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인철
ㆍ작성일	2015-10-24 18:52

ㆍIP: 115.xxx.86

베팅 (75회)

“한 편의 신파극이네 그려. 저 놈은 찾아오는 여자마다 스토리가 달라. 재주도 좋

아.”

옆에 있던 노인이 괘씸반 부러움 반으로 혀를 찼다.

“저 남자 지랄 연기는 연예인 급이네요. 저는 카바레에만 제비가 있는 줄 알았는데

경마장에도 제비가 날라다니네요.”

선우의 맞장구에 주변 사람들이 킥킥댔다. 그리고는 털보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번 경주에 어느 말이 좋아요?

“당근 2번과 10번이지요. 나머지는 다 당나귀에요.”

그는 웬 먹이가 스스로 호랑이 굴로 오냐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경주 결과는 역시

미적중이었다.

선우가 매점에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잔뜩 사와 그에게 미소와 함께 건넸다. 쑥스

럽게 받은 털보가 마치 자기 것인 양 선심 쓰듯 어울리는 무리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인상 써야 할 사람이 오히로 대접하니 모두 의아해 하는 눈치들이다. 그도

예상치 못한 선우의 행동에 은연 중 감격해하는 모습이다.

털보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야구모자를 쓴 사내가 초조한 표정으로 배당판을 째

려보며 어제 새벽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후 내내까지 머리를 아프게 하던 두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두통약을 두알 먹어

도 별효과가 없더니만 어느새 아팠냐는 듯이 머리가 개운하다. 마사회 홈페이지를

접속한다. 드리어 출마표가 떳구나. 마요일이 다가와 두통이 사라진 것이다.

나의 시력은 0.5 정도다. 컴퓨터 모니터의 글들을 보려면 게슴츠레 눈을 살짝 떠야

글씨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경마와 관련된 기사나 내용들을 볼 때면 내 눈은

2.0이 되어버린다. 출마표를 보니 심장을 뛴다. 이놈저놈 내가 노리던 말들이

다시 내일 나오는구나. 어찌 나로 하여금 한 주도 쉬지 못하게 이리 내 마음을 잘 알

고 편성을 짜놓는단 말인가. 눈에 보이는 경주가 절반은 된다. 어느새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말을 하나씩 지워가며 이것저것 패턴을 집어가며 예상을 하고 있다.

통장을 확인해 보았다. 지난 연말에 경마와 다른 지출로 잔고가 얼마 없다. 내일가

면 이걸 불려올 수 있을까.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이듯 말한다. 당연하지. 내일 꼭 가

야해. 알았지? 그 속삭임이 너무도 달콤하여 안주머니에 사인펜까지 이미 챙겨 놓

았다.

지금 내 머리에는 내일 뛰는 놈들의 그림으로 꽉 차있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첫 경주 발매가 시작되면 또 나의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공부

해서 되는 것이었다면 벌써 나는 장원급제했을 것이다. 그곳은 선택받은 자만이 기

쁨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현실로 돌아온 야구모자가 다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경마장을 딱 들어서는 순간 나의 머리를 뿌옇게 만든다.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게

누군가가 잡아끄는 듯 한 느낌이다. 작정한 사람의 의지를 무너뜨리고 집에 가는 발

걸음을 무디게하고 시선을 한 곳으로 고정시킨다. 지난주부터 아주 철저하게 준비

를 하고 또 했다. 그래도 소시적엔 한구라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주먹을 불끈 쥔 그는 고민 고민 끝에 3만 원씩 두방으로 승부를 걸었다. 실내가 인

파의 열기로 따뜻함에도 서늘함이 그의 몸을 감쌌다.

그가 찍은 말들이 직선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그 짧은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

지는지 그저 애처롭게 자신이 베팅한 말들의 동선을 따라 시선이 움직일수 밖에 없

다. 앞선 놈들이 슬슬서기 시작해야 하는데, 어! 안서네! 꽝!

그의 다리가 약간 풀리며 한쪽으로 치우쳤다.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본다. 두 번

째, 세 번째 경주마다 2, 3만 원을 베팅하면서 그의 주머니는 점점 얇아지고 있었

다. 그리고 보니 밥도 안 먹었다. 식당에 붙어있는 가격표가 왜 그리 비싸 보이는

지... 결국 김밥 한 줄에 국물만 다섯 그릇을 먹었다.

8만 원 총 재산으로 이제 마지막 경주만 남았다. 아무리 보아도 4마리 안에서 입상

할 경주이다. 4복조는 할 수가 없다. 배당이 없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면서 웃으며

귀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보고 또 보자 길이 열린다. 1마리가 젖혀진다.

7-5-12. 이 삼두 안에서 승부해야 한다. 선행마 7번에 승부수를 던졌다. 7-5번,

7-12번에 복식 2만 원씩, 쌍식 2만 원씩을 걸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머리를 돌리고 있다가 말발굽 소리가 느

껴지는 시점에 고개를 들고 외쳤다.

“달려~ 니가 머리야~ 더, 더. 좀 더, 좀만 더.”

그의 음성은 절규에 가까웠다. 아주 간신히 7-5가 들어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몸이 불처럼 타올라 하늘 위로 솟구칠 듯하다.

정찬열 2015-10-25 22:13	이인철 작가님 최근들어 저의 출석이 개인사정으로 서재 방문이 어려워 오늘에야 작가님 서재에 들러 배람하고 갑니다. 그런데 베팅72회의 "뽀지" 복기(뭐! 처음 한것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뜻)인가요 . 그리고 베팅73회의 "착순" 베팅74회의 "마주 소스" 등 이해가 가지않은 용어가 있네요 기회있으시면 답변 부탁 드릴께요 늘 좋은 연재 부탁 드립니다. 건안 하세요 이인철 작가님!

백낙은 2015-10-27 12:08	이인철 작가님.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정찬열 작가님은 어려운 용어를 꼬집어서 질문하기도 하시지만 저는 너무 생소해서 이방인의 세계에 온듯 하답니다. 어리둥절 하지만 재미있게 배람하고 있답니다.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연재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인철 2015-11-07 19:15	《Re》정찬열 님 , 정찬열 작가님! 먼저 졸작에 관심과 격려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뽀지'란 도박에서 돈을 딴 사람이 기분이 좋아 주위 사람에게 팁을 준다는 의미고요. '복기'는 바둑을 두고 난 후 다시 두어본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착순'은 말들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한 순서지요. 예로, 1착으로 들어왔다면 1등이지요. '마주 소스'란 말을 소유한 주인이 마주인데, 이들이 서로 말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여 순위를 조장하는 것으로 불법이지요. 이해가 잘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정 작가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도 늘 건필하시고 행복하세요.^~^

이인철 2015-11-07 19:20	《Re》백낙은 님 , 백낙은 작가님! 바쁘신 와중에도 늘 관심과 격려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작가님께 항상 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작업을 마치면 어울림 마당에 취하려 합니다. 변명일지라도 태평양 같은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작가님께서도 주님 안에서 늘 평안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베팅 (76회)

베팅 (74회)