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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이인철 수필 소설 문학서재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11-07 19:01
ㆍIP: 115.xxx.86
베팅 (76회)
 
 복식 6.8배당. 쌍식 12.4배당. 드디어 본전을 찾았다. 아~ 어찌하여 경마는 한번을
 
주어도 이렇게 힘들게 준단 말인가. 경마란 놈이 정말 무서운 건 다 죽어가는 이에게
 
살짝 키스를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키스를 받은 우리는 도망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지난 것들은 다 잊고 다시 버림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다가간다는 것이
 
다.

 “경마 지식도 배울 겸 저녁이나 하지요.”

 “저야 무조건 환영이지요.”

 경주가 끝난 후 선우의 제의에 그는 덕분에 한 끼를 때울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쪽에서 사시는 거지요? 저, 친한 후배와 함께 가도 될까요?”

 선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근에 있던 야구모자 사내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야구
 
모자 곁에 있던 무리들이 우르르 털보에게로 왔다. 순간 그는 당황했으나 어차피 나
 
중에 이들이 모두 필요하므로 미리 상견례를 해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털보와
 
후배를 포함하여 무려 12명이나 되었다. 거의가 편안한 차림에 찌든 표정들이다.

 한꺼번에 내려오는 사람들로 계단과 복도는 압사 직전이다. 주머니가 털린 사람들의
 
탄식과 욕설이 경주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칠었다.

 다음 금요일까지 쉬어야 하므로 일요일 마지막 경주는 대부분 갖고 있는 돈을 전부
 
베팅한다. 그만큼 미적중한 사람들이 빈털터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선우가 내려오면
 
서 배당금 찾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 많은 사람이 베팅한 것 같은데 창구서 돈을
 
찾으러 줄 서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었다.

 평소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생활을 영위하다시피 하는 사람들도 경마일이면 어디서
 
물을 길어 오는지 다만 얼마라도 돈을 만들어 온다. 그리고 경마장에 와서도 오링 된
 
상태에서 여러 곳으로 긴박하게 전화를 걸어 물을 긷는 재주가 탁월한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옆에서 들어보면 소가 들어도 웃을 이야기와 말재주로 물을 긷는 것
 
이다. 북청불장수는 물을 길어 생업을 이어갔고 자식들을 대학까지 가르쳤다는데 경
 
마꾼들은 여기저기 물을 길어 말밥을 주는 것이다. 정말로 씁쓸한 경마장의 애잔한
 
풍경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조금 전 선우가 화장실에 갔을 때였다. 용변기에 소변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한 사내
 
가 어딘가로 다급하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야,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애가 학교에서 오다 자전거로 어느 할머니를 치었지 뭐
 
야. 그 할머니가 넘어지면서 많이 다쳐 병원에 왔는데 지금 빨리 합의를 해야 될 것
 
같아. 아니면 퇴원할 때까지 우리가 치료비 다 계산해야 하고 결국은 합의를 봐야 하
 
잖아. 그래서 내가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사정해서 겨우 합의를 보기로 했어. 그쪽에
 
서 500만 원을 요구하기에 빌고 빌어서 300만 원에 끝냈지. 내가 이번 달 안으로 줄
 
테니 지금 얼마라도 안될까? 약속은 꼭 지킬게. 부탁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 사내처럼 억지와 거짓말로 물을 길고 있는 것이다. 밖은 경마방송
 
소리로 시끄러워 발각될 수가 있으므로 객장에서 가장 조용한 화장실 안을 찾은 것이
 
다.

 돈을 구하려 동분서주하다 급기야 자식을 팔아서라도 베팅하려는 사내는 갚을 방법
 
이 애초에 없다. 단지 유일한 길은 지금 빌리는 돈으로 다음 경주에 적중하여 그 배당
 
금으로 갚으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이미 자기 힘으로 구할 수 있는 돈은 다 끌어 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그 돈으로 발밥을 주고 나면 친구는 빚 독촉을 해올 것이다.
 
사내는 핑계를 거듭하다 점점 회피하게 되고 결국 원수 사이가 될 것이다. 종말은 주
 
위로부터의 불신과 외톨이로 남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자식은 앞으로 몇 번을 다치고 사고가 날 것이다. 자식은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 문제는 진짜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늑대가 나타났
 
다"라고 거짓으로 소리친 양치기 소년의 꼴이 된다는 것이다. 여러 번의 거짓말로 진
 
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1명의 마을 사람도 오지 않은 것처럼 사내의 사실적인 외침
 
에도 모두가 외면할 것이다. 경마는 참으로 비참한 미래를 만들어 내는 괴물인 것 같
 
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선우는 달려가 그 사내의 뒤통수를 팍 때려주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선우는 의아했던 문제가 지점에 와서 사람들을 관찰한 후에야 이해된 것이 있었다.
 
경마팬들은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라고 돈을 최대한 갖고 오므로 장외발매소 주변의
 
고급 음식점이 장사가 잘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정 반대였다.

 그들이 경마를 계속하려는 것도 있겠지만 점심시간에 근처 식당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매점에서 도시락, 컵라면, 김밥, 어묵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우거나  심지어 굶는 사람도 있었다.

 밖에서 먹는 사람들도 대부분 저렴한 가격의 음식을 선호하는 듯했다. 왜냐하면 비
 
싼 음식 값을 아껴 그 돈으로 베팅하여 적중되는 배당금에 더욱 비중을 둔다는 것을
 
알았다.

 이 지점만 보아도 1층에 입점한 대형 횟집은 폐업을 했는데 3천 원대의 국밥집과 가
 
격을 할인한 중국집은 호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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