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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10-09 16:59
ㆍIP: 115.xxx.86
베팅 (72회)
 
 선우는 그를 관찰하면서 언제가 사무실에서 ‘경마장에서 조심해야 될 사람들’에 대
 
해 민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경마장에서 초보자들은 금방 티가 나잖아. 그때 어디선가 꾼들이 나타나 접근해서
 
는 이거저거 물어보고 대답해 주다 좀 스스럼이 없어지면 좋은 말이 있다면서 베팅을
 
권유하는 거야. 한두 번 맞추게 되면 코가 끼게 되는 거지. 적중하면 뽀찌를 달라고
 
떼를 쓰고 미적중일 때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사라지는 사람들이야. 이런 사람들
 
이 경마 폐인 첫 진입 단계로 돌입하는 거지.

 두 번째 사람들이 지능범인데 자기가 '조교사랑 친분있네', '기수랑 선후배 사이네'라
 
며 소스를 받았다고 구라치는 족속이지. 가끔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는 게 다반사인
 
이들에게 엮이면 베팅액도 커지고 단기간에 전 재산 다 말아먹게 돼. 어떤 경우는 셋
 
트로 한 놈은 승부를 붙이고 다른 놈은 정신없이 바람 잡으니까 이런 사람들을 조심
 
해야 돼. 맞으면 절반을 반협박적으로 뽀지를 뜯어가므로 적중되어도 기분 엄청 불쾌
 
하다니까. 초보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몇 번 말이 좋으니 조금이라도 베팅해
 
보라고 접근하는 이들이야.‘

 흡연실 좁은 공간에서는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바글대며 너구리를 떼로 잡고 있었
 
다. 군대 훈련소의 화생방 가스는 이 연기에 비하면 양반이다. 중년 여자들도 담배를
 
꼬나물며 가세하고 있었다. 경주가 시작되자 모두 모니터 가까이로 다가가 올려다보
 
았다.

 3코너 돌고 있는데 선우 앞의 아저씨가 손에 쥔 마권을 흔들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영세야~ 말 그렇게 타면 안 된다~.”

 직선 들어서기 직전 아저씨가 고함을 질렀다.

 “아~ 제기랄. 저, 저... 또 마이클 잭슨 춤추네.”

 “마이클 잭슨?”

 뒤에서 구경하던 선우가 무심코 따라했다. 쾅 하고 폭탄배당이 터지고 아저씨는 마
 
권을 집어던졌다. 선우는 마이클 잭슨이란 뜻이 궁금해 아저씨에게 물어보려고 하는
 
데 옆의 친구가 위로하듯 말했다.

 “야, 내가 아까 그 말 땅 파다가 잭슨 춤출 거라 했잖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빌리진 춤 모르슈? 노래하다 뒤로 가는 거 있잖아. 왜 그거.”

 ‘푸하하하...’

 선우가 흡연실이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 웃어대자 그는 선우의 웃음소리에 ‘돈 죽어
 
열 받아 죽겠는데 뭐야?’하는 얼굴로 선우를 향해 싸울 기세로 노려보았다. 그는 검
 
은 피부의 사내로 오랜 노동 현장 생활에 찌든, 눈매가 매서운 인상이었다. 나이를 무
 
기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해결사인 선우에게 통할 리 없었다.

 “그래서 머 켕기오?”

 젊고 운동으로 단련된 체격의 몸뚱이를 들이미는 선우에게 기죽은 그가 슬그머니 흡
 
연실을 나갔다. 이 모습을 털보가 보던 중 우연히 그의 눈빛과 마주쳤다. 고개 돌린
 
털보는 경주의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담배를 씹으며 전전 경주를 머릿속으로 복
 
기하고 있었다.

 ‘4번 마가 바깥쪽으로 나오더니 맹렬히 추입을 시작했다. 내 마번은 4-10이었다. 이
 
경주에 평소보다 많은 돈을 걸었고 들어오기만 하면 오늘 잃었던 걸 몽땅 복구하고
 
조금은 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로를 보는데 선행하던 10번 마는 직선주로에서 더욱더 채찍을 받
 
으며 내달렸다. 4번 마와 선행하는 10번을 따라올 말이 없다. 내 마권은 맞았다. 너무
 
좋아서 소리라도 지를 참이었는데 4번 마 뒤에서 한 두가 맹렬히 쫒아온다. 거리상
 
잡히기는 힘들 거라 보였는데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 결승점을 불과 30여m 앞두고 4
 
번의 속도가 점점 죽는다. 뒷말이 거리를 좁히더니 어느새 결승선에서 4번마를 넘어
 
섰다.

 다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머니에서 얼른 마권
 
을 꺼내서 바라본다. 복연은 사지도 않았다. 오로지 4-10에 복식과 쌍식만 샀을 뿐이
 
다. 억울하고 어이가 없어서 손안의 마권을 버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이 돈이 어떤 돈 인데. 철판을 깔고 반강제적으로 뜯은 아니, 구걸한 돈인데 이걸 또
 
잃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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