝 보인다. 여자는 애써 태연한 척하나
 
자기의 속마음은 어찌 안 되는가 보다. 털보는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실수가 더욱 안
 
타깝고 애처로웠다.

 털보는 미안함과 착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빌딩 창문을 통해 밖
 
을 응시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 정도 안정되었는지
 
여자 곁으로 가서 다시 앉았다.

 “어느 말이 좋게 보여요?”

 “글쎄요...”

 털보는 쉽게 대답을 못했다.

 “전 그냥 그 말이 그 말 같고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여자가 경마지를 보며 도리질을 했다. 마지막 경주라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평소 경
 
주에서 소액으로 배팅하던 사람들까지 본전 심리와 막경주라는 아쉬움으로 뭉텅이
 
배팅을 하는 경주다. 돈을 잃었던 사람들이 완벽한 댓길 배당도 무시하고 어차피 그
 
댓길 배당이 들어와도 만회는 안 되기에 고배당으로 무섭게 배팅을 한다.

 털보는 이럴수록 냉정하게 배팅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자기가 노리고 있던
 
기수와 말을 최종적으로 살피고 오늘 네 번째이자 마지막 배팅을 했다. 구매표에 마
 
번을 적고 손으로 반쯤 가리며 그녀에게 자신의 마권을 보여주었다.

 “7-9사세요, 7은 인정이고 9예요. 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사세요.”

 여자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빙긋 웃으며 일어나 발매기로 갔다. 마감이 되고 마지막
 
경주의 말들이 출발했다

 인기마인 7번이 기습 선행을 받으며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7번은 혼자 도망가고 뒷
 
말들과의 차이를 멀찍이 벌여놓았다. 결승점을 얼마 앞두고 2열의 말들이 뭉쳐서 우
 
르르 몰려오는데 그중 후미에서 힘차게 올라오는 말이 9번이었다.

 그가 노린 말이 아슬아슬하게 2착으로 들어왔다. 순간 여자의 얼굴이 함박꽃으로 변
 
하고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마쟁이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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